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의 돼지의 낙타
현실과 초현실이 뒤섞인 공간,
무동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욕망과 유희
소설의 배경인 무동은 위성도시의 변두리에 자리한 근교농업 지구로, 재개발 철거민과 실직자를 비롯해 도시에서 밀려난 주변부 인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정착해 살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신화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지워진 채 함께 어우러져 있다. 마치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의 무대인 ‘마콘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무동에서는 예기치 않은 우연과 인연이 맞물리며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곡절과 사연이 펼쳐진다.
경수 가족의 사연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 나간다. 그러니까 자영업을 전전하다 실패한 후 사채 빚에 몰려 도망자 신세로 무동으로 흘러든 경수 가족뿐 아니라, 비닐하우스 한 채를 빌려 작업실 겸 숙소로 사용하는 무동 최초의 주민인 로큰롤 고, 로큰롤 고와 결혼해 아들을 열둘 낳고 또한 무동의 최대 지주가 되는 토마토 문, 흑심을 품은 마을 남자들 때문에 엉겁결에 사건에 휘말리는 마리, 간신히 살아남아 떠돌다 로큰롤 고의 밴드에 합류해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민구, 개발 이익을 노리고 무동에 들어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쇠락해가는 인호 아버지, 목욕탕 때밀이 양성 학원에서 만나 사귀게 되는 인호와 감자탕집 딸 수지 등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는 이리저리 얽힌다. 그리고 사건들 사이 미스터리하고 수상한 상황이 벌어지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결말로 이야기는 치닫는다.
작가는 이렇게 무동에서 살아가는 개성적인 인물들을 비슷한 비중으로 나란히 펼쳐놓는데, 다양한 곡절과 사연은 여러 갈래로 어우러지는 동시에 분산되며 소설에 다성적인 활기를 부여한다. 이들의 인연은 과거에 숨어 있다가 현재에 돌연 얼굴을 드러내거나 몰래 숨어 작동하며 현재를 움직인다. 우연은 인연을 낳고 어느 순간엔 도무지 알 수 없는 인생사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리의 돼지의 낙타’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세상에서는 자주 뜻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돌연변이가 탄생하며 의도와 결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조사 ‘의’의 반복처럼 소설은 인연과 우연과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지며 전승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말의 활력과 이야기의 생명력!
“역시 말은 음악보다 어렵다. 말은 재즈보다 더 즉흥적으로 흘러간다.”
소설에서는 “입으로 생각지도 않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와 상황이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이야기의 흐름은 제약을 벗어나 스스로 생명력을 얻어 이리저리 뻗어가고 몸을 부풀리는 듯하다. 작가는 스스로 증식해가는 그 이야기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제어하거나 어느 한 곳에 비끄러매기보다 오히려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방식은 유머러스하다. 특유의 입담과 장광설을 통해 예측할 수 없는 세상사의 아이러니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무동 사람들의 사연을 짐짓 초연하게 표현해낸다. 흥망성쇠가 계속되고 죽음과 파국이라는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운명과 세태를 진지하고 무겁게 다루기보다는 가볍게 부풀려 띄워 올린다. 해설을 쓴 김영찬 평론가는 이러한 엄우흠식 유머를 “주어진 삶의 운명적인 ‘알 수 없음’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감당하겠다는 태도”로 읽어냈다.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낸 삶의 아이러니, 다분히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현실을 더욱 육박해 들어가는 힘, 삶의 비의를 풀어내는 통찰을 엄우흠 작가는 이 소설에서 다 담아냈다. 더불어 독자들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이야기’의 묘미를 『마리의 돼지의 낙타』를 통해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엄우흠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1991년 첫 장편소설 〈감색 운동화 한 켤레〉를 펴내며 데뷔한 작가는 당시 스물두 살의 나이로 빼어난 노동소설을 써내어 화제를 모았고, 그 시기 노동소설의 경직성과 도식성을 한 단계 뛰어넘은 문제작으로 주목받으며 "당대 노동소설이 도달한 최량의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발표한 엄우흠 작가의 성장소설이자 일종의 후일담 소설인 〈푸른 광장에서 놀다〉는 삶과 이념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관념적 성찰과 변두리 인생에 대한 애정 어린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었다. 이번에 출간된 소설은 2011년 겨울부터 1년 동안 계간 「문예중앙」에서 ‘올드 타운‘이라는 제목으로 전반부가 연재된 작품으로, 전작들과는 다소 상반된 면모가 드러나 있다. 관념과 독백보다는 말과 캐릭터의 활력이 두드러진다.
소설의 배경인 무동은 위성도시의 변두리에 자리한 근교농업 지구로, 재개발 철거민과 실직자를 비롯해 도시에서 밀려난 주변부 인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정착해 살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신화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지워진 채 함께 어우러져 있다. 무동에서는 예기치 않은 우연과 인연이 맞물리며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곡절과 사연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