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탄생
‘냥집사’가 되고픈 남모르는 가슴앓이!
“아직도 고양이 안 키우냥?”
두 냥이들과 초보 집사의 파란만장한 동거 기록
“아직도 고양이 안 키우냥?”
1인 가구 수의 증가와 고령화 사회 속에서 반려동물 인구는 1,000만을 넘어섰고 그 가운데 반려묘 인구는 374만을 넘어섰다. 조용하고 깔끔하며 혼자서도 잘 지내는 성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도한 매력까지 겸비한 고양이의 인기가 날로 커지고 있는 추세다. 밀당의 귀재, 그 도도한 매력의 고양이를 모신다는 의미가 담긴 집사. 반려동물 문화 확산과 인구구조 변화로 애묘인들이 급증하면서 고양이들의 행복한 종을 자처하는 ‘냥집사’들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다. 이 책은 좌충우돌 초보 집사와 두 냥이 자매들이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1년간의 기록이다. 명랑 도도한 ‘묘생’과 외롭고 웃픈 ‘인생’의 대 하모니, 전혀 다른 두 생이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묘미를 읽을 수 있다.
라미와 보들이, 두 고양이의 북적거림은 삭막하던 혼자만의 공간에 기분 좋은 파장을 일으켰다. 두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화장실을 치우면서 나와 가족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돌아보게 됐다. 고양이와의 동거가 좋냐, 나쁘냐는 질문엔 답할 수 없지만, 분명히 다른 삶이 펼쳐진다는 얘긴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 서문 중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이유?
누군가와 만나고 함께 살기 시작하는 데 이유가 딱히 없는 인연도 많다
아무리 사랑을 구해도 모른 척하다가 막상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슬그머니 다가와 온갖 정을 쏟아부어주는 고양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의 초보 집사 역시 고양이를 키워야 하는 특별한 이유 없이 어느 날 그렇게 집사가 되었다. “고양이를 키워보면 어떨까?”라고 어렵게 꺼낸 말에 “키울 수 있겠어?”라는 걱정 대신 “집사 되려고?”라며 응원해준 덕분으로 여기까지 왔다. 거기다 ‘한 마리의 고양이는 또 한 마리를 데려오고 싶게 만든다’(헤밍웨이)고 첫째 냥이 라미를 데리고 오고 나서 두 달 만에 둘째 보들이를 들였다. ‘묘생’과 ‘인생’의 동거가 시작되고 1년,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느새 피부양자 박라미, 박보들이란 이름표가 자연스러워진 우리 냥이 자매들을 위해 집사는 생일 기념 굿즈로 머그컵도 만들어 보모 이모들에게 돌리기까지. 그리고 생일을 맞은 라미와 보들이 각자의 진심?이 담긴 편지가 바로 이 책 속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평범한 일상일 수도 있겠지만 가족을 선택한 그들의 두 다른 생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고양이는 세상 모두가 자기를 사랑해주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자기를 사랑해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했던 영국의 예술가 헬렌 톰슨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집사가 출근하고 없는 동안, 자고 깨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는 라미는, 어쩌면 집사를 기다리는 중인지도 몰랐다. 그때 결심했다. 한 마리 더 들여야겠다고. (……) 친구이자 동생이 있으면 나에 대한 집착도 덜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혼자가 아닌 두 마리가 같이 있으면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저녁에 좀 늦게 들어가도 덜 미안할 것 같았다. 자다 깨서 밥 먹고 난 뒤 배가 부르면 서로 장난도 치지 않을까? 그렇게 측은지심과 이기심이 결합한 결과, 라미의 동생이 생겼다. (pp. 31~32)
고양이들이 바꾼 나, 달라진 삶에 대하여
평소 같으면 가방 하나 둘러메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라도 했으련만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몰고 온 변화는 컸다. 여행은커녕 이제는 길게 집을 비우지도 못하게 되었다. 초특급 장난감인 집사가 없는 동안 하루 종일 잠만 자거나 컴컴한 마루에서 서성댈 두 냥이들을 생각하면 맘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났음에도 아침에 집을 나서야 할 때의 불안함과 퇴근길의 걱정과 설렘은 여전히 익숙지가 않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레 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안락한 곳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두 냥이들을 들이고 생긴 가장 큰 변화다.
또 다른 변화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는 점이다. 자동차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길고양이를 만나면 안쓰러워지고, 강아지는 물론 때론 비둘기를 보면서도 그들이 머리를 움직이고, 먹이를 쪼아 먹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냥집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다시 인생을 산다면 동물들을 알아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라미, 보들이와 함께 살면서 일어난 변화는 또 있다. 약속이 없는 주말, 하루 종일 혼자 있다 보면 말 한마디 내뱉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집사가 된 이후로 소리를 내게 한다. 또한 출근 시간이 다가오는 시각, 어김없이 방문을 긁기 시작하며 울어주는 냥이들. “알람을 맞춰놓은 기상 시간, 고양이들은 알람이 울리기 20분 전, 사람들을 미리 깨워야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라고 한 미국의 축구선수 마이클 넬슨의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라미와 보들이는 그동안 닫혀 있던 내 입을 열었다. 물론 내 입에서 나온 소리의 대부분은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는 잔소리에 가깝지만 그 못지않게,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소중한 웃음소리를 나오게 만들었다. 케이블도 달려 있지 않은 우리집에서, 〈개그콘서트〉도 예전 같지 않은 요즘,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라미와 보들이가 했다. (p. 229)
고양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부모님의 위대함
냥바냥.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고양이 버전이라고 한다. 고양이 습성이 이렇다 저렇다 하지만 고양이에 따라 일반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그래서 키우기 전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고. 고양이가 그냥 저절로 키워지는 건 아니었다. 우당탕탕 한바탕은 해야 지나가는 양치와 발톱깎기, 약 먹이기, 사료에 대한 걱정, 놀아주기, 목욕시키기…… 애로사항이 한둘이 아니지만 또 애정 없이는 할 수 없는 일. 애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 멀리 갈 것도 없이 삼남매를 키워내신 부모님이 위대해 보였다는 게 초보 집사의 고백이다. 같은 고충을 가지고 헤맬 또 다른 초보 집사들을 위해 책 중간중간에는 초보 집사로서 이미 겪어보고 전하는 깨알 같은 팁이 실려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집사는 하루 세끼 밥 차려주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다. 저녁에 회식이라도 있어 밤 10시가 가까워지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연애도 못할 지경이었다.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매일, 하루 세 번, 다섯 명 가족들의 밥을 차려주셨던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깨달음이었다. “거기에 비한다면 늘 같은 메뉴, 같은 양의 사료를 시간만 맞춰 주는 정도야 뭐……”라며 견딜 수 있었다. 그 깨달음이 없었다면 다시 자율배식으로 유턴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p. 55)
동물과 함께 사는 걸 택한 쪽은 사람이다,
그 선택에 맞는 책임을 다하자!
노벨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로렌츠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서 ‘애완동물’을 ‘반려동물’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한다. 평생의 동반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반려묘, 반려견은 이미 가족이라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러니 평생을 함께할 가족이 생기는 문제인 만큼 입양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파양을 한다면 이는 곧 가족의 연을 끊는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안타까운 건 유기묘들이 한 해 2만 마리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고양이나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펜션이나 리조트가 거의 없다’ 같은 제도적인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사람들의 생각과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모두에게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라미, 보들이와 함께해온 1년을 기록하며 ‘냥집사’로서 한 단계 성장한 반려인의 생각이다. 반려동물을 혐오하는 세상은 결코 사람에게도 좋은 세상이 아니라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긴 사람들이 고양이를 쉽게 파양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가족의 연을 쉽게 끊을 수 있도록 하자’는 말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대신 ‘피치 못할 사정이 잘 생기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자’는 말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집이 아니더라도 쉽게 고양이를 키울 수 있고, 고양이를 데리고 평소 다니던 곳들을 갈 수 있다면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게 좀 사라지지 않을까. (p. 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