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혼내는 책
국어사전 속에서 길을 잃다
책을 읽다가, 혹은 업무상 문서를 작성하다가, 혹은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SNS에 글을 쓰다가 모르는 낱말이 있으면, 이 표현이 맞나 확인하고 싶으면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국어사전을 뒤적인다. 요즘은 인터넷이 있어 사전을 찾기도 아주 편리해졌지요. 우리가 그렇듯 사전을 찾는 이유는 사전이 우리에게 분명한 ‘해답’을 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들 국어사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여긴다. 국어사전이란 한 나라에서 쓰는 말들을 모아 그 뜻을 풀어놓은 책이다. 하지만 막상 국어사전을 찾았다가 그 풀이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혹은 너무 허술해서, 혹은 긴가민가하는 생각이 들어 당황했던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국어사전 혼내는 책』은 바로 저자의 이러한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 박일환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어 누구보다 국어사전을 찾아봐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되었는데, “바닥을 드러낼 줄 모르고 끝없이 뻗어 나간 광맥 줄기처럼 무수한 엉터리들이 눈과 마음을 어지럽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재 국어사전이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을 혼자 곱씹기보다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 내용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국어사전 혼내는 책』은 그렇게 연재했던 글을 다시 추리고 정리하여 묶어 낸 책이다.
우리말의 진정한 길라잡이가 되어야 할 국어사전
저자는 말합니다. “국어사전은 그냥 낱말만 긁어다 모아 놓은 창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 표제어의 수보다 더 중요한 건 모셔 온 낱말들에 바르고 정확하며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는 일이다.” 바로 ‘양’이 아니라 ‘질’이 핵심이라는 것이지요. 그저 사전에 실리는 낱말의 수를 늘리는 데 애쓰기보다는 분명한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라 표제어를 선정해 이해하기 쉽고 정확하며 관련된 최대한의 정보를 담은 풀이를 달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국어사전의 현실은 이와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게 저자의 판단입니다. 풀이가 부실하거나, 표제어로 올린 기준이 모호하거나,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풀이에 일관성이 없거나, 정보가 잘못되었거나, 어떻게 쓰이는 낱말인지 전혀 알 길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지요.
저자가 이 책에서 대상으로 삼은 사전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국어사전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 널리 이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국어사전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저자의 말대로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요. 저자는 국어사전의 문제점을 자세한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풀이가 그저 동어 반복에 지나지 않는 낱말, 실생활에서 쓰기에 어색하기 짝이 없는 피동형 표현, 누구도 쓰지 않을 법한 듣도 보도 못한 한자어, 다양한 쓰임새가 있음에도 오직 한 의미로만 풀이한 낱말, 그 분야의 전문가도 어리둥절해할 정도로 어려운 전문 용어, 외래어라기보다는 그냥 ‘외국어’인 낯선 낱말, 풀이 내용이 더 어려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용어 등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들을 보면 그 문제점이 더욱 절실히 와닿습니다.
한 나라의 언어 사전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저자는 “국권 상실의 시기에 처음 국어사전이란 걸 만들기 시작한 이래로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만들기 위해 애쓴 공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런 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로잡아야 하기에, 국어사전이 진정으로 우리말의 충실한 길라잡이가 될 수 있길 바라기에, 많은 이들이 그 문제에 공감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어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진심 어린 마음으로 국어사전을 ‘혼내는’ 것입니다. 이 책이 국어사전을 애용하는 독자들에게 국어사전을 대하는 또 하나의 ‘길라잡이’가 되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