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식사는 안녕하십니까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지역마다 시기마다 다양한 식재료들이 산과 들에 가득하다. 이런 제철 재료들을 가지고 예로부터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으며, 이러한 음식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생활풍습이 잘 드러나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설날에는 떡국을,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을, 봄을 알리는 입춘에는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돋아난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햇나물로 오신채五辛菜를 만들어 먹고, 삼짇날에는 봄이 온 것을 기뻐하며 꽃구경을 가 진달래화전을 부쳐 먹었다. 땀이 많이 나고 기운이 떨어지는 한여름에는 힘을 보충하기 위해 삼계탕을 먹고 시원한 수박화채를 먹어 더위를 물리치기도 했다. 입동이 지나고 날이 추워지면 대추, 우엉, 생강으로 차를 만들어 먹고 동지에는 팥죽을 만들어 먹었다.
한국인의 생활풍습과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절기음식을 소개한 이 책은 단순히 먹는 음식에 머무르지 않고 질병 예방과 치료 효과까지 있는 여러 지역의 제철 재료와 이를 활용한 음식, 음식을 함께 나누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다국적 기업에 위협당하는 한국인의 밥상,
당신의 식사는 안녕하십니까?
식량자급률 50.1%, 세계 1위 GMO 수입 대국. 다른 나라 얘기가 아니다. 이미 다국적 기업에 밥상을 내맡기다시피 한 우리의 식사가 안녕한지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는 가공식품과 인스턴트음식이 넘쳐나고, 세계 각국에서 생산한 식품을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구입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는 TV를 켜면 모두 먹는 내용이다. 이른바 ‘먹방’ 전성시대, ‘먹는 방송’이 공중파는 물론 유튜브까지 온갖 채널을 장악했으며, 먹는 음식 대부분은 육식과 밀가루이고 맛은 ‘단짠단짠’이다. 우리의 입맛은 이미 달고 짠맛의 자극에 중독되었다. 어디 입맛뿐이랴, 뇌도 몸도 길들여졌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지만 무엇을 먹어야 좋은지 모르게 되었다.
이처럼 초고속 성장을 한 식품 산업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요리에 대한 관심은 늘어났지만 막상 ‘집밥’은 사라지고 있다.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방법보다 ‘맛있는 집’ 정보가 중요해진 오늘날, 할머니로부터 어머니로 전해져온 음식문화유산인 건강한 밥상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국내 최초 조리학·한의학 박사인 지명순 교수가 사계절 24절기를 테마로 절기음식의 뿌리를 찾아다닌 과정을 《당신의 식사는 안녕하십니까》에 담아냈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24절기 음식은 이 땅에서 살았던 우리와 같은 유전자의 조상들이 먹고 계절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은 검증된 음식이며, 최적화된 음식이다. 절기에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 찾아간 사람들과 나눈 따듯한 이야기와 각 지역의 향토음식, 제철 재료의 효능과 이에 어울리는 음식, 직접 요리해볼 수 있는 방법까지 만날 수 있다.
▶ 음식을 먹는 데도 골든타임이 있다!
국내 최초 조리학·한의학 박사가 들려주는 때 맞춰 먹고 사는 법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1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해서 계절을 구분한 것으로, 봄이 시작되는 입춘을 비롯하여 우수·경칩·춘분·청명·곡우,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와 소만·망종·하지·소서·대서,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와 처서·백로·추분·한로·상강,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과 소설·대설·동지·소한, 겨울을 매듭짓는 대한이 있다.
사람은 소우주라서 대우주의 운행, 즉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천인상응天人相應이며 이 법도에 부응하여 음식을 바꾸어 먹어야 병이 없다고 선인들은 말했다. 음식연구가로서 한의학을 공부한 저자는 24절기에 맞추어 먹으면 좋은 음식에 주목했고 《당신의 식사는 안녕하십니까》에서 절기음식이 한의학적으로 건강을 지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이를테면 입춘에 먹는 오신반五辛飯은 맵고 향기가 나는 다섯 가지 나물을 곁들여 먹는 것인데,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몸을 깨워주고 에너지 대사에 필요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해 활력을 준다. 여름에는 심장의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성질이 냉하고 수분이 많은 오이와 가지 같은 채소로 반찬을 하고 수박과 참외로 갈증을 풀고 기운을 보충한다. 또한 삼복더위에는 삼계탕을 먹어 땀으로 빠져나간 진액을 보충하고 소화기관을 튼튼하게 한다. 가을에는 폐의 기운을 모으기 위해 신맛 나는 포도와 복숭아를 먹고 꿀이 들어간 음식으로 기관지와 피부의 건조함 막아주며 버섯과 미꾸라지같이 점액성이 있는 음식으로 면역력을 길러 다가올 추운 겨울에 대비했다. 입동 무렵에 담근 김장은 섬유소와 유산균이 장의 운동을 도와주며 동지 팥죽은 안으로 쌓인 열을 식혀준다. 또한 담북장은 혈전생성을 방지하고 참깨강정, 들깨강정은 포화지방산을 배출시켜 혈액을 맑고 깨끗하게 한다. 이렇듯 절기음식에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약’이라는 식약동원食藥同原의 사상이 담겨 있다.
▶ 절기 따라 떠나는 아름다운 맛 여행
한국음식이 외국인들에게 건강음식으로 인식되어가는 반면 정작 우리의 식생활은 서구화되었다.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이 엄마의 음식 솜씨를 대신했고, 집에서 집밥이 사라지고 있으며, 외식문화는 경제성만 강조되고 있다. 《당신의 식사는 안녕하십니까》는 전통 밥상을 되살려 잘못되어가는 우리의 밥상을 반성하고 올바른 밥상문화를 제시한다. 이 책과 함께 자연의 변화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맛 여행을 떠나보자.
〈봄〉
따뜻한 햇살을 따라 남쪽으로 입춘 여행을 떠난다. 눈 속에서 매운 나물을 찾아 오신반을 차리고, 초록밀밭을 밟으며 생명의 기운을 받는다. 눈이 녹아 물이 되는 우수에는 겨우내 띄운 메주로 정월장을 담그고 산야초를 고아 여름에 먹을 고추장를 담근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경칩에는 추풍령 냉이를 캐고, 난생처음 고뢰쇠 물을 받아 몸속 독소를 뺀다. 춘분에는 봄볕에 그은 피부를 예쁘게 가꾸어줄 딸기를 농장에서 따고 지천으로 자란 봄나물을 캐서 와인과 함께 봄 축제를 벌인다. 청명에는 충주 목계나루에서 배를 띄우며 무사 안녕을 빌 때 제주로 사용했던 청명주를 빚고, 솎은 풋마늘로 에너지 넘치는 김치까지 담근다. 곡우에는 화양계곡에서 매화꽃, 생강나무꽃을 따서 차를 덖어 진달래를 부쳐 화전놀이도 즐긴다. 들나물이 질겨지니 산나물의 전령사 홑잎나물을 뜯어 부지런한 며느리가 된다. 눈 속에서 들판에서 냇가에서 산에서 찾는 나물은 기쁨의 연속이다. 겨울을 뚫고 올라온 봄나물은 몸속 에너지가 되어 잃었던 입맛을 살려주고 활력이 넘치게 한다. 어느새 온갖 꽃들이 피고 나무에서는 초록빛 잎사귀가 돋아난다.
〈여름〉
입하가 되니 연녹색 나뭇잎은 눈부신 태양을 향해 손짓한다. 청정마을에서 고사리를 따서 말리고, 연한 느티잎을 따서 떡을 찐다. 소만에는 진한 송순으로 청을 담고, 뽕잎으로 밥을 짓는다. 망종에는 부추로 속을 따뜻하게 하는 닭개장을 끓이고, 자수정보리를 수확해 보리밥을 지어 쌈을 싼다. 여름의 한가운데에 토종밀을 수확해 콩가루를 섞어 누른국을 끓이고,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 하지감자를 캔다. 날씨는 점점 더운 열기 속으로 빠져들어 소서가 되어 봄에 심은 열무, 가지, 오이를 수확해 여름반찬을 만들고 삼복더위에는 인삼 들어간 펄펄 끓는 삼계탕으로 기운을 보충한다. 더위가 극에 달해 견디기 어려운 대서에는 수박으로 더위를 식히고, 냇가에서 잡은 민물생선으로 천렵국을 끓인다. 가을에 심어 겨울을 보낸 보리와 밀이 여름 식량이 되어준다. 아무리 더운 여름도 매미소리가 들리면 떠날 채비를 한다.
〈가을〉
입추가 되어도 늦더위가 이어진다. 올갱이를 잡아 아욱을 넣어 끓이고, 여름에 넓적하게 자란 연잎을 따서 찰밥을 지어 연잎밥을 싼다. 서서히 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는 처서에는 싱싱한 들깻잎을 따서 밑반찬을 만들고 고소한 들깻송이부각도 바람에 말린다. 추위에 약한 고구마도 수확해 집안에 들여놓는다. 백로에는 까맣게 익어가는 포도를 따서 즙을 만들고 그 즙으로 보랏빛 탕수 소스도 만들고, 잘 여문 밤으로 추석 송편을 빚어 추석명절을 쇤다. 비가 내릴 때마다 기온이 낮아지고 습도는 올라가 야생버섯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 된다. 추분에 높은 산에 올라 자연산 버섯을 채취해 종류별로 각각 저장하고 버섯전골을 끓여 황제의 맛을 즐기고, 서둘러 끝물고추를 따서 말린다. 무서리가 내리는 한로에는 추수하는 손길이 바쁘다. 된서리를 맞기 전에 곡식을 모두 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늙은 호박을 집안으로 들여 호박죽을 끓이고 떡도 만든다. 살이 오른 미꾸라지로 끓인 보양식을 먹으며 다가올 추위를 대비한다. 상강에는 무를 수확해 김장하기 전에 먹을 석박지를 담그고 햅쌀과 팥으로 떡을 해 이웃과 나눈다. 낙엽 떨어진 가로수와 벼를 베고 난 논이 쓸쓸해 보이면 겨울이 문 앞에 당도한 것이다.
〈겨울〉
입동 즈음에는 산야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간다. 배추가 얼기 전에 배추를 절여 김장을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줄 차를 만든다. 첫눈이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들빼기를 캐서 밑반찬을 만들고 메주를 쑤고 담북장을 띄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대설에는 말린 나물로 반찬을 만들고, 수수로 달달한 조청을 곤다. 어둠의 시간이 절정에 달하는 동지에는 동지팥죽을 쑤고, 메밀묵도 만든다. 온 세상이 얼어붙는 소한에도 얼음장 아래에서 잡은 붕어로 얼큰한 양념맛이 나는 붕어찜을 해 먹는다. 어린아이들은 겨울철에 자란다. 두부로 성장기 아이들에게 좋은 영양식을 만든다. 바깥 날씨가 추운 겨울은 집안으로 사람이 모인다. 시원하고 얼큰한 생태탕이 겨울에 언 속을 녹여준다. 설날 다과로 만든 참깨강정과 들깨강정은 추위에 수축하는 혈관의 건강을 지켜준다. 길고긴 겨울이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쯤이면 겨울 속의 봄은 이미 와 있다.
▶ 100년 전 요리책 《반찬등속》을 남긴 이들처럼
우리는 100년 뒤 후손에게 어떤 ‘요리하는 이야기’를 전해줄 것인가?
《반찬등속》은 1913년 청주의 진주 강씨 집안에서 해 먹던 음식 조리법을 옛 한글로 쓴 충북 최초의 요리책으로, 당시 청주의 양반가에서 어떤 음식을 해 먹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산해진미가 가득하지만 《반찬등속》처럼 레시피가 상세히 남아 있는 전통 요리책은 흔치 않다. 저자는 고증을 거쳐 충북 최초의 고古 조리서 《반찬등속》에 적힌 100년 전 음식 46종을 되살려냈고, 1년 과정으로 이 음식들의 전수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100년 전 후대를 위해 ‘반찬 만드는 이야기’를 남긴 조상은 어떤 마음에서 기록을 남겼을까?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져온 요리법이 후손들에게 전해져 잘 먹고 건강하길, 그리하여 자손들이 더욱 번성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반찬등속》의 음식을 비롯하여 한국인의 생활 속에 스며 있는 절기음식은 우리 조상이 후손에게 물려준 훌륭한 음식문화유산이다. 《당신의 식사는 안녕하십니까》는 이러한 유산이 100년 뒤 후손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인에게 꼭 필요한 4계절 24절기 건강밥상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