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 생리하는데요?
나는 생리 일기를 쓰며 처음으로
내 몸과 더듬더듬 대화를 시작했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생리 긍정 에세이
이 책을 쓰며 꼭 지키고 싶었던 단 한 가지의 규칙은 ‘나에게 솔직해지기’였다. 나에게 솔직할 수 없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감추고 싶었던 나의 가장 유약한 부분까지 헤집어 들여다보아야만 했다.
생리하는 여성의 일상이자 실상을 담은 오윤주의 첫 에세이 『네, 저 생리하는데요?』가 출간됐다. 작가는 2017년 국내에서 판매되는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보도, 이른바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이후 ‘생리 경험’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토록 생리를 혐오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생리 일기를 쓰기로 했다.” 이 결심은 “온전히 나를 마주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생리 일기를 쓰며 처음으로 나와의 대화를 더듬더듬 시작”했고 이 과정을 통해 “도무지 사랑할 수 없었던 나의 몸을, 여드름을, PMS의 우울과 괴로움”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생리 긍정’은 “인생의 모든 부분을 긍정”하는 계기가 되었고, “가끔 지치더라도 나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 역시 나”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지금껏 여성들이 “특별할 것 없는 사소한 경험”이라고 여기고 “침묵해왔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생리 과정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생리’라는 단어와 여성의 삶에 들러붙은 “억압과 혐오의 그림자”를 들춰내는 책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한다는 것.” “내 몸을 다른 누군가가 사랑해주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 “내 몸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것.” “내가 내 몸의 주체가 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성이 꾀할 수 있는 최고의 혁명”이라고 강조한다.
100명의 여성은
100가지의 생리를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경험을 한다. 각자의 삶이 다르고 성격
이 다른 만큼이나 우리의 월경 역시 다르다. 그리고 모두의
다양한 경험은 그대로 존중받아야만 한다._142쪽
『네, 저 생리하는데요?』의 작가, 오윤주는 한국의 20대 여성이다. 그는 “여성 100명이 있으면 그 100명이 경험하는 생리는 모두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미국,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적의 여성들에게 ‘초경’ ‘PMS’ ‘생리통’ ‘예기치 않은 생리’ ‘생리 중 섹스’ ‘사후 피임약 복용’ ‘사용하는 생리 용품’ 등 내밀한 생리 경험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생리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입을 모아 “없어요.” 하고 대답했다. 오윤주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리는 “귀찮고 불편한 것, 나를 힘들고 괴롭게 하는 것, 사회 진출에 방해가 되는 것, 내 발목을 붙잡고 나를 구속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리 경험을 작가가 긍정할 수 있었던 것은, “생리를 몸의 운동 중 하나로, 자연스러운 순환이자 몸의 주기로, 나의 정체성이 일부로 받아들였을 때”부터였다. 이후 그는 “생각도 못했던 생리의 긍정적인 면들을 자연히 이해”하게 되었다. “생리는 여성이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건강의 지표”이고, “나의 몸을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생리 긍정’을 통해 “삶의 변화 자체를 긍정하고 나의 유동적인 정체성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그는 오랫동안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방황했지만, ‘생리 경험’을 통해 “흐르는 시간을 누구도 붙잡을 수 없고 계절은 빠르게 변화하며 머리카락을 자르고 잘라도 다시 자라듯” 변하지 않는 정체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모두 생리 일기를 쓴 덕분이라고 고백했다.
내 몸을 사랑한다는 것
곧 나를 사랑한다는 것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생리하는 나도, 생리하지 않는 나도 결국은 모두 나다. 그 모든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해야만 한다._237쪽
오윤주 작가는 생리를 앞두고 자꾸 돋아나는 여드름을 가리기 위해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고 한다. 두꺼운 화장으로 얼굴을 가리며 “나 같은 사람이 과연 가치 있는 사람일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일까?” 하는 질문과 자기혐오를 멈출 수 없었다. 그의 “치열한 고민과 고통의 밤들”이 쌓이고 쌓여 변화를 일궈냈다. 그는 “우리가 이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인식하는 것은 낯선 감각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날 이후 “놀랍게도 내 피부 위에 울긋불긋하게 피어오른 여드름들이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드름을 고쳐야 할 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로 받아들였을 때” 그는 비로소 ‘생리 긍정’이 ‘몸의 긍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생리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의 그 첫 예감”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작가는 “나의 몸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과 같다”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우울과 기쁨과 고통과 불완전함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내 앞에 놓인 이 거대한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는 것”이며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오로지 단 한 명뿐이라는 놀랍고도 두려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시작은 ‘생리’였으나
당신의 삶을 긍정하는 책!
『네, 저 생리하는데요?』는 단순히 생리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윤주 작가는 생리 일기를 쓰며 ‘월경 터부’ ‘성폭력’ ‘가정폭력’ ‘낙태죄’ ‘독박 육아’ ‘유리 천장’ ‘성별 임금 격차’ ‘성적 대상화’ ‘불법 촬영’ ‘남성 중심 포르노’ ‘리벤지 포르노’ ‘여성 대상 강력범죄’ 등 여성 앞에 버티고 서 있었던 “거대한 장벽”과 마주했다. 이 책은 한 인간이 내 삶의 주체로 바로 서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저자는 독자들에게 “누군가의 인정과 평가를 갈구하지 않고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숙고하고 선택하고 개척해나가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존엄성”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을 넘어야 하며 “첫 번째 발걸음은 생리를 긍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작가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가 밝혔듯이 “이 책을 덮고 나면 이제 길고 지루한 싸움이 또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시무시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우리의 “진솔한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순간, 그 누구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세계가 열릴 것”이다. 나의 세상은 나만이 바꿀 수 있으니까.
책속으로
문득 어떤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그것은 생각이라기보다도 차라리 육감이나 예감에 가까웠는데, 바로 나의 생리를 사랑하지 않는 한 내 몸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할 것이며,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 한 나를 결코 진실로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었다.
--- p.5
누구도 내게 생리를 숨기고 부끄러워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자연스레 여자애들에게만 ‘그 날’을 속삭였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생리대를 숨겨서 화장실에 들락거렸으며, 어쩌다 팬티와 침대에 피가 새기라도 하면 죄책감에 자신을 나무랐고, 생리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나에게 남자애들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몰라도 돼”라고 말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그리고 나 자신과 생리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는 차단되었다
--- p.19
나는 초경이 축하받아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월경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면서 동시에 멋지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 p.31
어릴 적 나에게 생리는 멋지고 대단한 사건이었다. 지금처럼 부끄러워하거나 숨겨야 할 일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이 기억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어릴 적 멋모르던 아이의 철없는 오해로 치부하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아직 아무런 사회적 편견과 혐오에 노출되지 않았던 순수한 그때의 기억이 옳을지도 모른다.
--- p.39
세상은 조금씩, 아니 사실은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전면적으로 빨간 피가 생리대 광고에 등장하는 그날이 오면, 어떤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질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생리대 광고에서 ‘푸른 피’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 p.48~49
언어의 힘, 특히 ‘호명’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생리를 생리라고 호명할 수 있는 힘은 생리 그 자체의 힘이자 여성의 힘이다.
--- p.53
월경 터부는 사회적 여성성의 강요이면서 동시에 여성 건강과 직결된 문제다. 그러니 일단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옥죄는 브래지어부터 벗어 던지자. 당신의 호흡이 달라질 것이다. 삶이 달라질 것이다. 브래지어 없는 세상은 아름답다. 당신의 가슴에 자유를 주길!
내 성기는 애인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한다. 내 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여야만 한다. 성욕을 느낄 때마다 욕구를 해소해줄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만 한다면 그건 참 슬픈 일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경험을 한다. 각자의 삶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만큼이나 우리의 월경 역시 다르다. 그리고 모두의 다양한 경험은 그대로 존중받아야만 한다.
더 이상은 여성의 문제를 나중으로 미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이며 아주 중요하고 우리 모두가 당장 직면해 있는 정치적인 문제다. 이것은 좁게는 월경의 문제지만, 크게는 여성의 몸과 성을 해방하고 여성성을 둘러싼 오랜 편견과 오해의 역사를 바로잡는 문제다.
인류의 반은 여성이고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우리는 지금 여성 연대가 가장 중요해진 시점에 도달해 있다. 우리의 연대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리고 그 연대의 중심에는 우리의 피가 있다.
생리하는 나도, 생리하지 않는 나도 결국은 모두 나다. 그 모든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해야만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달마다 피 흘리는 나를 진실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의 몸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우울과 기쁨과 고통과 불완전함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앞에 놓인 이 거대한 운명을 끌어안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더 크고 시끄럽게 떠들어야만 한다. 우리의 존엄성을 해치고 침묵시키려는 사람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래야만 한다. 나는 여성마다의 다양한 경험이, 다양한 삶의 방식이, 다양한 선택이 각자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회를 꿈꾼다.
우리의 다양한 삶을 응원하고 또 기억하자. 우리를 꺾으려는 세력에 함께 맞서 싸우자. 결코 희망을 잃지 말자. 뒤와 옆을 돌아보며, 그러나 앞을 향해 걸어가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 확고한 사실만을 되새기며, 나는 오늘 반 보라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래,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