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인은 보았다! (개정증보판)
한국과 일본의 유품정리인이 써내려간 진솔한 작업일지
지켜보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생을 마감하고 시체마저 뒤늦게 발견되는 죽음을 ‘고독사’라고 부른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일본의 경우, 유품정리와 함께 고인이 세상을 떠난 그 공간, 시취와 때로는 들끓는 구더기, 바퀴벌레로 가득한 그곳을 다시금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바꾸어놓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명감 없이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직업, 바로 ‘유품정리인’이다.
일본 최초의 유품정리인인 요시다 타이치와 한국 최초 유품정리 전문회사인 ‘키퍼스 코리아’의 창업자인 김석중은 이 책을 통해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유품정리인이 겪은 실제 사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유품정리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생의 민낯
삶과 죽음은 결국 맞닿아 있다!
죽음을 상상하다
이 책의 장점은 죽음을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유품정리인으로서 자신이 본 그대로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가감 없이 서술한다. 상황에 몰입하여 눈물을 흘리거나 안타까운 현실에 분노하지 않고, 고인의 흔적을 묵묵히 살펴보며 이를 정리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죽음이 무척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죽음’이란 무겁지만 꼭 한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라. 지금 당신의 곁에 굴러다니는 책이며 옷이며 소소한 물건 하나하나가 당신이 살다간 삶의 증거가 된다. 이 책을 통해 자신과 주변의 삶을 돌아보고 일상에 감사하며 현재를 더욱 충실히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드립니다
누군가는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또 주변의 누군가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뒤처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유족이 없거나 있더라도 그 일을 직접 할 수 없는 경우, ‘유품정리인’은 그들을 대신해서 고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남긴 물건이나 가재도구를 정리하여 처분하는 일을 한다.
핵가족화와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국가 시스템의 도움도 받지 못해 ‘고립’된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 이들의 죽음은 주변에서 알아채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고독사’라 불리는 유형의 죽음이다. 굳은 심지와 사명감 없이는 그런 일이 발생한 곳에 발을 내딛을 수도 없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 현장에서 남들이 꺼리는 고되고 궂은일을 도맡아 본분을 다하는 유품정리인을 보고 있자면 경외심마저 느끼게 된다.
현대 사회의 씁쓸한 이면을 들여다보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키퍼스 코리아’의 대표인 저자가 직접 의뢰받은 한국의 사례들이 다수 추가되어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믿기지 않는 사건들은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소외감과 단절감 속에서 마지막까지도 외로웠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꼬집는다. 그는 ‘고독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개인은 물론 사회 각층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우리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개개인이 사회인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누릴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것은 물론, 변화하는 사회상을 적절하게 분석하여 그에 맞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고 작동시켜야 ‘고독사’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함께 살아도 마음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 시대, 더 이상 고독사는 혼자 사는 사람의 상징이 아니다. 이 책에도 ‘고독사’가 아닌 ‘고립사’에 해당하는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2009년, ‘고독사’라는 개념을 우리나라 최초로 소개했던 이 책이 ‘사회적 고립에 따른 사망’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관심을 유발하고 이를 해결하는 심도 있는 토론과 대책이 마련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본문 중에서
정말로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 무섭다. 이 일에 종사하면서 많은 사람의 죽음과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을 많이 봐 왔다고는 하지만, 진짜 살인범을 대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조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죽은 부인의 명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31쪽)
아마 그 아들은 모친의 진짜 마음도 모른 체 일생을 보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삼자(第三者) 인 우리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말로 설득한다고 해도, 저렇게 완고하게 거부하고 있는 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자신도 나이가 들어 돌아가신 어머니와 같은 나이가 됐을 때 문득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48쪽)
하지만 가족에게는 그 가족만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기에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살 원인은 모른다. 대충 표면적인 원인은 짐작할 수 있다고 해도, 스물일곱 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아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었던 것을 헤아리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157쪽)
마을회관과 근처 작은 교회를 내려오는 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할머니들이 지나가는 우리를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매일 생활하는 공간에서 동네 사람들과 인사라도 하고 지냈다면 좋았을 것을 쯔쯔가무시 병보다 무서운 쓸쓸한 무관심이 등 뒤로 쏘는 듯했다. (207쪽)
혼자 사는 노인 사이에서 카레가루는 가장 빨리 요리할 수 있는 간편식 가운데 하나이다. 물을 끓여 컵에 따른 후 휘휘 저어 흰밥 위에 붓기만 하면 3분 요리처럼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유품정리 현장에서 간혹 발견하는 컵라면과 카레가루를 보면 이것들이 현대사회의 노령화를 대변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252쪽)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을 부작위(不作爲)라고 한다. 계모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않아 굶어 죽게 하는 것처럼 위험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 행위로 위험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야기한 자가 그것을 방지하지 아니했을 때는 그 발생 결과에 따라 처벌을 하는데, 이것이 부작위범(不作爲犯)이다. (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