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현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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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년 100명의 인터뷰를 토대로 새로 쓴
‘지금, 여기, 청년’의 진짜 목소리
한국적인 의미의 ‘청년 문제’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최소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그동안 청년의 지위와 처지는 나아졌는가? 그렇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오히려 ‘청년 문제’라는 말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 사회의 ‘청년’에 대한 이해 수준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말 그대로, “아무도 청년을 모른다”.
그래서 20대 청년들이 나섰다. ‘아무도 몰랐던 청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0명의 인터뷰어가 100명의 청년을 심층 인터뷰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연 청년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사회에서 청년 문제라고 불리는 일자리, 주거 및 부동산, 연애·결혼·출산·비혼 등에 대해 당사자인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리했다. 더 나아가 청년 문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 청년 스스로의 정치와 담론까지 고민했다. 그리고 이를 책으로 써냈다. 그 누구도 아닌 청년 스스로 직접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한 것들로 정리한 오늘 청년의 역사, 청년현재사(靑年現在史)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 생산직 노동자부터 탈조선 대학원생까지 인터뷰를 통해 만난 여러 청년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이들의 이야기를 비망록(備忘錄)의 형태로 더했다.
그래서 이 책에는 ‘국가 부도의 날’을 유년기에 겪고(물론 그 이후에 태어난 경우도 있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에도 끝없는 ‘실업’과 ‘구직난’에 시달리며, ‘군사 독재’를 경험한 바 없지만 ‘사축’이라 느끼면서, ‘세월호 참사’와 ‘촛불 항쟁’의 한복판에 있었고, ‘역시 부동산밖에 없다’는 말을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기성세대’에게 들으며, ‘이생망’과 ‘소확행’을 읊조린다고 ‘욕먹는’, 이 나라 2030 청년들의 실체와 포부, 주장과 생각이 담겨 있다.
이것은 지금의 시점에서 “딱히 닮고 싶지 않고” “존경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기성세대의 낡은 시대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다. 30년 전 청년들의 꿈은 어떤 의미로든 오늘날 이 나라의 모습을 결정했다. 지금 청년들의 목소리에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청년의 모습 속에는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담겨 있다.
“기성세대를 존경할 이유가 있나요? 딱히 닮고 싶지 않아요.”
“청년이란 누구인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은 답하기 매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특히 기성세대에게 그렇다. 길게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짧게는 IMF 이후의 정치경제 또는 ‘잃어버린 10여 년’의 정부가 만든 오늘의 ‘청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하지만 이 질문에 선행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과연 청년에게 기성세대란 어떤 존재로 인식되는가?”
“기성세대를 닮고 싶지 않아요.” 100인의 청년 인터뷰이를 20명의 청년 인터뷰어가 만나 심층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청년현재사》는 분명히 말한다. 이들에게 기성세대는 매력적인 롤 모델이 결코 아니다. 태극기부대뿐 아니라 ‘민주화 세대’까지 포함하는(매우 중요한 측면이다!) 기성세대는 딱히 즐거울 게 없거나 매우 괴로운 ‘헬조선’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들이다. 최대한 좋게 생각해보아도, 뭔가 시도해보려고 할 때 답답하게 가로막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질문한다. “기성세대를 존경할 이유가 있나요?”
100인 인터뷰로 새로 쓴 청년의 현재사
특히 ‘민주화 운동 경험’과 ‘부동산 부자’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이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선 지금은, 어쩌면 ‘반공-유신-독재’ 정체성을 지닌 이들의 무지한 시대보다도 청년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더욱 혼란스러운 시기다. “아무도 모르는 청년”을 파악하기 위해, 청년들 스스로가 나섰다. 직접 나서 기성세대의 틀에 맞춰 해석된 청년이 아닌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청년의 모습을 찾고자 노력했다. 실업, 노동, 주거 및 여러 ‘청년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각양각색 생각을 들었다. 그동안 청년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규정되었던 ‘인 서울 대학을 다닌 2030 남성’뿐 아니라, 계급과 젠더와 지역을 아울러 전체적인 상을 그려보고자 했다.
미래의 주역이며, 현재의 모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로운 감성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모순에 사회적 약자로 노출되는 청년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현안인 일자리, 주거, 가족(출산·결혼·육아·비혼) 문제 등을 ‘청년적’ 관점에서 고민했다. 청년의 문제는 곧 한국 사회 전체와의 유기적 연관 속에서 정확히 파악되고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국가의 역할과 청년의 정치와 담론에 대해 고민했다. 구체성을 확보하고자, 생산직 노동자·9급 공무원·고시원 거주자부터 전업주부·성소수자·탈조선 대학원생에 이르는 14명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비망록(備忘錄)으로 재구성해 수록했다. 개별 청년들의 사건을 모아 보편성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말 그대로의 현대사(現代史)이자 현재사(現在事)인 것이다.
청년 문제 해결은 낡은 시대를 타파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터뷰어들을 대표해 책을 쓴 3명의 저자들은 청년 문제 해결의 핵심이 “세상을 바꾸는 것”에 있다고 단언한다. “낡은 시대”를 타파하는 것에서부터 청년의 살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청년 담론을 ‘청년만을 따로 떼어내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경향과 ‘청년 운동을 계급 문제 등으로 일체화시키는’ 경향의 잘못된 경쟁으로 보고, 이를 종합해 지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낡은 시대를 타파하는 데에는 청년이 앞장서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성세대의 입맛에 맞는 청년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의 눈으로 본 새로운 세상의 상이 전체 사회에서 충분히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스페인의 〈포데모스〉, 대만의 〈시대역량〉과 같은 청년 정치 세력에 주목한다. 투박하고 정돈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이론과 정치 실천이 그렇지 않은 것이 있던가? 청년들의 발언에 대해 꼭 따라붙는 그런 논평이야말로 ‘꼰대’스러운 말이다. 청년에게는 더 많은 무대와 마이크가 필요하다. 이를 허락하지 않는 낡은 시대와 청년들은 결별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는 순수함이 아닌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청년들의 정치 세력화를 필요로 한다.
20대 남성 저자들의 ‘정치 투쟁’
전작 《청년, ‘리버럴’과 싸우다》에서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를 제안했던 저자들은 청년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같은 방향의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최근 ‘20대 남성의 정치 성향’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은 상황에서, 진보를 지향하는 ‘20대 남성’ 저자들의 지속적인 ‘정치 투쟁’은 주목할 만하다. 30년 전 청년들의 꿈은 어떤 의미로든 오늘날 이 나라의 모습을 결정했다. 과연 저자들은 앞으로 어떤 정치와 담론을 제기할 것인가? 《청년현재사》에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책 속으로
현실의 땅을 딛고 ‘실존’하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만났던, 살아 숨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풀어보려고 한다. 청년들의 현재사, ‘당신’이 아닌 ‘우리’가 말하는 청년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건 비단 ‘청년’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청년들이 직접 말하는 솔직한 이야기는 작금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기성세대가 느낄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병폐들과 모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몰랐던 청년’들의 이야기다. 모두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은, 그런 청년들의 이야기다. _14쪽
새로운 가치를 주장하고 싶고, 지금의 사회 시스템을 좀 더 나은 형태로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세대교체’를 외치는 ‘세대 프레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는 기성세대가 기획한 ‘어른이 허락한 청년이즘’과 다르다. 한국 사회의 정상화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한 발판이다. _34쪽
청년들에게 취업에 성공한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냐고 물었다. 하나 같이 ‘칼퇴근해서 맥주 한잔하는’ 그런 소소한 삶을 말했다. 대단한 야망이나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내 집 마련을 하겠다는 목표조차 없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작고 어렵지 않은 일인데, 그런 평범함조차 꿈이 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_68쪽
대한민국에서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게 학벌이든, 일자리든, 집이든 말이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때로는 운을 탓하기도, 공정하지 못했다며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불공정한 경쟁과 부정부패한 사회시스템이 있더라도, 자신이 못난 탓이라고 생각하는 착한(?) 사람들 또한 어디에나 있다. 취직이 안 되는 것은 자신이 못났기 때문이라며, 학벌 사회에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자학하는 청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집은 다르다. 집을 살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은 없다. 그만큼 사회적 해결을 요구하는 공감대가 높다는 말이다. _91쪽
저출산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은 국가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면 그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는 국가 자체에 대한 신뢰를 너무나도 많이 잃었다. 이 나라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사람도 많았다. 정부가 무엇을 하든, 사회 구성원으로부터의 기본적인 신뢰 회복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_112쪽
누군가는 기본 소득이 어떻게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성이 될 수 있는지 물으며, 청년이라는 특수성을 상실하는 순간 청년 의제는 사라진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청년 문제의 특수성은 ‘사회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점에 있다. 청년 세대는 미래 사회의 주역이며, 미래 사회는 현재 존재하는 수많은 병폐가 해결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사회와 싸워야 하고, 여성해방을 위해 가부장제와 싸워야 한다면, 청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낡은 시대와 싸워야 한다. _135쪽
결국 지금 청년 세대가 가지고 있는 정치에 대한 소극성과 왜곡된 인식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그 책임은 우리 사회가 모두 분담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청년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조직과 집단성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 최근 많은 청년들이 나서고 있다.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의 역할은 이러한 청년들의 움직임을 더 자유롭게 보장하고 지원해주는 것이지, 20대를 ‘정치 혐오’라고 나무라서는 안 된다. _149쪽
〈포데모스〉와 〈시대역량〉 모두 청년이 중심이 되어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 케이스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청년이 중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 수당, 청년 고용 할당과 같은 일시적이고 수혜적인 정책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청년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원인을 찾지 않고 요즘 청년들이 힘들다는 푸념만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정치적 역량을 키우고 조직하는 것 역시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청년 조직과 청년 정당을 상상한다면, 청년이라는 정체성에 집착하는 것 이상의 내용이 필요하다. _162쪽
순수성에 대한 강박은 현 청년 세대가 지난 10년 동안 겪어온 공통된 경험에서 왔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하에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선량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선량하지 않은, 순수하지 않은 시위꾼들로 내몰렸다. 정치적 공동체에 몸담아본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는 지난 권력의 강력한 메시지에 그 누구보다 깊이 동화되어왔을지 모른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순한 생각을 갖춘 비정상 국민으로 인식된 시대에 자연스럽게 순수성에 대한 강박과 불순함, 곧 정치성에 대한 거부감이 각인된 것이다. _172쪽
멘토 열풍은 기성세대를 향한 청년들의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기댈 수 있는 존재, 믿고 따를 수 있는 존재,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기성세대는 없었다. 그들이 특별히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는 변화하고 변화하는 미래는 청년 세대의 몫이기 때문이다. 멘토 열풍의 실체는 청년들이 해결해야 할 혹은 요구해야 할 문제를 기성세대에게 기대어 해결해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미래는 기성세대가 던져주는 것을 받아먹는 게 아니다. 청년 세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_183쪽
대한민국은 ‘늙은 나라’다. 건국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둔감하고 또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늙었다. 그래서 재벌들은 대대손손 재벌이고, 자본주의는 영원한 사회 시스템이며, 이런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학벌주의도 부동산 투기도 변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나 수명이 다하면 죽는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때로 정의가 악을 이기지 못해도, 낡은 것이 새것으로 대체된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_194쪽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믿는다. ‘청년’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입장과 ‘청년’만 내세우면 뭐든 가능하다는 입장, 두 극단적인 견해의 중간이 아니라 둘을 종합하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자 했다. 청년 운동과 진보 운동의 일치를 위한 시도였다.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하다. 아직 청년 세대에 대한 개념 정립 작업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조금 더 논리를
다듬는다고, 더 많은 시간 책을 읽고 머리를 굴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제시한 방향을 토대로 더 많은 청년들을 만나고 그 기록을 통해 평가하고, 검증하고, 토론해나가며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답은 현실에 있고, 그 현실에서 찾은 답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 계속되어야 한다. _2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