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의 모험
옥스퍼드 백과사전 음식 필자의
‘궁극의 미식’ 디저트 이야기!
앙증맞은 마카롱, 입에서 사르르 녹는 스펀지케이크, 맛 좋은 아이스크림, 가볍고 폭신한 프로피테롤…. 차마 먹기 곤란할 정도로 예쁜 디저트들은 그 매혹적인 모양새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달달하게 해준다. 다이어트의 압박이 여러모로 거세기는 하지만 약간의 죄책감을 살짝 묻어두고서, 우리는 끝내 디저트를 한입 베어 물어 행복감을 맛보고야 만다. 식사를 어지간하게 하고 난 다음이라도, 괜찮다. 우리에겐 “위가 하나 더 있으니, 디저트가 들어갈 공간은 항상 넉넉하다.” 디저트는 본능 중의 본능인 식욕, 식욕 중의 식욕인 달콤함을 가장 집약적으로 구현해놓은 ‘궁극의 미식’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가히 디저트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디저트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국내 디저트 시장 규모는 2013년 3,000억 원의 일곱 배가 넘는 2016년 2조 2,000억 원 규모로 커졌다. 백화점들도 앞 다투어 디저트 매장 수를 늘리고 있으며, 심지어 한 백화점에서는 디저트 매출이 조리식품을 앞지르기도 했다. 편의점 디저트, 이른바 ‘편저트’의 유행도 거세다. GS25가 자사가 판매하는 디저트빵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에만 전년대비 판매가 1.6배 정도 늘어났고, 5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약 15배나 늘어났다고 한다.
“오늘날 디저트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개중엔 유독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도 달콤한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도 이제는 왕의 식탁에만 오르지 않는다. 누구나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바야흐로 디저트의 시대가 열렸다.”(284쪽)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디저트들은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이 책은 다채로운 디저트들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상세하게 살펴보며, 오븐이나 냉장고 같은 조리도구부터 시대별로 유행을 선도한 디저트 코스에 이르기까지 디저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향해 달콤하고 로맨틱한 모험을 떠난다. 디저트가 별개의 코스로 분리되기 전인 달콤한 음식과 짭짤한 요리가 한 상에 같이 올랐던 시절을 시작으로, 격의 없는 디저트들이 다시 부흥을 맞고 있는 동시에 분자요리사가 연금술사 뺨치는 솜씨로 디저트를 창조하는 현시점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식탁을 화려하게 수놓은 디저트의 흥미진진한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디저트를 지적으로 즐길 만한 이야깃거리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레스토랑에서 프랑스어 메뉴판을 읽으며 뽐내는 게 오늘날 불가능해진 까닭은?
- 믹스제품 뒷면에 몇몇 재료를 별도로 넣으라는 지시는 고도의 마케팅이었다?
- 와플과 피자와 아이스크림콘은 알고 보면 사촌이다
- 19세기에 최고의 파티시에가 되려면 왜 건축학을 공부해야 했나?
-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미국에서 애국심의 상징이 되었을까?
- 중세 사람들은 파이 안에 살아 있는 검은 새들을 넣어 즐겼다
- 커스터드 파이가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에서 대유행한 이유는?
- 왜 요즘 요리사들은 과학실험실에서 장비를 빌리고, 약국에서 재료를 공수할까?
저자 제리 퀸지오는 본인 자신이 디저트를 즐기는 마니아로, 디저트와 관련된 여러 책을 써왔다. 지은 책으로 《푸딩》 《설탕과 눈: 아이스크림 제조의 역사》 《음식과 철도》 등이 있다. 이른바 ‘덕업일치’의 모범적인 사례로, 글쓰기 실력을 인정받아 2010년 국제요리전문가협회IACP의 ‘요리 역사 저술’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울러 권위 있는 옥스퍼드 백과사전의 ‘미국 음식’ 부문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지긋이 바라보며 웃음 짓는 프로필 사진에선 더할 수 없는 만족감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디저트를 한입 깨무는 것과 같다. 멈추고 싶어도 못 견디고 한입 더 먹게 된다. 그렇게 한 페이지가 더 넘어간다.”_〈컬리너리 히스토리언 오브 워싱턴 DC〉
디저트의 시대,
황홀한 역사의 만찬장으로 떠나는
설레고 가슴 두근대는 여정!
1장 ‘디저트의 탄생’에서는 디저트의 가장 초창기 모습을 살펴본다. 중세의 디저트 음식, 디저트 식탁, 디저트 풍습 등을 다양하게 다루며 디저트 탄생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중세에는 식탁에서 따로 디저트 코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것과 짭짤한 것이 한꺼번에 식탁 위에 올랐다. 또한 디저트는 우리에게 친숙한 달콤한 음식들도 아니었다. 커스터드, 파이, 타르트, 푸딩 등은 고기나 생선을 넣은 짭짤한 음식인 경우가 빈번했다. 대표적인 후식인 과일의 경우, 생으로 먹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보편적이다가 차츰 최상품 과일들이 귀하게 취급되기 시작했다. ‘디저트’를 지칭하는 용어도 다양했다. ‘테이블을 떠난다’는 뜻의 ‘이슈 드 타블’, ‘다소 품위 없는 작별’을 뜻하는 ‘부트오르’, ‘나중에 먹는다’는 뜻의 ‘애프터스’ 등이 경합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디저트’는 프랑스어 ‘desservir(식후에 식탁을 치우다)’에서 유래했다.
2장 ‘눈으로 먹는 디저트’에서는 시각적 특성이 강조된 디저트 문화의 풍경을 살펴본다. 오늘날 우리는 디저트를 먹기 전에 사진을 찍곤 한다.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디저트가 원래부터 간직한 특성이다. 중세는 휘황찬란한 식탁 문화로 유명한 시대였다. 프랑스 앙리 3세가 베네치아를 방문했을 때, 그는 냅킨을 집어든 순간 놀랐다. 냅킨이 설탕으로 만들어져 있던 것이다. 접시와 빵은 물론이고 커트러리까지 모든 것이 설탕이었다. 식탁에는 새하얀 순백색 설탕으로 만든 여성의 형상 300개가 놓였다. 17, 18세기에는 설탕이 널리 퍼지면서 정교한 설탕 조각상을 만드는 ‘피에스 몽테’라는 장인이 따로 있었고, 이들은 건축학을 배워가면서까지 그들의 식탁 세계를 창조해냈다. 특히 식탁 구성과 관련하여 프랑스식 접대법이 대유행했는데, 이전처럼 식탁을 다양한 음식으로 풍성하게 채우지 않고 음식의 위치를 신중하게 계획해서 대칭형 패턴으로 놓았다. 모든 음식에는 제자리가 있었으며 올바른 정찬을 위해서는 모든 음식을 제자리에 놓아야만 했다. 한편 ‘셰프’라는 단어는 18세기에 수많은 요리 서적을 남긴 작가 프랑수아 메농이 자신을 궁궐 저녁 식사를 담당하는 셰프라고 지칭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그렇게 ‘셰프 드 퀴지니에’는 주방 담당자를, ‘파티시에’는 페이스트리 키친 담당자를 일컫는 용어가 되었다.
3장 ‘크림, 크림, 크림’은 유제품 디저트의 넓고 깊은 세계를 다룬다. 한때 크림은 굉장한 사치품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우유 짜는 소녀 놀이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국에서 지주들은 오락용 낙농장을 통해 그 땅을 소유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자신들이 토지를 책임 있게 관리하며 시골의 가치에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로 이용했다. 저자는 지금은 사라지거나 인기가 떨어진, 한때 유럽을 풍미한 크림 기반 디저트들도 자세하게 소개한다. 그중 실러버브(와인 크림)나 플러머리(일종의 유제품 젤리)는 다양한 일화를 남겼다. 마치 한국의 붕어빵 같은 개념의 플러머리 물고기는 당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고 한다. 한편 마크 트웨인은 증기선에 꾸며놓은 신혼부부의 신방 장식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썼다. 신방의 “허세 가득한 플러머리는 그것을 칭송하는 시민들의 온전한 사고력을 저해한다.” 오늘날 인기 있는 커스터드 역시 유제품 디저트의 일종인데, 그 기원은 최소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커스터드라는 단어는 ‘크러스타드’에서 유래했는데, 딱딱한 껍질이 있는 타르트라는 의미다. 커스터드의 바들바들 떠는 모양은 20세기 할리우드 영화에서 단골 유머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디저트가 없다면
삶도 덜 달콤해질 것이다”
식탁을 화려하게 수놓은 디저트의 흥미진진한 역사
4장 ‘모두를 위한 디저트’는 아이스크림, 초콜릿, 젤리 등의 디저트가 19세기 들어 대중적으로 보편화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옛날에 아이스크림은 얼음을 구할 수 없으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을 뿐더러 설령 얼음이 있다고 해도 만들기 어려웠다. 그러다 1843년 필라델피아 출신의 미국 여성 낸시 존슨이 최초의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개발했고, 이것을 사용하면 전문가나 주부 할 것 없이 더 빠르고 쉽게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었다. 젤리 역시 과거에는 비용도 많이 들고 만들기도 어려워서 오직 하인을 거느린 상류층만 즐길 수 있었으나, 19세기 후반에 들어 젤라틴이 시장에 대량 공급되면서 중산층 가정에서도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초콜릿의 생산과 소비 패턴이 완전히 바뀐 것도 19세기 후반이었다. 음료용 초콜릿 파우더의 개발, ‘콘칭’ 기법을 통한 부드럽고 깔끔하게 녹는 초콜릿의 탄생, 초콜릿 반죽을 만들 수 있는 수력압착기 개발 등의 혁신 덕분에 오늘날의 초콜릿과 코코아 제품이 탄생했다. 그중 하나가 네모난 초콜릿 디저트인 ‘브라우니’로, 1880년대에 캐나다의 일러스트레이터 팔머 콕스가 그린 〈브라우니〉라는 유명 만화에 나오는 요정 무리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9세기에는 새로운 요리 기계와 장비들이 등장해 디저트에서도 일대 진전이 이루어졌다. 온도 조절 장치가 달린 새로운 오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요리사들이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판단과 경험에 의존해야 했다. 심지어 오븐에 직접 손을 넣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살피기도 했다. 오늘날 사용하는 것만큼 간편한 오븐과 거품기, 전기 교반기 등의 등장은 요리 환경을 크게 향상시켰고, 케이크와 비스킷을 굽고 머랭을 비롯한 다양한 디저트를 만들면서 손목을 혹사하고 고생을 감수하는 건 옛말이 되었다.
5장 ‘다채로운 케이크의 세계’는 디저트의 대표 선수 격인 케이크에 온통 할애한 장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치즈케이크는 진하고 크리미한 오늘날의 치즈케이크와 달리 치즈와 꿀로 만든 납작한 작은 원반 모양이었다. 과일 케이크도 굽지 않고 쪄서 만드는 플럼 푸딩에서 진화했다. 현대의 많은 케이크는 이스트로 발효시킨 달콤한 빵의 후손이다. 젊은 스칸디나비안 처녀들은 결혼하기 전, 종류가 다른 케이크나 쿠키 일곱 개를 완벽하게 만들 줄 알아야 했다. 스웨덴의 시골 지역에서는 각기 다른 케이크를 열다섯 개에서 스무 개 정도 구워서 친구들에게 ‘케이크 테이블’을 접대하는 전통이 있었다. 영국에서 ‘비스킷’이라는 단어는 미국에선 ‘쿠키’라고 부르는 오븐에 구운 작고 달콤한 과자를 말한다. 하지만 《프랑스 제빵사》가 쓰였을 당시만 해도, 비스킷은 스펀지케이크를 의미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913)에서 기억의 물꼬를 터서 마르셀 프루스트를 유년 시절로 소환하게 만든 마들렌도 작은 스펀지케이크다. 한편 푸딩으로 훨씬 유명한 영국 요리사들은 케이크 만드는 솜씨도 아주 훌륭했다. 영국식 케이크는 정찬이 끝난 뒤 디저트 코스에서 즐기기보다는 티타임에서 대접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오늘날 일본의 디저트는 대개 서양의 디저트를 혁신적으로 개조한 결과물이다. 일본의 스펀지케이크는 ‘팡드로’라는 포르투갈 케이크가 베이스지만 녹차를 접목하여 일본식 맛을 구현한다. 미국인들은 케이크의 일종인 달콤한 파이를 엄청나게 즐겼다. 흔히 쓰는 관용구 ‘파이만큼 쉽다’라는 말도, 원래는 ‘파이 먹기만큼 쉽다’였다.
6장 ‘그렇게 세상은 디저트가 되었다’에서는 20세기 이후의 디저트 문화를 다룬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자유로운 경향이 계층고하를 막론하고 사회를 휩쓸었다. 그에 따라 영국의 왕세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여러 코스로 이루어진 딱딱하고 틀에 박힌 정찬은 지루할 뿐 아니라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두 번의 큰 전쟁도 20세기 디저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아이스크림은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금지 음식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이스크림 제조업체들이 로비를 한 덕분에 필수 식품이 되었다. 그 결과 아이스크림은 미국 국내에선 애국심을 상징하고 해외에선 파병 군인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음식이 되었다. 전후 미국 식품 산업은 여성들에게 믹스제품으로 케이크와 디저트를 만들라고 부추겼다. 광고에 따르면 믹스제품은 빠르고 쉽고 시간도 절약해줘서 바쁜 주부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물건이었지만, 일부 여성들은 믹스제품이라는 지름길을 택한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기업들은 직접 베이킹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이를테면 계란을 추가하라고 지시했다. 1960년대와 70년대는 문화적 대격변의 시기였다. 프랑스 셰프들은 누벨퀴진(현대식 요리)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경향의 특징을 꼽자면 신선한 제철 식재료, 짧아진 메뉴, 새로운 기술과 장비에 대한 포용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일본의 회화에서 영향을 받아 각 접시 위에 음식을 예술적으로 배치하는 플레이팅법이었다. 그러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요리계의 축이 이동했다. 스페인의 한 레스토랑이 그 새로운 중심이었다. ‘모더니스트 퀴진’ ‘분자 요리’ ‘구성주의’ ‘아방가르드 퀴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새로운 방식은 요리에 화학과 물리학을 접목시키며, 과학 실험실에서 장비를 빌리고 식품 개발실이나 약국에서 재료를 공수한다. 셰프들은 거품기, 그릇, 시트팬에 원심분리기, 탈수기, 주사기를 사용한다. 실물 같은 설탕이나 초콜릿 조각을 만들기 위해 3D 프린터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 결과 눈이 휘둥그레지고 미각이 깨어나는 놀라운 음식이 탄생한다.
책 속에서
45쪽 15세기에 궁궐의 과자 제조인은 왕과 여왕, 그리고 귀족을 위해서 사탕과자를 만들었다. 상류층들은 정찬을 끝낸 뒤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소화시키기 위해 보통 서서 사탕과자를 먹었다. 캐러웨이와 펜넬 씨앗 사탕과자는 최음제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입김을 달콤하게 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에서 주인공 폴스태프가 하늘에 “입맞춤용 사탕을 퍼부어달라”고 청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51쪽 남자들은 관심을 끌려고 예쁜 처자들에게 사탕과자를 던졌고, 여자들도 잘생긴 청년들에게 남몰래 자신의 사탕과자를 던졌다. 금세 마차, 코트, 모자 할 것 없이 거리 전체가 눈처럼 새하얘졌다.
60쪽 숙녀들이 달콤한 장미향수가 든 계란껍질을 서로에게 던진다. 이 위험한 놀이가 끝날 때쯤이면, 파이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한다. 첫 번째 파이의 뚜껑을 열자 개구리들이 튀어나온다. 그러면 숙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폴짝 뛴다. 다음 파이에서는 새들이 날아오른다. 새들은 자연의 섭리대로 밝은 곳을 향해 날아가는 성질이 있으니 촛불은 끄는 게 좋다. 이렇게 위로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아래로는 개구리들이 폴짝거리니, 모든 사람들이 무척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66쪽 주부가 이런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설탕은 치료제와 마찬가지며, 가족들을 위해 치료제를 준비하는 건 주부의 의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설탕이 아직 비싼 시절이라 누군가 설탕을 몰래 빼돌리지 않도록 유심히 지켜보는 것도 중요했다. 그런 이유로 집집마다 보통 안주인과 하녀들이 이런 달콤한 진미를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71쪽 마지팬은 틀을 잡아주는 훌륭한 수단일 뿐 아니라 맛도 매력적이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전시가 끝나자마자 마지팬으로 만든 모형을 먹어치웠다. 그 사실에 제조인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름 아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다. 그는 마지팬으로 모형을 조각한 뒤 이렇게 불평하곤 했다. “나의 후원자 루도비코와 그의 저택 사람들이 내가 바친 조각품을 한 점도 남김 없이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걸 고통스럽게 지켜봐왔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제 맛이 그만큼 좋지 않은 다른 재료를 찾을 생각이다. 그래야 내 작품이 온전히 살아남을 것 같다.
79쪽 애초에 포크에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한 탓에 사람들은 포크를 사용하는 데 상당한 저항감을 느꼈다. 어떤 이들은 포크가 비종교적이라고 생각했다. 두 갈래로 갈라진 모양이 악마의 뿔을 닮았다고 여겼으며,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인 음식을 포크로 먹는다는 건 음식이 손으로 만지면 안 될 정도로 훌륭하지 못함을 의미했다.
91쪽 식탁을 장식하는 스타일 양식은 대체로 당시의 예술 사조를 따랐다. 17세기에는 바로크풍으로 설탕절임 피라미드를 쌓았다면, 18세기에는 신고전주의풍의 조각상이 뒤를 이었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폐허가 식탁에 올랐다. 이런 예술적인 설탕 공예품은 솜씨 좋은 페이스트리 셰프의 징표였다.
100~101쪽 유제품으로 만든 모든 음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우유 짜는 여자는 순수함과 여성성과 결부되면서 이상화되었다. 우유 짜는 여자가 이야기책과 액자용 인쇄물에 등장하면 부유한 시민들이 이를 수집했다. 보통 그림 속에 등장하는 우유 짜는 아가씨는 사과처럼 발그스름한 양볼에 고풍스런 의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치마 가장자리 바깥으로 페티코트의 우아한 레이스 밑단이 삐죽 튀어나오기도 했다. 혹여 우유 짜는 아가씨가 그런 옷을 살 형편이 된다고 하더라도, 소젖을 짜거나 시장에 우유 들통을 들고 가기에는 여간 불편한 옷이 아닐 수 없었다.
103쪽 그중엔 심지어 숭어 크림도 있었는데, 다행히 진짜 생선이 든 것은 아니었다. 오렌지꽃 향수로 향을 내고 틀에 넣어서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뒤 휘핑크림을 둘러서 내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요리사들은 언제나 맛과 달리 보기에 흉측한 음식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법이다. 이런 괴팍한 습관은 아이스크림이 더욱 흔해지면서 절정에 다다랐다.
128쪽 식탁에 그런 풍경을 꾸미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손님들 몰래 저택 지하방에서 엄청난 땀을 흘려야 했다. 평범한 가정집 요리사들은 디저트 테이블에 눈부신 설경을 창조할 일이 없었다. 그 대신 스노, 크림, 커스터드푸딩을 만들고 예쁘게 장식했다.
155쪽 비평가들이 택한 쪽은 역사가 택한 길과 반대였다. 아이스크림은 사방에 보급되었고, 모든 곳에서 사랑받았다. 1891년에 증기선 햄버그 아메리칸 패킷호는 세계를 항해하는 동안 아이스크림을 선내 메뉴에 올렸다. 그 후부터 증기선은 물론, 철도 식당차, 호텔, 레스토랑, 미국식 약국인 소다수 판매점에서 항상 아이스크림을 판매했다. (…) 아이스크림은 전문가나 비전문가 모두가 만들었고, 가게나 노점상 모두가 판매했고, 힘 있는 자나 없는 자 모두가 즐겼다.
159쪽 레시피들은 느슨한 오븐, 빠른 오븐, 민첩한 오븐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했다. 어떤 요리사들은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오븐에 직접 손을 넣어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살폈다. 오븐 속에 흰 종이를 집어넣고 갈색으로 타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기도 했다. 래펄드는 치즈케이크 만들 때 오븐이 너무 뜨거우면 케이크가 타고 “아름다움을 빼앗기는” 반면, “너무 느린 오븐을 사용하면 케이크가 설구워진다”고 설명했다.
261쪽 디저트는 과거처럼 정교하게 장식한 케이크와 페이스트리의 틀에서 벗어났다. 호사스러움은 줄었지만 더욱 신선해졌으며, 제철 과일을 사용하는 것에 더욱 집중했다. (…) 모든 사람들이 ‘누벨퀴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방식의 핵심 요소들을 받아들이거나 변형해서 수용했다. 고리타분함과 화려함을 누르고 맛과 신선함이 거둔 승리였다.
284쪽 디저트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개중엔 유독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도 달콤한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도 왕의 식탁에만 오르지 않는다. 누구나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바야흐로 디저트의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