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한 여자가 들려주는 달콤쌉싸름한 사랑의 기록
그림 없이는 살 수 없다던 소녀가 성인이 되어 한 남자를 만났다. 그녀가 미술로 먹고살 길을 찾아 방황하던 그때 만나게 된 그와의 이야기. 이 책에는 아주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욱 특별한 커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처음에는 나와 다른 그 사람이 낯설어 다가가지 못했지만 어느덧 그 사람을 제대로 볼 준비가 되었다. 그렇게 만났고, 연애를 했다. 연애를 하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존재 자체가 위로되는 사람이었고, 어느새 항상 거기 있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가의 동화 같은 수채화 그림과 함께 그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이 서툰 당신에게 들려주는
솔직담백한 그의 사랑법!
그들의 연애는 평범했다. 거친 삼각관계 속에서 정열적인 사랑이 피어나거나, 어린 친구들처럼 풋풋하고 가슴 설레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따뜻한 마음과 잔잔한 행복이 다가왔다. 작가는 그 남자가 솔직하고 표현력이 좋아 감개무량했고,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며 행복해했다.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남자 나이 서른일곱. 하지만 그는 그녀를 “예쁘다”, “귀엽다”며 칭찬해주었고, 멋진 그림을 그리는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으며, 늘 집까지 바래다주고 기념일을 챙기며 배려해주었다. 작가는 ‘그’라는 사람을 만나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의 모양은 한결같았고 색깔은 자유로웠다.
“넌 그거 모를 거야.
내가 널 데리러 갈 때 어떤 마음인지.”
그가 풍긴 불안은 비교하지도, 지치지도,
걱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불안이었다.
아, 웃을 수도 있구나.
옅은 분홍색이 입가로 퍼져나갔고
핸드폰을 귀에 바짝 대고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 불안, 또 듣고 싶었다.
_ 본문 중에서
그림을 그리고 미술 심리를 공부하는 작가는 그와의 만남을 다양한 색으로 표현한다. 그는 그녀에게서 노랑을 보았고, 그녀는 그의 불안에서 분홍빛을 보았다. 여느 연인처럼 별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언성을 높이며 싸울 때도 있지만, 그런 시간들 속에서 서로를 인정해주고 따스한 온기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 특별할 것이 없어서 평범하지만 오히려 특별한 이유가 없어 좋은 날들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서로에게 번져가는 그들의 색이 우리에게도 물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생각을 바꾸니 그 사람이 보였다. 내면을 바라보니 그 사람이 다가왔다. 나를 만나서 좋아하는 모습, 마주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 묻지도 않은 말을 알아서 이야기하는 솔직한 모습, 세심하진 않지만 챙겨주는 모습, 꾸밈없는 말과 꾸밈없는 눈빛까지, 모두 다. 만나보니 느껴졌다. 그를 바라보는 건 먼지 쌓인 거울을 닦아낸 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제야 진정으로 그 사람을 볼 준비가 되었다. _46~47쪽
우리는 둘 다 처음으로 기념일이란 것을 챙겼나 보다. 밤 12시 2분. 그 사람이 챙겨준 날짜 위에 있었다. 창밖은 불투명해도 그는 선명했다. 그가 마련하고 내가 고른 케이크를 먹었다. 케이크보다 그의 진실된 마음이 더 달았다. 남자 나이 서른일곱, 이러기 쉽지 않다. 사람의 진심은 바라지 않아도 전하는 마음에서 번져온다. 바라지 않아도 해주고 싶은 그 마음에서. _99쪽
“결혼할 건가?” “네.” 이번에도 주저 없이 바로 대답하는 그. 나만 빼고 모두가 결혼이란 보이지 않는 출발선을 넘어버렸다. 실은 만나기 전 부모님에게 결혼 이야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해두었다. 하지만 아빠의 입에서 금기의 단어는 튀어나왔고, 옆에 있던 엄마는 시치미를 뚝 뗐다. 나 혼자만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해봐야 소용없는 대화 속에서 나는 묵묵히 같은 웃음을 띠고 섞일 수밖에 없었다. 뜻하지 않은 자리가 뜻한 자리가 되어버렸다. 결혼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던 나는 성큼성큼 다가와 드리운 그물에 덜컥 걸려든 물고기가 된 것 같았다. 파닥파닥. _165쪽
어렵다. 이렇게 작은 것 하나에 아웅다웅하다 일이 커져버렸다. 겨우 수세미 통 하나 어디에 놓느냐를 두고 싸우다니. 시간이 흘러 화가 풀린 그는 내게 다가와 안아주며 말했다. “이제 그만 싸우자.” 나는 앞으로 싸울 일이 많을 걸 알기에 말했다. “어차피 싸울 거야.” 그가 대답했다. “그럼, 잘 싸우자.” _208쪽
비밀번호를 누르던 손으로 처음 벨을 눌렀다. 그가 문을 열어주었다. “홀딱 젖었네!” 안쓰럽게 바라보며 내가 들고 있던 짐들을 하나씩 건네받았다. 젖었으니 샤워하라고 말하는 그. 옷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데 나를 안아주었다. “추워? 더워?” 추위를 무척 잘 타는 내가 비에 젖어 추울까 봐 안아준 것인 듯했다. 온기가 번져왔다. 춥지 않다는 말에 그의 몸과 내 몸이 분리되었지만, 온기는 번진 그대로 남아 있었다. _246~2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