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심리학
미술관에서 찾은 예술가의 삶과 심리
위대한 예술작품 속에 숨겨진 심리학을 만나다!
이 책은 그림 속 화가들의 삶을 바탕으로 심리학을 엮어냈다. 심리학 박사인 저자는 화가들이 작품에 담아놓은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고, 그러한 생각과 감정의 스펙트럼을 형성한 화가들의 인생을 전반적으로 돌아본다. 그리고 그를 통해 떠오르는 심리학 개념과 현상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게다가 미술사조와 작가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므로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미술 전공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 속 화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화가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림이 더 잘 보인다!
에드가 드가는 왜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그리지 않았을까? 뭉크는 왜 절규하는 그림을 그렸을까? 에곤 실레 작품에는 왜 누드가 많을까?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화가들의 그림을 보다 보면 궁금한 점이 하나둘 생기곤 한다. 그림은 위안을 주거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삶의 도구다. 따라서 그리는 사람의 삶의 태도나 가치관, 심리 상태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미술작품을 통해 화가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대가들의 그림을 통해 긍정심리학, 아들러 심리학, 게슈탈트 심리학 등 다양한 심리학 개념을 떠올린다. 그리고 화가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상처를 들여다본다. 그 과정에서 저자 스스로도 위안을 받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이 힘을 얻고 살아나갈 희망을 얻기를 바란다.
미술과 심리 공부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책!
이 책은 크게 5가지 주제로 나누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저자의 생각과 심리학 개념을 설명한다. 1장에서는 아웃사이더 아트라고도 불리는 나이브 아트와 긍정심리학을 연계해 설명한다. 제도권 내에서 그림을 배우지 않았으나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스스로 우뚝 선 화가들의 소박한 그림과 그들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긍정심리학을 이해할 수 있다. 2장에서는 시대가 규정한 가치에서 벗어나 외부의 비평에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완성해나간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인생을 따라가본다. 그들의 그림을 보면, 인간은 역동적으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며 고유한 세계관으로 현상을 해석한다는 점에서 아들러 심리학을 떠올리게 한다.
3장에서는 추상의 세계와 게슈탈트 심리학의 관계를 살펴본다. 20세기에는 회화가 일방적인 소통에서 작가와 감상자 간의 긴밀한 상호 소통으로 옮겨왔다. 본질과 비본질을 변별해 핵심만 그림에 담고자 하는 것은 게슈탈트 이론과 맞닿아 있다. 4장에서는 화가가 가진 상처와 표현주의에 대해 알아본다. 표현주의 화가들은 내면의 열망과 상처를 과장된 색과 단순화된 구도를 통해 표현했다. 이런 작품들은 임상심리학과 정신의학적 주제들을 내포하고 있어 꼼꼼히 살펴볼 만하다. 5장에서는 전문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노력했던 여성 화가들의 삶을 돌아본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전통적 가치를 거부하고 전문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한 여인들의 용기 있는 행보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현대 여성들에게도 많은 공감과 울림을 안겨준다.
추천사
저자는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들이 캔버스에 펼쳐놓은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내면을 돌아보고, 성장하게 된 체험을 소개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는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삶의 무게와 일상의 분주함에 내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때 저자가 안내하는 대로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억눌렸던 내면의 에너지와 잃어버렸던 순수함을 되찾게 될 것이다.
김은숙(임상심리학자)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접근 방향은 매우 다양하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뇌 과학이라는 다소 광범위한 이름하에 과학적 접근이 힘을 얻고 있다. 이 책은 심리학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행동과 말에 대해 인간의 다양한 표현방식을 관찰하고 있다. 미술과 관련된 기존의 심리 서적들은 단순히 숨은 그림 찾기처럼 그림 속에 숨은 심리학적 코드를 파헤치는 작업이었다. 반면 저자는 화가들의 인생을 소개하고 그들이 그림에 담은 감정을 독자들에게도 전달함으로써 지친 우리 모두의 삶을 다독거려주고 있다.
조지현(정신과 전문의)
책 속으로
칼 융은 예술 창작의 과정이 이러한 성장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칼 융 학파의 이론은 일생을 통한 인간의 내면 성장 과정을 강조하며, 이 과정에서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예술적 표현 방법들을 응용한다. 말하자면 헤르만 헤세의 일기와 작품들은 칼 융의 이론을 중심으로 한 분석치료의 성공적인 사례가 되는 셈이다. 1950년대 미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역시 그의 작품 초기에는 칼 융의 정신분석 이론을 적용했고, 자신의 무의식 저변에 대한 강한 탐구가 드러난다. 헤세는 그의 편지에서 드로잉과 회화가 갖는 성장을 유도하는 치료 효과를 잘 설명하고 있다. _36쪽
새로운 회화의 방향을 모색하던 마네는 벨라스케스의 17세기 전위 양식에서 모티프를 얻는다. 원근법의 전통을 완전히 벗어나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고 빛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고전적인 매끄러운 붓터치와 대조되는 거친 붓터치를 시도했다. 그는 결코 보헤미안이 아니었고 자신을 인상파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화풍은 클로드 모네와 에드가 드가를 비롯한 알프레드 시슬레, 카미유 피사로 등 인상주의 화가들, 보들레르와 에밀 졸라 같은 비판적인 문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반면 주류사회의 비평가들과 대중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이런 비난에 마네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_96쪽
바실리 칸딘스키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나치의 부상으로 인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오데사(우크라이나의 항구 도시),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을 떠돌며 살아야 했다. 3개의 국적을 가졌고 세 명의 여인과 삶을 함께했던 칸딘스키에게 예술의 근원이자 영감의 토대는 고향인 러시아의 문화와 정서였다. 현대 미술에서 추상화라는 장르를 개척한 그였지만, 초기 작품들은 사실을 보이는 대로 재현한 구상화를 즐겨 그렸다. 그래서 러시아 전래동화와 민요 등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후기의 작품들에서는 러시아적 모티프가 추상화된 형태로 사용된다. _156쪽
질병으로 되풀이되는 가족의 죽음을 겪으며 형성된 불안과 공포를 여과 없이 표현한 그의 그림 한 귀퉁이에 드리운 것은 죽음의 그림자였다. 그의 고통받던 영혼이 남긴 성실한 기록으로서의 그림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의 그림에 충격을 받는 이유는 의식의 심층에 도사린 부정적인 감정과 이처럼 처절하게 투쟁을 벌인 기록을 흔히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홀린 듯 공감하는 이유는 그가 표현한 주제인 불안과 공포, 절망, 질투라는 원초아의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의식에도 내재해 있기 때문이리라. 뭉크의 그림은 현실에 구속받지 않는 원초적 사고의 일차 과정(primary process)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_220쪽
내세울 친부가 없었던 모리스는, 수잔과 오랜 우정을 유지했던 스페인의 화가이자 비평가였던 미구엘 위트릴로가 친권에 서명하고 양육비를 부담하기 전까지는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미구엘 위트릴로는 수잔의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모리스를 기꺼이 호적에 올리고 그에게 위트릴로라는 자신의 성을 붙였다. 공식적인 성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 대한 자부심과 강한 애착을 보였던 그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자기 이름을 모리스 발라동으로 썼다.
그가 10세 무렵에 수잔 발라동은 에릭 사티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6개월간 동거한다. 그는 어머니를 뺏어간 에릭 사티를 저주하기도 했지만 어린 아들과 어머니의 젊은 연인은 수잔 발라동의 애정을 갈망한다는 공통분모를 두고 서로를 이해하고 금세 애착을 형성한다. 하지만 에릭 사티도 어머니와 결별 이후 떠나버리자 모리스 위트릴로는 술에 취해 10대를 보내고, 이후 심각한 알코올 금단 증상을 앓으며 자살 소동을 벌이기에 이른다. _262쪽
어른들의 통제가 곤란한 대담한 성격의 말괄량이였던 발라동은 12세 때부터 생계의 현장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한다. 충동적이고 규율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던 성격으로 인해 세탁부, 미싱사, 웨이트리스 등의 직업을 전전하던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은 당시에 유행했던 서커스의 공중 곡예였고, 14세의 그녀는 서커스단에 입단한다. 그러나 이듬해 그녀는 말에서 낙상하는 사고로 인해 그토록 좋아하던 서커스단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40년이 지난 후에 수잔 발라동은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서커스를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_306~3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