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쓸쓸한 사람 가운데
"분명 우리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상처는 평안을 가져올 것이다."
많은 날들이 흘러간다. 시간의 더께는 사람마다 다르게 쌓인다.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을 단단히 붙잡아 성찰하고, 그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힘과 생의 비밀을 발견하는 사람의 말과 글은 믿음직하다. 대만의 사유하는 공학자, 리자퉁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외롭고 쓸쓸한 사람 가운데』는 그가 대만의 일간지 〈연합보聯合報〉 문예칼럼에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책으로 1995년 출간 후, 30만 부가 팔린 스테디셀러다. 리자퉁은 대만의 칭화대학교, 징이대학교, 지난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교육자다. 오랜 기간 그 자리에서 고민하고 사유했던 생각들을 칼럼에 담았다.
“낮에 생각한 것이 있으면, 밤에 쓸 것이 생긴다.”
종종 사람들은 내게 평소에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고, 게다가 행정업무까지 처리하면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는지 묻는다. 비결은 많이 듣고 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를 생각하기만 하면 글 쓰는 영감은 대개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어느 날 더이상 사물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면, 분명 어떤 글도 써낼 수 없을 것이다. _에필로그 254쪽
리자퉁의 글은 관념적이지 않다. 리자퉁 스스로가 말하듯 그는 친구들과의 대화, 신문기사, 영화, 그림 한 편 등을 접하고서 영감을 얻는다. 즉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이 글감이 된다. 영화 한 편을 보고선, “당연히 원작자의 의도를 알 길이 없었지만 어떻게든 비교적 건설적인 해석을 만들어내고 싶었다”라고 솔직하게 토로한 후 영화에 대한 해석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는 그다. 나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은 어떤 주의主義나 사조思潮 류의 분석이 될 수 없다. 때문에 편안하고 익숙한 그의 글에는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이 담겨 있어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자아낸다.
소탈하고 담담한 문체는 그의 ‘배경과 이력’을 떠올리면 다소 의외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대만의 명문가 태생이다. 그의 증조부는 청나라 말기의 정치가이자 중국 근대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이홍장李鴻章(1823~1901)의 친형 이한장李瀚章(1821~1899)이다. ‘이한장’ 역시 청나라의 대신으로, 양광총독까지 지낸 세력가였다. 리자퉁은 대만의 명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후 다시 대만으로 돌아와 대학교수에 이어 총장직을 연임했다.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았으나 젠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멍청한 늙은이”라 칭하며 제자들의 배려나 관심을 과분해하고, 자신은 좌우명을 갖기에도 모자란 사람이라고 시종 겸허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런 삶의 태도가 그의 글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문중유애, 애중유문
글마다 사랑이 있고 사랑하는 마음속에 글이 있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리자퉁은 대학 재학중에 군교도소로 봉사활동을 다녔다. 주로 수감자들과 대화를 하며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의 일이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차별과 편견에 눈뜨는 계기가 됐다. 미국 유학을 가서는 지도교수가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었던 관계로, 장애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리는 경험을 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만 내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없애는 일이 시급하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정부는 시각장애인이 근무하거나 학습하는 과정 중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선량한 사람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혹은 “인류의 아름다운 정서가 충분히 발휘되기만 한다면 인류에게는 곧 진정한 평화가 올 테고, (중략) 반대로 인류의 저열한 감정에 내맡겨 세상을 이끌어간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지옥을 만들고 있는 셈일 테다” 라며 인류의 선善과 양심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차별과 편견이 있는 곳에, 따뜻한 시선을 두길 바라는 그의 관심은 가까운 이웃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리자퉁은 르완다의 난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떠돌이 아이들, 보스니아전쟁에서 희생된 청년들까지 두루 살핀다. 반백의 나이에 굶주린 여덟 살 아이의 입장이 되어 독수리에게 쫓기고(「저는 여덟 살입니다」), 열세 살 소년이 되어 총성이 오가는 거리에 서며 (「모반」), 라일락이 있는 초원에 덩그라니 남아 있는 청년이 된다(「산골짜기에 핀 라일락꽃」). 세상 어디든 소외된 이가 있는 곳이라면 그이가 겪는 상황을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감정이입에 기반한 공감을 촉구한다.
공학도의 잡학다식한 상상력이 가닿는 곳은
오직 ‘생명의 존엄’
전기기계학을 전공한 공학도답게, 그의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속으로만 하는 생각을 영상화하는 장치가 고안된 독재자의 집무실(「진면목」), 인류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외계인이 등장해, 인류는 ‘진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학명을 가졌다고 말하는 SF적인 에피소드(「몰래 엿듣는 사람」), 사회적으로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약’의 실험 대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인 한 야심가의 이야기(「부작용」) , 신원 조회를 한 후 입장 허가를 내리는 천국의 최신식 시스템 ‘등록처’ (「나는 누구인가?」)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이런 소재들이 수렴되는 곳은 결국 생명이다.
그가 접하는 여러 과학 저널에서는 약물이 인간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지만, ‘과학’을 신봉하는 그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감정인 사랑은 약물로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또한 생의 가치는,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이나 획득한 지위가 아니라 살고 있을 때 행했던 좋은 일에 있다고 말한다. 생명의 존엄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갖고 있는 여러 과학적 지식들을 끌어온 것이다.
“나의 세계는 행복하고 또한 아름답다.”
리자퉁 자신이 직접 겪은 바를 이야기하는 글 중 백미는 테레사 수녀를 만나고, ‘임종자의 집’에서 봉사를 하며 얻은 깨달음이 담긴 「높은 담을 헐어버리자」를 꼽을 수 있다. 「높은 담을 헐어버리자」는 이 책의 대만판 원제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인 리자퉁은 본인의 신앙과 신념을 따라 줄곧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인도 콜카타로 건너가 테레사 수녀를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리자퉁은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인 ‘임종자의 집’에서 머물며 사흘 간 봉사를 하다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한다. 줄곧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정작 진정한 빈곤과 불행은 회피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오십육 년 이래 편안했던 날들이 갑자기 자리를 내주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간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 않았던 “한 조각의 순결한 마음이어야, 자유롭게 베풀 수 있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까지 줄곧 그래야 한다”는 테레사 수녀의 말을 섬광처럼 이해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쉰을 훌쩍 넘은 나이, 리자퉁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완전히 변하는 경험을 한 후 한참을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높은 담’을 헐어버리자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들 모두는 마음속에 높은 담을 쌓는다. 높은 담 안에서 천국 같은 생활을 하면서 높은 담 밖으로 지옥을 밀어버리려 한다. 이렇게 우리의 삶이 그럴듯하다고 내심 아주 만족하며 인간 세상에 비참함이라고는 없는 듯 가장할 수 있다. 누군가가 굶어죽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잘 먹고 잘 마실 수 있다.
높은 담을 헐어버리자. 높은 담을 헐어버리기만 한다면, 우리는 넓은 마음 한 자락을 가질 수 있다. _1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