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불꽃 (세계문학전집 177)
언어의 마술사 나보코프 문학세계의 정수이자
문학사상 유례가 없는 황홀한 지적 게임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한다. 그의 작품만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면서 살 수도 있다.”
_A. M. 홈스
언어의 마술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롤리타』의 대중적 성공 이후 1962년 출간한 장편소설. 시인 문학교수 번역가 소설가로서의 모든 역량을 기울여 집필한 나보코프 문학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1979년 국내 초역된 이래 40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7번으로 소개된다. 나보코프 특유의 방대한 문학 레퍼런스, 치밀한 언어유희와 더불어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서술 구조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동시에, 실험적인 구성으로 지적이며 능동적인 독자일수록 나보코프가 설계한 미로와 함정에 쉽사리 빠져들어 이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짜릿한 충격을 경험하게끔 한다. “인간의 삶이란 난해한 미완성 시에 붙인 주석 같은 것”! 살해당한 시인 존 셰이드가 남긴 999행의 미완성 시 「창백한 불꽃」을 이해하기 위해 비밀스러운 주석자 찰스 킨보트의 주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독자의 위치를 이용한 게임 같은 소설이다.
언어의 마술사 나보코프 문학세계의 정수이자
시인 문학교수 번역가 소설가로서의 모든 역량을 기울인 총체
언어의 마술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1899년 러시아에서 출생해 1977년 스위스에서 영면했다. 볼셰비키혁명으로 러시아를 떠나 1919년 유럽에 정착해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하며 시 창작에 몰두했다. 1921년 ‘블라디미르 시린’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고 러시아어로 시 희극 소설을 발표하며 망명 작가로 활동한다. 1940년 일자리를 찾아 미국에 정착한다. 이듬해 첫 영어 소설인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을 발표했고, 20년간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고골과 레르몬토프의 작품을 번역하고 소설을 쓴다. 1955년 파리의 올랭피아 출판사에서 『롤리타』를 출간하고 1958년 미국 내 출간이 성사되기까지 선정성 논란을 비롯해 우여곡절을 겪는다. 이 무렵 출판사의 신작 집필 의뢰에 응해 1957년 3월 새 색인카드에 “이야기는 최북단의 나라(Ultima Thule)에서 시작한다”라는 문장으로 『창백한 불꽃』의 착상을 알리나 이내 출판사에 선불금을 반환하며 집필 계획을 접는다. 대학 강의, 『롤리타』 출판 및 영화화 작업, 『예브게니 오네긴』 번역과 주석 작업 등 현실적인 여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롤리타』가 뉴욕에서 출판되고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며 막대한 인세 수입이 발생하게 되자 미국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돌아갈 수 없는 조국과 풍광이 닮은 스위스로 거주지를 옮기며 『창백한 불꽃』 집필도 재개한다. 그리하여 1961년 2월 초고를 완성해 1962년 출판된 『창백한 불꽃』은 『롤리타』와 더불어 20세기 영문학사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남게 된다.
999행의 미완성 시 「창백한 불꽃」과 이에 붙인 머리말, 주석, 색인으로 구성된 장편소설 『창백한 불꽃』은 시인이자 문학교수, 번역가 그리고 소설가로서 작가가 지닌 문학적 역량이 오롯이 담긴 나보코프 문학세계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이다. 나보코프만의 치밀한 언어유희와 방대한 문학 레퍼런스에 더해 실험적인 형식이 특히 두드러진다. 당시 나보코프는 전위적인 형식 실험을 시도한 잠재문학공동실험실, 즉 울리포(OULIPO) 작가인 레몽 크노와 알랭 로브그리예의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울리포 참여를 제안받기도 했다. 나보코프는 자신의 3대 소설(『롤리타』 『창백한 불꽃』 『아다』)을 집필하는 데 쓴 시간과 노력의 동량을 푸시킨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번역하고 주석을 집필하는 데 쏟았다. 번역자이자 주석자로서 무려 10년을 꼬박 매진해 1964년 1권의 번역서에 이례적이며 압도적인 분량인 3권의 주석집을 붙여 출간하는데, 나보코프는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꼽으며 대단한 자부심을 드러냈고, 이 이력은 그가 창조한 『창백한 불꽃』의 화자 ‘찰스 킨보트’라는 주석자상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좋든 나쁘든 최후의 말을 하는 이는 바로 ――――”
문학사상 유례가 없는 황홀한 지적 게임
『창백한 불꽃』은 찰스 킨보트 박사가 저명한 미국 시인 존 프랜시스 셰이드(1898년 7월 5일 출생, 1959년 7월 21일 사망)의 유고 「창백한 불꽃」에 붙이는 주석서로, 머리말에서부터 킨보트가 편집자에게 전하는 교정 지시가 남아 있는 채로 독자에게 소개된다. 킨보트는 본 주석서를 집필하게 된 계기를 노시인 셰이드와 나눈 우정 그리고 무엇보다 오직 자신만이 이 작품이 지닌 “인간적인 사실성”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임을 역설하며 다음의 문장으로 머리말을 마친다. “좋든 나쁘든 최후의 말을 하는 이는 바로 주석자다.”
존 셰이드의 「창백한 불꽃」은 총 네 편으로 구성되어 999행까지 집필된 자전적인 시다. 자신의 출생 배경에서부터 성장 과정, 아내 시빌과의 결혼 및 딸 헤이즐의 자살, 심장 발작으로 잠시 엿본 사후 세계 그리고 삶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찰스 킨보트의 주석은 시행의 순차로 진행되나 그 해석은 시행이 나아갈수록 점차 기묘한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첫 주석에서부터 젬블라어와 젬블라의 왕, 그리고 왕을 시해하려는 그라두스가 소개된다. ‘머나먼 북쪽의 나라’ 젬블라에 혁명이 터진다. 러시아 혈통의 친애왕 카를(1915년 7월 5일 출생, 1936~1958년 치세)은 혁명 세력에 체포되어 궁에서 포로로 지내다 극적으로 탈출해 미국으로 온다. 셰이드가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워드스미스대학에 강사직을 얻고 그의 이웃집에 머물며,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이동해오는 그라두스의 존재를 감지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도 셰이드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고 정열적으로 영감을 불어넣는다. 마침내 그라두스가 도착하고, 총알이 빗나가고, 시는 미완성으로 남는다. 「창백한 불꽃」에는 없는 1000행에 대한 주석과 색인까지 모두 읽은 독자는 명쾌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만족감을 느낄지 모르나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은 바로 그 지점이 시작인 장편소설이다. 미완의 시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영감을 제공해준 배후는 누구인가? 시인과 주석자는 정말 다른 사람인가?
셰이드는 「창백한 불꽃」에서 “난해한 미완성 시에 붙인 주석”을 언급했다. 작품이 난해할수록 독자는 온전한 이해를 위해 주석자의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인다. 그러나 시인 셰이드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언어를 차지한 킨보트는 신뢰할 수 없는 주석자다. 시인의 외모를 평가하고(“폐기물로 간주해야만 겨우 이해가 된다”), 주해의 객관성을 의심할 독자에게 미리 일침을 놓고(“시 작업에 대해서나 시의 주석 혹은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 감각이 없는 거다”), 도취적인 자평(“독자 여러분이 이 주석을 재미있게 읽었을 줄로 믿는다”)에 더해 선행 주석에 날조한 시행을 담았음을 밝히며 학식과 양심을 운운하는 파렴치한 작태를 비롯해, 엉터리 번역서로 읽은데다 까마득하기까지 한 기억에 의존해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영문학을 다루고, 색인에서마저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 중요도를 축소하거나 전혀 언급된 바 없는 정보를 색인 항목으로 꼽았다. 즉 킨보트는 셰이드의 시어, 원전을 전유해 주석을, 최후의 말을 썼다. 그렇다면 이 최후의 말을 읽은 독자가 내리는 결론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독자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면, 좋든 나쁘든 옳든 그르든 최후의 말을 하는 이는 바로 ‘독자’가 된다. 그렇다면 그 독자는 과연 킨보트와 다른가?
한 연구자는 이런 의문을 갖게 하는 것 자체가 의욕 과잉 독자를 겨냥한 나보코프의 덫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수많은 진짜 단서와 거짓 단서가 복잡하게 얽힌 자체의 비평 장치를 내포해 독서에 필연적으로 비평성을 도입하는, 치명적인 독을 품은 나보코프의 덫. 왜 독인가 하면 독자로 하여금 킨보트 같은 주석자가 되도록, ‘언더스탠딩(이해)’이 아닌 ‘오버스탠딩(과잉 이해)’의 딜레마에 빠지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텍스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텍스트에 산재한 무수한 퍼즐을 풀 기회가 주어지지 않지만, 너무 몰입하면 텍스트를 자기식대로 꼬아서 보게 되어 망상적인 독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백한 불꽃』은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단서들이 의도적으로 몇 겹의 지층에 숨겨진, 여러 차례 반복되는 독서를 염두에 두고 구축된 소설이다._해설 중에서
킨보트는 『창백한 불꽃』의 독법을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관례에 따라 주석은 시 다음에 오지만, 주석을 먼저 훑어보고 그 도움을 받아 시를 읽어보길 독자에게 권유하는 바이다. 물론 시를 읽어가면서 주석을 다시 읽게 되겠지만, 시를 다 읽고 난 다음 시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주석을 세번째로 참조해주었으면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책장을 앞뒤로 넘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시 본문이 실린 부분을 잘라 묶어두거나, 그보다 간단하게 아예 책을 두 권 사서 편한 테이블 위에 나란히 펴놓고 보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한다.” 독자는 킨보트의 제안을 충실히 따를 수도 있고, 머리말부터 색인까지 순서대로 전통적인 소설 읽기의 방식대로 읽을 수 있지만, 나보코프가 제안할 법한 독법은 이뿐이다. “기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떤 한 권의 책을 읽을 수(read)는 없습니다. 오직 읽고 또 읽을 수(reread) 있을 뿐입니다.” 이 독법만이 나보코프가 설계한 『창백한 불꽃』의 미스터리를 제대로 풀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