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여자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사이
중간지대를 찾아 나선 어느 도축사 이야기
동물이 접시 위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거치는 모든 과정을 되도록 가까이에서 지켜보려는 어느 도축사의 집념 어린 다큐멘터리. 잡지의 라이프스타일 지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최고의 삶을 사는 방법을 조언하면서 10년의 시간을 보내다 환멸을 느낀 저자는 자의 반 타의 반 직장을 그만두고 도축과 정형을 배우러 프랑스 가스코뉴로 간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고기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좋은 삶을 살았고, 좋은 죽음을 맞았다 말할 수 있을까? 동물의 사체를 눈앞에 두고 죽음과 음식의 교환이 일어나는 어느 한순간도 외면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에서 우리는 우리 대부분이 외면해온 육식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시도를 발견한다. ‘기르고, 죽이고, 먹는’ 모든 행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경험을 재료 삼아 저자가 차려낸 식탁은 풍부하고, 흥미로우며, 무엇보다 숨김없이 사실적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 앞에 놓인 접시를 스스로 바라보게 만드는 책.
편집장도 없이 야근도 불사하고 뼈 빠지게 일한 대가가 해고라니, 그것도 복도를 쿵쾅거리며 걸어 다녔다는 게 해고 사유라니! 10년 동안 사귄 애인과 헤어지고 정체불명의 치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음식 전문 기자에게 어처구니없이 날아든 해고 통보. 말 그대로 30년 인생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기분을 맛본 그녀는 어느 날 창밖에서, 절묘한 타이밍에 벌레를 낚아채는 개똥지빠귀를 관찰하다가 느닷없이 맘을 먹는다. “더는 진짜에 대한 글을 쓰지 않겠다. 내가 직접 진짜가 되겠다”고….
30년 인생이 바닥으로 내리꽂혔을 때,
펜 대신 칼을 집어 들었다
1.
‘탑 텐 레스토랑’, ‘가성비 좋은 열두 가지 메뉴’, ‘망고를 먹는 다섯 가지 방법’ 같은 기사를 쓰면서도 채워지지 않은 허기가 있었다. 저자는 그 허기를 접시 위에 올라온 음식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면서도 음식과 자신의 거리감만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식탁 위에 올라온 스테이크가 어떤 고기의 어떤 부위에서 왔는지, 그 동물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 레스토랑의 주방에 오게 되었는지 등,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고, 답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캐머스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했다.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사냥과 낚시를 떠나던 어린 시절, 채식주의자로 전향한 십 대 시절,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한 이십 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먹는 행위는 단순한 연명의 수단이 아닌 삶과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연관된 기술과 지식의 차원에 있었다. 그러나 10년 동안 음식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러한 기술과 지식은 오히려 멀어져갔다.
캐머스는 존 버거를 인용하며 “경험의 순간에 다가가는 행위에는 면밀한 살핌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육식이라는 경험의 순간에 다가가기 위해 버거가 설정한 지표를 따라 음식과 나,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세계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서 연결성을 회복하려는 집념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녀는 산업화된 식품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거리와 연결에 대한 감각을 되찾기 위해 도축장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그곳에서 죽음이 음식과 교환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며 식탁 위에 고기를 올릴지 말지부터 고민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서류함 구석에서 만기일이 안 된, 사용 이력 없는 신용카드를 찾아내 가스코뉴행 비행기를 예약한다. 자신의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연결성을 되찾기 위해.
“내가 돼지를 죽이다니!”
도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육식의 본질에 관한 가장 사실적인 에세이
2.
가스코뉴에서 캐머스는 자신들이 재배한 곡물로 돼지를 먹이고, 그 돼지를 직접 도축하고 가공해 시장에 내다파는 샤폴라르 집안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도축과 정형 기술을 배운다. 이들은 종돈부터 소시지까지, 한 마리 동물이 식탁 위에 오르기 직전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장악하고 소비자들에게 보증하는 사람들, 캐머스 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일을 저항적인 형태로 완전하게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샤폴라르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그녀는 음식 전문 기자로 일하던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전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지고 눈앞의 상황들을 설명할 어떤 단어도 찾지 못한 채 블랙홀에 빠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프랑스어는 ‘몰라요’와 ‘미안해요’ 정도고, 돼지고기의 가장 비싼 부위를 싸구려 꼬치구이용 고기로 둔갑시키며, 돼지 사체와 포옹하듯 미끄러지고, 대부분은 헛발질을 하면서도 서서히 돼지의 흉곽을 ‘책처럼 펼치는 법’, 안심이나 등심 따위가 아니라 피와 내장, 머리와 혀, 살과 뼈 모두를 훌륭한 음식으로 바꾸어내는 법을 하나둘 깨우치게 된다.
그밖에도 캐머스는 놀라울 정도로 작은 규모로, 옛날 방식에 따라 일을 하는 가스코뉴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을 샤폴라르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준 ‘장봉 통역가이자 카술레의 여왕’ 케이트 외에도 오리와 거위를 방목해 키우며 전통의 방식으로 간을 살찌워 푸아그라를 만드는 예한느, 인동덩굴 같은 집주변 재료들을 이용해 소량의 증류주를 오랫동안 양조해온 그로, 농부시장에서 만난 자부심 가득한 고기 생산자와 치즈 장수들, 그리고 이들에게서 매주, 미국에서는 아침 식사 한 접시에 해당할 고기를 일주일에 걸쳐 신중하게 조리하고 최대한 다양한 부위를 맛보길 원하는 소비자들까지….
99퍼센트에 해당하는 산업화된 식품 시스템과 공장형 축산의 바깥에서 상업적으로 위태롭기 그지없는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삶에서 캐머스는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좁은 통로를 만들어 내는 게릴라들, 그리고 이러한 게릴라들의 네트워크를 발견한다. 잠봉, 소시송, 부댕블랑 등의 샤퀴테리(프랑스식 육가공품), 콩을 넣어 진득하게 졸인 카술레, 그리고 전통술인 아르마냑과 달달한 폴록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향기만큼이나 매혹적인 가스코뉴 사람들의 삶과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는 저자의 안내를 따라 동물의 사체를 눈앞에 두고 죽음과 음식이 교환되는 과정에 따라붙는, 하지만 우리가 꾸준히 외면해온 긴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 대부분이 외면해온 육식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그 중간지대에서 흘러나오는
맛과 지혜, 그리고 진실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3.
결국 캐머스가 가스코뉴에서 배운 ‘기술’은 ‘기르고, 죽이고, 먹는’ 모든 과정들에 깃든 역설과 복잡성을 깨닫고 그것을 기쁨과 애정, 그리고 진정성을 가지고 삶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가스코뉴의 소규모 도축장에서 천장에 달린 레일에 매달려 이동하던 돼지의 사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적인 장면에서 시작한 캐머스의 이야기는 포틀랜드로 돌아와 도축과 정형 등 고기 수업을 진행하는 포틀랜드 고기 공동체(Portland Meat Collective)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끝이 난다. 도축업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강하고, 누구보다 고기를 사랑하지만 누구보다 그 고기를 만들어낸 죽음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터부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그리고 그 터부만큼 고기 자체를 거부하는 문화가 강한 포틀랜드 한복판에서 장인의 전통적인 도축과 정형 기술을 가르치려는 그녀의 행보는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적어도 캐머스는 미디어의 주목을 끄는 데는 확실히 성공한다. 그러나 ‘섹시한’ 여자 도축사라는 이미지는 그녀 자신에겐 전혀 성공적이지 않았다. 자신의 성性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 자신의 시도를 비양심적이라고 보는 시선들, 혹은 그것이 너무 노골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들에 굴하지 않고, 캐머스는 자신의 접시 위에 올라온 햄 한 조각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내겠다는 각오를 유지한다. 결국 이 집념이 직접 도축한 돼지와 오리, 토끼들로 자신과 친구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는 간호사 레비, 캐머스처럼 잘 나가던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정육점에서 홍일점으로 일하는 조와 같은 미국의 샤폴라르들을 움직인다. 캐머스가 이 포틀랜드 괴짜들을 결집시키는 과정은 삶에서 영감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칼을 든 여자》는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삶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해 낯설고 힘든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여자의 꿈과 그 꿈을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용기와 집념, 그리고 정직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대부분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점에서 끝까지 진실을 파고들려는 저자의 시도는 우리 앞에 놓인 접시와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우리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캐머스는 지금도 열심히 기르고 죽이고 맛보며, 그 모든 행위들에 깃든 역설을 의식하며,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사이의 중간지대를 확장해 가는 중이다.
■ 본문 중에서
나는 지난 10년의 인생을 모든 것에 대해 전부 안다고 확신하며 살았다. 나는 알고 있어서 돈을 받았다. 모르면 알아내라고 돈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을 글로 쓰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기발한 표제를 뽑아내라고 돈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도 자신이 없었다. 마치 그 누구도 이 모든 것을 기록하라면서 내게 돈을 지불하지 않으니 나 자신에게조차 그것을 설명할 단어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단어도 없이 죽음과 저녁식사 사이에 있는 그 블랙홀 속을 헤엄치고 다니는 일은 심오하고 막막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게 했다._18쪽
나는 프랑스에 가서 동물을 저녁식사로 바꿔놓을지 말지를 놓고 치열하게 싸울 생각이었다. 이 문제는 현대의 부유한 선진국 사람들이 직면한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논쟁이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건 나 자신에 대한,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전체 세계에 대한 직접적이고 비타협적인 정직함, 내가 10년간 라이프스타일 잡지 편집자로 지내는 동안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그런 정직함이었다. 나는 칼을 집어 들었을 때 잡지 글쓰기라는 세계와 정말로 절박하게 연을 끊고 싶었다. 나는 더는 진짜에 대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직접 진짜가 되고 싶었다._24쪽
도미니크가 자신의 몸에 있는 근육을 가리킬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나는 걷고, 뛰고, 앉고, 웅크릴 때 이것들을 사용한다. 나는 돼지, 적어도 움직임이 허락된 존재들이 그렇듯 거의 항상 이것들을 사용한다. … 32년간 고기를 먹으면서 (때로는 먹지 않으면서) 돼지의 복잡한 해부학적 구조를 내 몸과 관계에서 깊이 생각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임을 깨달았다._131, 132쪽
(샤폴라르 사람들이) 직접 사료를 재배하여 곡물 가격을 통제하고, 고기를 직접 부가가치가 높은 소시지와 장봉 같은 제품으로 가공한다는 것은 이윤이 가족 내에 머문다는 뜻이었다. … 샤폴라르 집안사람이 판매한 고기는 절대 이들의 농장에서 25킬로미터 이상 이동하지 않고, 이들은 동물의 모든 부위를 1만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판매한다._138, 139쪽
돼지의 눈, 나의 눈. 돼지의 뇌, 나의 뇌. 돼지의 혀, 나의 혀. 돼지의 두개골, 나의 두개골. 나처럼 거기서 죽은 돼지의 뇌를 손에 쥐고 같은 부위를 서로 비교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혐오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동족의식을 느꼈다. 경외심을, 경이로움을, 공포를, 그리고 비애감 역시 한 번에._165쪽
(존) 버거는 이렇게 이어간다. “오늘날 이 이원론의 흔적은 동물과 친밀하게 생활하고, 동물에 의존하는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다. 소작농은 자신의 돼지를 좋아하고,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그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 저장한다. 중요한 점, 그리고 도시의 이방인이 이해하기에 대단히 어려운 점은, 이 문장의 두 진술이 ‘하지만’이 아니라 ‘그리고’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고민을 거부하면, ‘하지만’의 땅에서 살면서 ‘그리고’를 접어두면, 우리는 이런 어려운 질문을 대면할 필요가 없다고 쉽게 믿게 된다._167쪽
우리 모두가 우리가 먹는 동물과 이 정도로 가깝게 살아간다면 어떨까? 만일 우리가 밥상에 고기를 올리기 위해 이런 톱과 칼과 고기용 식칼을 쓰는 일을 직접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눈으로 봐야 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일이 요구하는 힘겨운 역설을 이해한다면 그 친밀한 독해를 해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려 할까?_189쪽
우리가 돼지를 죽였다. 그녀는 훌륭한 돼지였다. 나는 그녀의 피를 받는 것을 거들었다. 그는 그녀를 기르는 것을 도왔다. 돼지는 훌륭한 삶을 살았고 훌륭한 죽음을 맞았다. 우리는 이 경험의 복잡성을 포용하고 오늘 밤 잘 먹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부위를 맛보고 그 맛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지방을 라드로 만들고 그걸 가지고 버터와 스프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돼지의 뼈를 챙겨서 그 육수로 우리 몸을 보할 것이다. 우리는 지방과 껍질의 언어로 꿈을 꿀 것이다. 이 언어는 우리를 사고하게 할 것이다. 사고는 우리에게 숭배하는 마음을 안길 것이다. 이 숭배심은 우리를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 것이다._209, 210쪽
누군가 내게 접시에 담긴 햄이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그것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은 일종의 소유였다. 샤폴라르 집안이 획득한 완전한 소유는 아닐 수 있지만, 산업화가 우리의 식품 시스템을 장악하고 난 뒤 우리가 탈취당한 지식과 기술을 되찾는 행위임은 분명했다._236쪽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동물을 먹는 행위에는 양극화되기 쉬운 무언가가 있다. 동물을 절대 먹지 않거나,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해 절대 진지한 질문을 던지지 않거나. 운동가가 되거나 운동가를 경멸하거나”라고 말한다. 나는 이 양극 모두에 서보았고 이제는 죽음과 저녁식사 사이의 중간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하지만’이 아니라 ‘그리고’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_239쪽
프랑스에서 돌아온 뒤부터 사람들이 마치 한 번도 보지 못한 묘기를 펼치는 우리 안에 든 원숭이 대하듯, 도축과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점점 의식하게 되었다. “이쪽은 내 친구 캐머스야. 도축사가 되려고 프랑스에 갔다온 지 얼마 안 됐어. 그게 믿어져?” 내지는 “당신은 섹시한 도축사예요” 같은 이야기. 나는 진짜 도축사가 되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어떤 파티에서 딱 한 번 만났던 남자는 “당신하고 침대에 들어갈 때는 날카로운 칼이 없다는 걸 반드시 확인해야겠군요” 하고 말하기도 했다._264쪽
우리는 같은 공기를 들이쉬면서 동물의 눈을 들여다본다. 같은 나무가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준다. 이 세상은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우리의 공통된 장소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길게 속도를 늦춘다. 그리고 감당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그 순간, 한 동물이 또 다른 동물을 식용으로 죽이기로 선택한 그 순간이 오기 직전에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어쩔 수 없이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동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역시 어쩔 수 없이 깨닫게 된다._403, 404쪽
“여러분이 결정하면 돼요. 우린 여러분에게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에게 고기가 어떻게 여러분의 접시에 놓이게 되는지 전 과정을 보여줄 생각이에요. 그 과정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보여주겠지만, 그 과정이 항상 이상적인 건 아니에요. 모든 돼지농장이 부바 씨 농장 같지도 않고, 모든 도축장이 우리가 월요일에 가게 될 곳 같지도 않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저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느낄지 혹은 생각할지를 알려주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여러분이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전과 같은 방식으로 다시 고기를 보지 못하게 되리라는 건 내가 보장해요.”_411쪽
폭찹은 집어치워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폭찹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돼지는 오로지 폭찹으로만 되어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테지. 이래서 우리가 그 많은 돼지들을 최악의 방식으로 생산하는 거라고요. 폭찹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돼지머리를 보여주자고요. 돼지 혀를 보여주자고요._419, 420쪽
■ 국내외 리뷰
첫째로 이는 미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펜 대신 칼을 들게 된 여자, 캐머스 데이비스가 서술하는 수년의 궤적은 모두가 알 법한 육식의 뒷모습을 삶의 안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자 질량과 생명,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허무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날것의 촉감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생생한 이 이야기를 통해 그녀가 제안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식사 앞 경건함. 육식을 넘어 먹는 행위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이 한 권 이상의 증언은 필요 없을 것이다._조영훈(소금집 집사)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기자 시절이 떠올랐다. 야심만만하던 기자가 펜을 꺾고 도축장에 뛰어들었을 때, 그녀가 걷어찬 것은 경력 사다리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멀쩡한 일을 관두고, 젊은 여자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개척한다는 것. 이 책은 먹는 행위 이면의 진실을 탐사하는 르포이면서 동시에 내게는 삶을 재편하는 과정에 필요한 용기, 인내심, 절제, 그리고 추진력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다. 펜을 놓을지 말지를 두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20대의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_이여영(월향 대표)
이 책은 세 가지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음식은 어디서 오는가? 삶의 목표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그리고 사랑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_〈선데이 타임스〉
자기실현의 여정에서 풀어내는 도축에 관한 이야기. 동물 혹은 음식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인간적인, 그리고 사려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_〈베너티페어〉
용감하며 … 독창적인 책_〈더 타임스〉
도축장에서 아름다움과 도덕적 우위를 찾아나서는 여행 … 젊은 여성의 기업가정신이 만들어낸 것은 있는 그대로의 디테일이었다._〈커커스 리뷰〉
이제 막 작가로 데뷔한 데이비스는 우아하고도 단호하게 키보드와 칼을 어떻게 교환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 그녀의 힘찬 글쓰기와 생생한 묘사력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마치 인생을 바꿀 여행에 막 나선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_〈퍼블리셔스 위클리〉
육식 정치학의 스펙트럼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 이 책은 ‘꿈’이라는 마법의 왕국으로 스스로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훌륭하게 보여주는 증거다._〈스트롱 워즈Strong Words〉
솜씨 좋은 이야기꾼 데이비스는 우리가 어떻게, 왜, 그리고 무엇을 먹는지를 이야기하되 훈계한다거나 판단하지 않고, 생각하게 만든다._〈미니애폴리스 스타 트리뷴〉
동물을 ‘농장에서 식탁으로’ 바꾸는 일에 따르는 고통을 깊은 성찰을 담아 감각적이고 감성적으로 노래했다. 이는 미국 문화에서 높이 평가받으면서 동시에 맥이 풀릴 정도로 가치 절하되어온 일이기도 하다._〈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