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
“지금까지 나왔던 어떤 책들보다 완벽하게
히틀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 《뉴욕타임스》
가장 완벽한 히틀러의 초상
퓰리처 수상 작가의 10여 년 취재와 집필
이보다 더 생생한 히틀러는 없다!
“역사적 인물로서 히틀러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라면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은 반드시 거쳐 가야 할 필수 경유지다.”
? 이현우(로쟈, 서평가), 한림대학교 교수
이 책,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은 히틀러의 비서와 부하 장군, 장관, 친구, 측근, 친족과 가족, 심지어는 청년 시절의 하숙집 주인까지 200명 이상의 인터뷰와 미공개 일기, 서한, 공식 문서 등 방대한 자료를 사용하여 10여 년의 기간 동안 써내려간 존 톨랜드의 걸작이며, 출간 직후부터 지금까지 히틀러 관련서 중 가장 많은 인용과 판매를 기록한 초 베스트셀러다. 역사서로서의 권위와 함께, 집필을 위해 그가 녹음한 모든 인터뷰는 미의회도서관에 영구적으로 소장되어 있다. 주관과 판단을 배제한 채 오직 방대한 인터뷰와 사료에 근거하여 쓰는 톨랜드의 역사서는 쉽게 읽히는 몰입감과 함께 역사 논픽션의 전범으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톨랜드 역시 1971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권위 있는 저술가이기도 하다.
저자의 이력 역시 심상찮다. 여러 곳의 교육 기관을 전전하고 부랑자로 떠돌다 소설가의 꿈을 꾸었지만 처절하게 실패했던 저자의 이력은, 변변한 학과 과정 없이 부랑자로 떠돌며 미술가의 꿈을 꾼 히틀러의 삶과도 닮아 있다. 그러나 히틀러와 제3제국에 열광했거나 혹은 반대했을 이들을 만나며 저자는 최대한 히틀러를 자신이 몰랐던 과거의 인물인 것처럼, 선입견을 배제한 채 대하려 노력했고, 이러한 일관성은 가장 방대하면서도 가장 생생한, 그리고 가장 객관적인 히틀러의 역사서를 태어나게 했다. 역사적 인물에서부터 평범한 소시민까지, 이들이 자아내는 압도할 만큼의 이야기가 세계라는 배경과 히틀러라는 인물을 마치 하나의 태피스트리(수단繡緞,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처럼 생생하게 자아낸다.
200여 명의 최측근 인터뷰와 10여 년간의 집필
미공개 서한과 일기, 공식문서…
알려지지 않은 ‘팩트’의 향연…
그리고 그것이 보여주는 낯선 모습들
10만 권을 훌쩍 넘는 관련 서적과 수천 권에 이르는 논문들…. 그러나 우리는 히틀러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예를 들어 히틀러의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는 히틀러가 성 불구자였고, 그것이 그를 전쟁광으로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또, 히틀러는 파괴적인 야심을 대중적인 선동으로 감춘 기회주의자이며, 그의 치세는 강력한 비밀경찰의 통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에는 히틀러의 여성 편력에 관한 증언 역시 수록되어 있다. 어릴 때는 여성의 구애에 뒷걸음질 치다 우유통에 빠질 정도로 수줍어했지만, 청년 시절에는 연애의 끝에 동반자살을 기도하기도 했고, 우연히 마주친 여성과 그 여성의 언니까지 합쳐 연애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정치인이 된 뒤에는 운전기사와 함께 밤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볼프’라는 가명을 쓴 채 여자들을 쫓기도 했고, 몰래 미술 대학에 가서 모델의 모습을 훔쳐보는 일도 종종 있었다. 히틀러의 마지막 날, 사람들이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일도 에바 브라운과 히틀러의 공개적 키스였다. 근친이 빈번했던 히틀러의 가계답게 사촌 누이와 애매모호한 관계를 형성한 적도 있었고, 공보관 한프슈탱글의 아내인 헬레네에게 청혼을 했다가 차인 과거도 존재했다.
이 책,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에는 이렇듯 우리가 잘 몰랐던 히틀러의 모습이 등장하여 독자를 당황시키는 일이 무척 잦다. 선동과 광기와 통제로 알려진 전쟁 시기조차 독일 국민은 그를 지지했고, 점령지의 국민과 유대인조차 종종 그러했다. 마치 광신도 같던 그의 부하들도 뒤에서는 암투와 견제를 하고 있었고, 그의 반대파들조차 종종 그의 비전에 빠져든 상태에서 반대하거나 반란을 일으켰다. 루스벨트를 포함해 자유의 수호자 같던 해외의 지도자들조차 많은 순간 오판을 했고, 이들의 역사적 결정 뒤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이유가 숨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이 책에 수록될 수 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 책이 ‘발로 뛰어’ 만든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틀러와 관련된 수백 명의 인터뷰와, 당시 세계 각국의 외교관, 국가 정상, 기자 등 저자는 생존해 있던 거의 모든 히틀러 관련 인물을 인터뷰했다. 이 중에는 청년 시절 히틀러의 하숙집 주인이나 노숙자 시절 동료들, 히틀러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다. 히틀러의 장군들과 부하 직원, 비서들 역시 빼놓지 않는다. 몇몇 사람은 다른 국가의 의뢰를 받아 히틀러의 오찬에서 그의 발언을 몰래 메모하여 남기기도 했고, 그 내용 역시 책에 수록되어 있다. 작성자가 여럿인 이 메모들 사이의 내용 역시 작가에 의해 교차 검증되어 있다. 또 그 메모 내용을 다른 참석자의 기억과 대조하여 다시 검증하기도 한다. 그것이 다시 미공개 상태였던 서한과 일기, 기존 역사의 기록이라는 체를 다시 걸러내어 정리되었다. 저자가 자료 수집 후에도 집필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이 작업의 결과물인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은 히틀러라는 인물을 여느 전기나 역사서 속의 인물이 아닌 시대 속의 인물로 우리 앞에 정확히 묘사해낸다. 그것도 메마른 줄거리만이 아닌 실제 히틀러를.
책 속 히틀러는 체임벌린의 몰락에 그저 한두 줄 묘사로 기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허벅지를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리고, 과장된 어조로 주위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의기양양해한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하하의 협상 실패 뒤에는 히틀러와 그의 측근이 서로 자신의 기여도를 앞다퉈 자랑하며 농담하고 희희덕거린다. 어느 독자의 말처럼 이 책은 단순히 ‘홀로코스트의 원인과 결과, 통계’만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대신 반대파든 찬성파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학살에 영향을 끼치거나 혹은 묵인해왔는지 알려주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책에 따르면 홀로코스트에 찬성한 어떤 사람들은 홀로코스트 자체보다는 홀로코스트가 최대한 고통을 주지 않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학살을 한다는 데 대해 감명을 받고, 찬성을 표했었다. 반면 책에 나오는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보여주는 ‘비인간적인 모습’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충격을 받았고, 후유증으로 평생을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나치 시대 홀로코스트를 표면에 올려 고발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누구보다 제3제국의 이념에 충실한 SS친위대원 콘라트 모르겐이었다.
일부 정치인은 히틀러를 꿈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 한다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히틀러와 제3제국은 히틀러의 사망과 동시에 급작스럽게 붕괴했다. 동시에 국가사회주의, 그러니까 나치즘 역시 오늘날 정치계에서는 완전히 멸종되어버렸다. 저자의 말처럼, “나폴레옹 이래 그 어떤 지도자의 죽음도 히틀러처럼 정권을 깡그리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남은 것은 신나치즘이라는 이름의 어설픈 모임과, 숱한 루머, 그리고 음모론들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나치즘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하며, 우리 사회에서 그와 관련된 것들을 지워버리려 애쓴다. 독일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에서 나치즘과 그를 연상시키는 것은 어떤 분야든 금기시된다.
왜 우리는 이미 몰락해버린 그를 경계할까? 세상에는 이제 나치즘을 추앙하는 유력한 정당도, 나치즘을 따른다고 선포한 국가도 존재하지 않지만, 극단의 시대와 폭력의 세기, 선동과 광기로 표현되는 그의 모습은 현재에도 존재한다.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일부 정치세력에서 보듯, 히틀러의 방식은 여전히 우리의 정치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시대를 파괴로 몰아갔지만, 그가 내세우는 주장은 부정적인 면에서나마 시대의 요청을 파고들었고 그 기반에는 독일의 전통과 역사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시대의 요청에 민감할 세상의 많은 정치인들이 사상과 지향점은 달라도 부분적으로는 히틀러를 꿈꾼다. 그의 사상이 매력적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성공과 방식이 너무나도 달콤한 향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꼭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시대는 히틀러의 시체 위에 쌓여진 시대다. 그리고 무덤 위에 선 우리는 그의 묘비를 읽고, 그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그를 기억해야 한다. 그를 추억하거나 흠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자취를 몰아내기 위해서다.
┃추천의 말┃
20세기가 극단의 시대이자 폭력의 세기였다는 이미지는 아돌프 히틀러에서 비롯한다. 전 세계를 전쟁과 광기로 내몬 히틀러와 그의 시대를 알지 못한다면 20세기에 대한 이해, 더 나아가 현대사에 대한 인식도 불가능할 것이다. 존 톨랜드의 히틀러 평전은 방대한 자료와 증언에 근거하여 ‘히틀러의 모든 것’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히틀러를 알기 위한 기초 사실과 그를 평가하기 위한 기본 서사를 제공한다. 역사적 인물로서 히틀러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라면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은 반드시 거쳐 가야 할 필수 경유지다.
? 로쟈 이현우, 한림대학교 교수
구하기 힘든 사진 및 자료와, 놀랍도록 우리를 끌어당기는 지극히 상세한 이야기… 이 책은 지금까지 나왔던 어떤 책들보다 더 완벽하게 히틀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 《뉴욕타임스》
알려지지 않은 ‘팩트’의 향연들… 히틀러가 누구인지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고 싶은 독자가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
? 《뉴스위크》
수백 명의 인터뷰가 풀어내는 소위 ‘민중의 이야기’를 날줄 삼아 저자는 세계 대전의 역사라는 기념비적이고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완성해냈다.
? 《시카고트리뷴》
우리 시대 역사학에 던지는 중요하고 묵직한 사료.
? 《휴스턴크로니클》
철저하면서도 신중한 서술, 그것이 자아낸 역사서로서의 권위.
? 《라이브러리저널》
압도적인 분량을 대가의 솜씨로 풀어낸 이 저작은 이념과 권력욕으로 미쳐간 히틀러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데 있어 가히 이정표라 불릴 만하다.
?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이제는 구할 수도 없는 귀중한 기록들….” - 아마존 독자 John Q. Public
‘마치 거기 있는 것 같다.’ - 아마존 독자 Jack
“그토록 훌륭하고 이성적이며 저명한 사람들이, 히틀러의 광기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그를 구세주마냥 추앙해버렸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오늘날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 당신이 유대인이든 나치든, 이 책의 내용에 불만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 아마존 독자 Phoetus
┃책 속으로┃
슈테파니는 줄곧 히틀러의 존재를 무시했다. 히틀러는 슈테파니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그녀는 곧 하급 장교와 결혼할 예정이었는데 수년 뒤 히틀러가 자신을 흠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매우 놀랐을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낙담해 더는 이런 관계를 참아낼 수 없다고 맹세했다. “나는 이를 끝장낼 거야!” 그는 다리에서 다뉴브 강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 민감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젊은이로서는 쉽게 택할 수 있는 정사(情死)였다.
- 챕터 1, 57쪽, ?뿌리 깊은 가계? 중에서
“유대인은 음악이나 미술 세계를 장악하고 무엇보다 사회민주당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이 같은 편견은 당시 비엔나 시민의 평균적인 생각과 큰 차이가 없었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면 거의 반유대주의자였다. 조직화된 집단들이 끊임없이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퍼뜨렸는데 젊은 히틀러도 신문 가판대를 가득 메운 쓰레기 같은 책자를 열심히 읽었다. … 실은 주술과 에로가 혼합된 잡지였다. 《오스타라》에서는 적이 열등 인종으로 비하되었고 페이지에는 아리안족 여성들이 털 많고 원숭이 같은 인종들의 유혹과 성적인 정력에 굴복하는 삽화가 가득했다.
- 챕터 2, 94쪽, ?나의 인생 학교? 중에서
며칠 뒤 히틀러는 바이에른 제2 보병연대로 전출되었고 엘리자베스플라츠에 있는 큰 공립학교에서 기본 훈련을 받았다. 매일 행군이나 총검술 등 짧지만 집중적인 훈련을 받았고 끝나면 녹초가 되었다. 일주일이 지난 뒤에는 최종적으로 바이에른1 6 보충 보병연대에 배속되었다. 뮌헨에서의 군사 훈련은 점차 강도가 세졌다. 히틀러의 동료였던 한스 멘트는 그가 총을 처음 다루게 되었을 때 “여자가 자신의 보석을 보듯 황홀하게 바라보는 것을 보고 속으로 웃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 챕터 3, 115쪽, ?열정으로 극복하기? 중에서
히틀러는 사회당 정부가 수 톤의 종이돈을 찍어낸 것과 매점매석에 관련된 부패상에 대해 통렬하게 비난했다. 단지 피라미 매점매석꾼만 잡아넣는다는 비판이었는데, 히틀러는 “매점매석꾼이 이지도어 바흐가 아니고 훔멜베르거라면 어땠을 것 같습니까”라고 비난했다. 반유대주의 험담에 항의하는 소리도 있고 긍정하는 소리도 들렸다. 히틀러가 동구에서 온 유대인을 정조준하자 박수 소리가 야유를 압도했다. “유대인 언론을 없애라”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 챕터 4, 173쪽, ?당의 창립? 중에서
나치스 돌격대는 의도적으로 공산주의자들과 시가전을 벌였다. “거리를 지배하는 자는 대중을 지배하고 대중을 지배하는 자는 국가를 지배한다는 이론에 따른 것이다.” … 괴벨스는 청중을 대상으로 공격적이고 생생한 말투로 호소했다. 완벽한 연기자처럼 농담하다가 감상적이 되기도 했고, 때때로 독설도 퍼부었다. 종종 빨갱이들의 항의를 유도한 다음 그것을 뒤틀어 공격 자료로 삼았다. 한번은 “소음을 유발하는 것도 유효한 반대 수단”이라고 말했다. 괴벨스에게 선동이란 예술이었고 누가 봐도 그는 선동의 귀재였다.
- 챕터 8, 390쪽, ?히틀러의 비밀 책? 중에서
증오심은 나라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망한 자영업자들은 대형 백화점을 저주했다. 수백만의 실업자는 직장을 가진 사람들과 기업주들을 증오했다. 수천 명의 대학생은 미래의 문이 닫힌 것을 알고 기득권 세력에 절망감을 쏟아냈다. … 경제 붕괴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에게는 히틀러가 해답이었다.
- 챕터 10, 450쪽, ?거의 꿈만 같았다? 중에서
《뉴욕타임스》 지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내각 구성을 보면 히틀러가 자신의 독재 야욕을 충족시킬 여지가 없다.” 독일 주재 영국 대사도 “독일 언론들은 전반적으로 히틀러의 수상 임명에 이성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국민들도 이 소식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고했다.
모든 관찰자가 히틀러가 무기력하다고 세상을 안심시키고 있던 반면, 히틀러는 2월 1일 유권자에 대한 라디오 연설에서 영감을 주는 보수적인 말로 혁명 의도를 숨겼다.
- 챕터 11, 500쪽, ?무방비의 시간? 중에서
국제회의가 열렸으면 미국은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이른바 ‘해적 국가들’의 본질에 눈떴을 것이다. 루스벨트는 예상 밖의 거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처음에는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미국의 격리 정책에 불참한다는 의미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체임벌린의 반대는 루스벨트에게 큰 타격을 가해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루스벨트의 외교는 전 세계에 걸쳐 추가적인 침략 전쟁을 예방했을지도 모르고 역사의 진로도 달라졌을 것이다. 루스벨트는 대신 국내 고립 정책으로 회귀했다.
- 챕터 16, 629쪽, ?오스트리아 출신의 귀환? 중에서
융은 영국과 프랑스가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새로운 보장 약속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약속을 지키는 나라는 없다. 국가란 커다란 눈 먼 벌레에 불과하며 운명을 따른다. 국가에 무슨 명예가 있고 지킬 약속이 있는가?” 히틀러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왜 기대하는가? 그는 지키지 않는다. “히틀러가 국가이기 때문이다.”
- 챕터 17, 833쪽, ?면도날 위에서? 중에서
달레루스는 영국과 프랑스도 군사력이 매우 향상되었고 독일을 막아낼 만하다고 말했다. 히틀러는 서성거리다가 갑자기 멈춰서는 무아지경에 빠진 듯 달레루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쟁이 터질 경우 나는 잠수함을 건조할 것이다. 잠수함, 잠수함, 잠수함을 만들 것이다.” 마치 고장 난 축음기처럼 같은 소리만 되풀이했다. 갑자기 수많은 청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 비행기, 비행기를 제작해 적들을 파괴할 것이다!” 달레루스는 대경실색해 괴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쳐다보았다. 그러나 괴링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달레루스는 “자신의 행동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 이렇다니”라고 공포에 질렸다.
- 챕터 20, 105쪽, ?역사상 최악의 대재앙? 중에서
히틀러와 에바의 섹스 관계는 그가 거의 50의 나이에 전쟁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에바는 마침내 베르크호프의 정부로 인정되어 자존심과 우아함을 되찾았다. 생활이 지는 않았지만 더는 연적(戀敵)이 없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충분한 위안이 되었다.
- 챕터 22, 213쪽, ?역사상 최악의 대재앙? 중에서
지도자는 결심을 내린 후 최종 해결 임무를 맡긴 사람들에게 유대인을 가능한 한 인간답게 죽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의 이런 방침은 자신이 세상에서 해충을 박멸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준수하고 있다는 확신과 잘 맞아떨어졌다. 히틀러는 … 유대인이 하느님의 살해자라는 교리를 믿고 있었다. 따라서 유대인 말살은 하느님의 손을 빌려 복수하는 것이고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기에 잔혹하다 부를 수 없으며 양심에 조금도 거리낄 게 없다는 것이다. 힘러는 자비를 베풀면서 죽인다는 개념을 기뻐했다.
- 챕터 25, 347쪽, ?지옥이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