백상아리
울릉도·독도 해역에 나타난 거대한 변종백상아리,
그들은 인류에게 무엇을 경고하기 위해 왔을까
바다를 소재와 제재로 삼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김춘규 작가가 이번에는 전대미문의 괴물을 등장시켜 어두운 심해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900미터가 넘는 몸길이에, 400톤이 넘는 무게, 종족이든 인간이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광포하게 물어뜯는 회색눈과 노랑눈의 변종백상아리들은 대한민국 해역을 휘저으며 해군을 위협한다. 바다에 무단으로 투기된 핵폐기물에서 새어나오는 방사능을 먹고 변종 생명체가 된 이들은, 먹이사슬이 무너진 바닷속을 종횡무진 누비며 해양생태계를 위협한다. 변종백상아리들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지한 대한민국 해군 소속의 김수지 대위는 변종백상아리들이 핵폐기물로 인해 탄생한 괴생명체이며, 그들을 섬멸하지 않으면 앞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전력은 물론이고 전 세계 해양 무역에 커다란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이들의 존재를 해군작전사령부에 보고한다. 하지만 이해당사국들 간의 분란과 예산 확보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해군 수뇌부들은 김수지 대위를 병원에 감금함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하고, 더 이상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점점 난폭해지는 변종백상아리들의 공격과 그로 인한 수많은 인명 피해는 주변국 전체로까지 위기를 퍼뜨리고, 위험은 시시각각 다가온다.
소설가 스스로 환경생태소설이라고 정의한 작품 『백상아리』는 무단으로 바닷속에 투기된 핵폐기물이 인류에게 얼마나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회색눈과 노랑눈이라는 변종백상아리를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우리의 일상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인류 발전의 산물들이 결국 인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개인의 정의와 의협심은 거대한 시스템의 부조리에 힘을 잃고 마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펼쳐지면서 소설은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현실의 추악한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감추려는 자와 드러내려는 자, 살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들의 사투가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힘 있는 필체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과연 누구 학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잔혹하게 인간과 종족을 씹어 삼키는 변종백상아리들이 가해자인가, 실리를 위해서라면 인간 이외의 어떤 종족의 생존에도 관심 없는 인간이 가해자인가. 이 작품은 선과 악, 가해와 피해라는 구도를 뒤섞으면서 인류의 발전이라는 것, 사회의 진전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에 대해 되묻고 있다.
뛰어난 상상력과 철저한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구축된 소설 속 가상의 공간과 사건은 어쩌면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아니 어쩌면 벌써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디스토피아를 아프도록 사실적으로 펼쳐놓는다. 영상세대들에게도 더없이 즐거운 독서가 될 김춘규의 세 번째 장편소설 『백상아리』. 작가의 바람처럼 대한민국이 해양문학의 성지가 되는 데 이 작품은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줄 것이다.
?책 속으로
“믿어지지 않는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거대한 변종백상아리가 출연했습니다.”
“뭐? 변종백상아리? 고수 장군의 명령이야. 분위기로 보아 뭔가 있는 것 같아. 그만 철수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변종백상아리의 출연에 공포와 호기심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그나마 등지느러미엔 커다란 물혹덩어리가 달려 있었다. 챌린저호의 로봇 팔로 누르면 누런 피고름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물혹이 달린 노랑 눈의 변종백상아리가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50미터 앞까지 다가왔다. 머리에 커다란 점이 박힌 녀석보다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김수지 대위는 마치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다 저런 녀석들이 생겨난 거지? 분명 방사능에 오염된 거야. 꽃망울도 터뜨리지 않고 바로 열매가 맺힌 격이잖아. 녀석들에겐 안 된 일이지만 해양생태계엔 사형선고나 다름없어.” -12쪽
“앞으로 어떤 큰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미리 당부드립니다. 우리 쪽에서 극단적으로 주장하고 나서면 문제는 뻔합니다. 누가 어떻게 책임지겠어요? 현실이 그래요. 일이 꼬이면 누군가는 책임지고 전역해야 합니다. 아니면 군사재판에 회부하여 주변국을 달랠 겁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얻는 것은 없고, 되감겨 들어가는 희생자만 생길 겁니다. 두들겨 맞고 되감겨 들어가고, 해군은 된서리를 맞을 겁니다. 그렇잖아도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누가 무슨 수로 수습할 겁니까? 한 걸음씩만 뒤로 물러서면 큰 탈 없이 지나갑니다. 부탁합니다. 문제 일으키지 마세요. 그만 끝내도록 합시다. 그리고 김수지 대위의 발표는 기밀에 부치겠습니다. 다른 부처와 우방국들에게 뭐라 설명할 겁니까? 국가 간에도 예의라는 것이 있어요. 그리고 김수지 대위는 해저탐사의 후유증으로 뇌기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30쪽
회색눈과 점박이 수컷은 방사능폐기물 속에서 살아남았다. 다른 변종백상아리들은 DNA의 변이에 적응하지 못해, 뼈가 돌출되고 기이한 형상으로 허청거리며 죽어갔다. 더러는 지느러미가 몸통의 절반을 넘는 녀석도 있었다. 회색눈의 꼬리지느러미도 기형적으로 자라 있었다. 회색눈이 경련을 일으켰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가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왔다. 입이든 항문이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방사능오염수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39쪽
인간은 거의 모든 순간 거의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도 애써 외면해버렸다. 생태계의 훼손과 파괴는 한 지역이나 국가의 차원을 넘어 세계적인 쟁점이었다. 그럼에도 과학적 합리주의를 전 영역으로 확장시켜왔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의 이면엔 인간 중심적 사고에 기초한 논리가 숨어 있었다. 더욱이 그 논리는 지구공동체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기도 했다. 그 여파로 변종백상아리가 탄생되었다. 불행하게도 변종백상아리의 등장은 폐해의 일 부에 지나지 않았다. 충분히 안전하다는 말, 충분히 괜찮다는 말,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복구될 수 없을 지경으로 완전히 망가져버렸는지도 몰랐다. 인류도 멸종될 수 있다는 깨달음, 대개의 인간들은 그런 것들을 몇 번이나 겪은 뒤에야 진짜 멸종의 심각성을 깨달을 터였다. -64~65쪽
회색눈이 처음부터 인간에게 증오심을 품었던 건 아니었다. 회색눈이 태아나기 전부터 협곡에 방사능드럼통이 쌓이기 시작했다. 동족들은 호기심을 보였다. 드럼통에서 눌눌한 물이 새어나왔다. 심해바다엔 뼈가 돌출된 어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먹이사슬이 급격히 붕괴되어버렸다. 시푸른 바닷물에 물든 동족들의 몸통엔 파르스름한 물혹이 생겨났다. 눌눌하게 물든 심해바다엔 동족들이 울부짖는 소리만이 외로웠다. -102쪽
굶주림에 지친 회색눈의 암컷과 점박이 수컷은 탈출을 감행하기로 했다. 두려움이 밀려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죽기는 마찬가지였다. 열악한 환경과 굶주림이 녀석들을 대항해의 길로 이끌었다. 상상하기도 싫은 배고픔에 반쯤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지상의 바다를 찾는 일도 녹록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심해바다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때마다 꼬리지느러미의 힘이 풀리고 헛구역질이 일었다. 가년스럽게 사는 것도 다 오염된 심해에서 태어난 탓이라고 자책했다. 더러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곤 했다. 그렇게 지상의 바다로 올라왔다. 비린내가 곳곳에서 진동했다. 정말이지 물고기를 삼킬 때마다 격한 감동에 사로잡혔다. -154~155쪽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았다. 턱없는 패악을 부렸다. 녀석들이 인간에게 원하는 것은 없었다. 다만 새로운 터전을 잡고 종족을 번식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들은 일말의 미안함도 없었다. 놀란 건 오히려 회색눈과 점박이였다.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그것은 인간이 사는 방식이었다. 필요하면 어디든, 무엇이든, 일단 파헤치고 버렸다. 믿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어떤 족속일까. 무슨 짓을 하면서 지구에 살고 있는 것일까. 이젠 어떡해야 되는 것인지. 인간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그런 일을 곳곳에서 벌였다. 놀라웠다. 적어도 뭔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하는 재주는 타고난 족속이었다. -1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