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벌새

벌새

저자
김보라, 최은영, 남다은, 김원영, 정희진, 앨리슨 벡델
출판사
arte(아르테)
출판일
2019-10-30
등록일
2019-11-14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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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베를린국제영화제 * 트라이베카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국내외 영화제 25관왕 영화 〈벌새〉 단행본 전격 출간!



무삭제 시나리오부터 최은영, 남다은, 김원영, 정희진의

영화와 사회를 함께 ‘읽는‘ 시선들, 여성, 서사 창작자로서 나눈 앨리슨 벡델과 김보라 감독의 대담까지



〈벌새〉를 만나는 가장 오롯한 방법











◎ 도서 소개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 부문 그랑프리상

트라이베카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대상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 관객상

국내외 영화제 25관왕 영화 〈벌새〉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숙한 데뷔작”

-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한 편의 시처럼 섬세한 영화! 일상으로 시대를 경험하게 한다”

- 제28회 이스탄불국제영화제



“이 영화를 다 보고도 누가 벌새를 가냘프다고 하겠는가, 허약하고 부실한 것은 알고 보니 이 세상이 아니던가. 1994년 성수대교를 보라. 감독에게 강력히 요구한다. 서둘러 속편을 내놓으라. 은희가 감자전 꼭꼭 씹어 먹고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지 보고 싶다. 저 속절없이 끊어진 다리를, 날아서 건너는 갈매기가 보고 싶다”

- 〈아가씨〉, 박찬욱 감독



“마침내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어린 소녀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

- 〈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 감독



“자신감 넘치는, 우아하고 절제된 성취! 부드럽고, 아프고 현명하며 끝내 희망적인 영화”

- 〈피아노〉 제인 캠피온 감독



“넋을 잃을 만큼 매혹적인 작품!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

- 『펀 홈』, 앨리슨 벡델 작가



“은희와 동시대를 살아갔던 그때의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애도할 수 있는 작품을 비로소 만났다”

- 『쇼코의 미소』, 최은영 작가



“해소되지 못한 시간과 사연이 여전히 예민하게 꿈틀대는 듯한 영지의 얼굴. 〈벌새〉라는 세계는 끝내 완전히 알기 어려운 이 얼굴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 『감정과 욕망의 시간』, 영화평론가 남다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국가의 꿈. 서울 강남은 그 몽상의 끝점이었다. 〈벌새〉는 이 몽상 안의 세계를 살아가는 은희가 사랑하고 상처 입던 순간들을 소환한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변호사 김원영



“이 영화의 역사성은 1994년 가족과 학교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통증과 폭력의 일상을 그려 낸 데 있다”

- 『페미니즘의 도전』, 여성학자 정희진





무삭제 시나리오, 영화와 사회를 함께 ‘읽는‘ 네 개의 시선,

여성, 서사 창작자로서 앨리슨 벡델과 나눈 김보라 감독의 대담까지

〈벌새〉를 만나는 가장 오롯한 방법

베를린국제영화제, 트라이베카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화려한 등장을 알린, 영화 〈벌새〉를 책으로 만난다. 영화 〈벌새〉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중학생인 은희가 거대하고 알 수 없는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나는, 작지만 힘 있는 날갯짓으로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분투하는 한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 냈다. 개인의 삶과 시대가 서로 교차하는 시공간으로서 영화 〈벌새〉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을 떠올리게 한다.

책으로 출간되는 『벌새-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은 영화 〈벌새〉에서 출발하지만 영화 안팎의 세계를 섬세하게 짚어 내고 확장하며, 1994년의 사회와 오늘, 예술과 현실을 연결하는 책이다. 영화에서는 편집된 40여 분가량이 그대로 담긴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감독의 말은 〈벌새〉 속 서사와의 보다 내밀한 만남으로 초대한다. 『펀 홈』과 ‘벡델테스트’로 잘 알려진 미국의 그래픽노블 작가 앨리슨 벡델과 김보라 감독이 직접 만나 여성 서사,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경험을 함께 다루는 창작자로서 나눈 대담에는 시대와 공간, 매체를 뛰어 넘어 예술가로서, 시대라는 물살 안에서 역동하는 개인으로서의 진솔한 고민들이 담겨 있다. 영화와 사회를 함께 읽어 내는 네 편의 글은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김일성이 사망한 영화 속 시공간을 이미 닫힌 ‘역사’가 아닌, 여전히 살아 있는 현재로 불러낸다.

김일성 사망과 성수대교 붕괴로 기억되는 1994년, 중학생 은희에게 세상은 낯설고 알기 어렵다. 하지만 그 ‘낯선 세상’은 오늘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곳이다. “나는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를 외치게 하는 담임선생님, 가족 모두 합심해 오빠를 외고에 보내야 한다는 아빠, 짊어진 불안과 압력을 여동생에게 분출하는 오빠, 일터와 가정에서 노동하며 고단한 엄마, 서툰 사랑 말고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언니. 시험을 잘 보면 캘빈클라인을 받지만, 부모님이 이혼하면 누구와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친구. 등굣길 지나치는 철거민들이 내건 “우리는 죽어도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현수막과 “김일성은 안 죽는 사람인 줄 알았”던 사람들, 그리고 무너진 다리 앞에서 제대로 슬퍼할 수도 없는 사람들. 그 시간을 지나온 ‘은희의 세계’는 2019년 지금, 어떤 모습일까?





국가주의, 학벌주의, 가부장제, 강남 개발과 계급 격차, 국가적 재난…

‘공기’처럼 잠잠히 사회를 감싼 ‘고통’을 어루만지며

그치지 않은 ‘사회적 기억’을 지금, 여기로 드리우는 서사와 시선들!

작가의 말에서 김보라 감독은 어느 날부터 반복되던 중학생 시절의 꿈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시나리오와 영화로 만드는 과정 속에 “깊숙이 ‘내 이야기’인 것은 결국 다른 이의 이야기가 된다는, 가장 구체적일수록, 그것은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학교와 학원, 가정과 그 밖에서 중학생 은희가 맺는 관계를 서사의 한가운데에 두고도 그저 ‘한때’로 그치지 않은 한국 사회의 고통과 상흔을 드러내 보이는 힘, 그 고통을 어루만지는 〈벌새〉의 힘이 ‘한국 사회’라는 범주를 넘어서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벌새-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에는 사회와 영화, 시나리오 속 서사를 함께 읽는 네 편의 글을 수록해 공기처럼 잠잠히 우리를 감싸 온 정서를 ‘사회적 기억’으로 기록하고, 현재적 문제로 바라보게 한다.

영화평론가 남다은은 은희와 단짝 친구 지숙이 각자 오빠에게 당했던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일상적인 폭력에 대한 두 소녀의 관성과 체념,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길 수 없는 분노가 꾹꾹 눌러 담긴” 가장 끔찍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장면으로 꼽는다. 지숙의 얼굴 곳곳을 물들인 멍처럼 가시적인 폭력의 증거들 말고도 은희의 유일한 공감자인 영지의 자못 침울한 얼굴, “겨우 삶을 견딜 정도만” 빛을 남긴 엄마의 얼굴에서도 폭력의 흔적들을 본다. 소설가 최은영은 그 익숙한 얼굴들에 드리운 폭력과 비존중을, 아프고도 아픈 줄을 의심해야 했던 모든 ‘은희’들이 품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공감받는 진정한 위로와 애도의 서사를 벌새 안에서 길어 낸다.

전쟁 이후 한시 바삐‘더 잘살자’는 꿈을 이루기 위해 국가와 사회, 가족이 말 그대로 ‘총력전’을 펼치던 그때를, 변호사 김원영은 ‘우울’과 ‘불안’이라는 정서로 짚어 냈다. 가부장적 가족이 결속하는 중심에 자리 잡은 ‘학벌주의’, 성수대교 붕괴라는 사회적 참사로 종언이 예고된‘한강의 기적’ 같은 무너지는 ‘꿈’, 그 속에서 꿈을 좇던 오빠와 아버지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애초에 경쟁 바깥으로 밀려난 엄마와 딸들은 그저 우울하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벌새’의 서사를 “지금, 여기의 프리퀄”이라 평한다. 오늘도 사람들은 끊어져 버린 다리처럼 무너져 내린 관계들 속에 ‘가족’이라는 제도로 얽어져 ‘각자’ 외로움에 몸서리친다. 그 외로움과 우울을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쏟아 내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사다리 없는 개천에서 목이 타는 이무기들에게 담임선생이 목 놓아 외치는“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는 구호는 이미 쓸모가 없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이듬해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90년대를 지나오고도 우리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혹은 알지 못하게 된 비극들을 마주하며 어딘가는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는 세계 속에서 끝나 버린 꿈을 그때처럼 좇고 있다. 『벌새』는 1994년의 기억이지만 오늘 당신에게로 이어지는 현재다.





◎ 책 속에서



고통은 언제 고통이 되나. 누군가의 시선으로, 공감으로 고통은 고통이 된다.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는데도 ‘싸우지 좀 마’라는 말을 들어야 할 때, 은희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철없는 칭얼거림이 된다. ‘싸우지 좀 마’라는 말에는 ‘오빠라면 여동생을 때릴 수 있다’라는 승인이, ‘여자애는 남자가 때려도 참아야 한다’라는 주문이 들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 자란 많은 여성은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진위를 의심한다. 아파도 자신이 아픈 것이 맞는지 검열하고, 분명히 부당한 일을 당해도 자신이 ‘예민해서’가 아닌지 확인하고 확인한다. 여성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언어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_최은영, 그때의 은희들에게 중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은 내가 자라며 만났던 ‘평범한 여자들’의 모습을 닮았다. 남자 형제의 진학을 위해서 학업을 포기하고 어린 시절부터 일해야 했던 여자들, 남편과 똑같이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가사 노동과 육아는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소화해야 하는 여자들, 남자 가족 구성원에게 학대당하며 살아가는 여자들,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라고 속삭이며 자신의 가치를 회의하는 여자들, 웃음을 잃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공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삶에 지친 여자들. 이런 사회의 여성들이 자신을 좋아할 수 있을까. 미소지니misogyny의 세계를 사는 여성에게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격언은 너무도 무겁고 어렵게 다가온다.

_최은영, 그때의 은희들에게 중에서



영지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은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외로울 때 제 만화를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나도 어린 시절 은희와 같은 생각을 했다. 외로운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덜 외로워졌으면 좋겠다고. (…) 우리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모두 외롭고 어린 여자아이였던 우리는 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서 자신이알지도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고자 했을까. 영지 선생님도 은희를 그런 마음으로 마주했을 것이다. 은희가 덜 외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영지 선생님이 눈빛으로, 함께 있어 주는 시간으로, 자신의 마음을 열어 주는 방식으로 은희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그 빛을 받은 은희 또한 영지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위로받고 싶었던 사람들이 위로하는 것처럼, 외로웠던 사람들이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_최은영, 그때의 은희들에게 중에서



〈벌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만연하고 죽음 충동의 얼룩이 곳곳에 들러붙어 있다. 요컨대, 삼촌의 갑작스럽고도 짧은 방문과 죽음의 소식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친척의 실제 죽음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끔찍하게 죽음이라는 단어가 부유하는 장면도 있다. 어느 날 은희의 단짝인 지숙이 오빠에게 맞은 상처를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다. 그는 심드렁하게 묻는다. “니네 오빠는 어떻게 때리냐?” 은희는 이 무시무시한 물음의 답으로 오빠에게 복수하는 최적의 방법에 대한 자신의 은밀한 상상을 꺼내놓는다. (…) 일상적인 폭력에 대한 두 소녀의 관성과 체념,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길 수 없는 분노가 꾹꾹 눌러 담긴 이 순간은 〈벌새〉를 통틀어 가장 무서운 장면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_남다은, 영지, 우리가 잃어버린 얼굴 중에서



해소되지 못한 시간과 사연이 여전히 예민하게 꿈틀대는 듯한 얼굴. 영지의 얼굴은 은희를 쳐다보고 있지만, 은희의 눈을 넘어 영지 자신에게만 보이는 세계의 어떤 심연을 대면하고 있는 것 같다. 배우 김새벽의 독특한 연기가 빚어낸 장면들이겠지만, 은희와 영지가 함께하는 장면이 영지의 얼굴에서 멈추며 끝날 때, 〈벌새〉라는 세계는 끝내 완전히 알기 어려운 이 얼굴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혹은 거기에 닿아 보려는 안간힘으로 스스로를 지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_남다은, 영지, 우리가 잃어버린 얼굴 중에서



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는 생존하고, 잘 먹고, 넓은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꿈으로 국가와 사회, 가족 모두가 총력전을 펼쳤다. 고도성장을 거치며 그 꿈의 일부는 극적으로 실현되기도 했다. (…) ‘한강의 기적’이라는 국가의 꿈은 곧 학력과 학벌을 통한 계급 상승 혹은 재생산의 최전선으로서 학교가 지닌 꿈이었고, 모든 가정의 꿈이었다. 서울 강남은 그 몽상의 끝점이었다. 〈벌새〉는 이 몽상 안의 세계를 살아가는 은희가 사랑하고 상처 입던 순간들을 소환한다. _김원영, 붕괴하는 꿈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이별한다는 것 중에서



이해가 불가능한 죽음은 애도할 수 없고, 애도가 불가능한 죽음 앞에서는 제대로 슬퍼할 수도 없다. 외삼촌의 죽음에 대해 은희가 묻자 “그냥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이상해”라고 말하는 은희의 엄마에게서, 우리는 슬픔이 아니라 우울의 정서를 본다.

_김원영, 붕괴하는 꿈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이별한다는 것 중에서



법원은 성수대교 건설과 관리 등에 관여한 이들을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공범으로 처벌했는데, 이는 고의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님에도 공범으로 처벌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이 판결에 대한 이론적인 반론이 많았다. 하지만 법원은 우리 개개인이 어떤 집합적 질서에 가담해 있는 자신을 각성하지 못할 때, 그것이 고의로 누군가를 해치는 일과 다를 바 없는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는 오랜 몽상이 만들어 낸 참혹한 결과를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약 8개월 후 역시 강남에 위치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고, 2년 후에는 IMF 외환위기가 이어졌다.

_김원영, 붕괴하는 꿈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이별한다는 것 중에서



은희는 영지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자신을 좋아하기란 원래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과 버림받고, 상처를 입을 때 느껴지는 자기혐오를 들여다보는 법을 조금씩 배운다.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지 않고도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 간다(더 이상 남자친구 지완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성수대교 붕괴로 영지가 죽었음을 알게 된 후에는, 우울을 넘어서기 위해 깊은 애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애도는 상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단절된 성수대교의 모습은 사회적으로는 이후 강남과 강북(혹은 강남 이외의 세계)의 더 철저한 단절을 상징하는 것 같지만, 그 단면을 응시하고 애도했을 때야말로, 우리는 우울의 정서에 머물지 않게 될 것이다.

_김원영, 붕괴하는 꿈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이별한다는 것 중에서



〈벌새〉의 가족은 극도로 ‘정상적’이어서 ‘영화에서나 나올 얘기’ 같지 않다. 규범적이라는 의미에서 정상이 아니라 현실적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 “오빠가 때렸어요”라는 딸의 호소에, 부모는 “싸우지 말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평등하게’ 취급한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자영업자 가장으로서 자의식이 강하지만 그가 노동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집안일과 가게 일을 도맡아 하는 엄마는 그저 인생을 견디고 있는 듯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겉도는 이 집의 막내딸(주인공)은 외롭다. 모든 공간, 어른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부패하고 비열하다. 그나마 소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는 몇 장면 안 나오는 의사다. ‘인도주의적’ 중년 의사는 세상사(가정폭력, 학교폭력)를 아는 듯, 고소용 진단서를 발급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소녀는 사랑과 관심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작은 관심에도 설레고 상처받는다.

_정희진, 지금, 여기의 프리퀄 〈벌새〉 중에서



〈벌새〉는 사랑 ‘받는’ 사람이 피해자임을 보여 준다. 10대의 문제일까, 시대의 문제일까. 은희의 친구, 남자친구, 후배는 모두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필요에 의해 은희를 사랑의 대상으로 이용한다.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대체재가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극단적인 개인의 시대지만, (인권 개념에서) 개인은 그 안에서도 다른 누구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존재여야 한다. 〈벌새〉는 그렇지 않은 현실을 보고한다. (…) 사랑은 윤리적인 사람만이 시도할 수 있는 행위다. 가족은 이러한 윤리를 제도로 대신하려는 체제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호주제 폐지 운동 당시의구호대로, 가족을 지키는 것은 성姓이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이다.

_정희진, 지금, 여기의 프리퀄 〈벌새〉 중에서



AB 좀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여자‘아이’였을 때, 나는 정말이지 여자아이인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란 60년대는 여자아이인 동시에 삶을 누리고 인격을 가진 인간이 된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였다. 내가 남자아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여자아이들과 나를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뭐랄까… 당시 ‘여자아이’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인 쪽에 가까웠다. (…) 사실 어렸을 때 나는 남자와 소년들만 그림으로 그렸다. 남자들은 항상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멋지고 흥미로운 일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나는… 그런 식으로 나의 여성성을 대체해 버렸다. (여성이라는) 비존재로서의 미래를 마주하기가 너무나도 괴로웠기 때문에 스스로 가진 여성성을 무시했던 거다. 내가 봤던 모든 여성 캐릭터들처럼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_김보라, 앨리슨 벡델, 여성, 서사, 창작에 대해 중에서



AB (…) 그즈음 어머니는 동성애적 욕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오스카 와일드의 연극에 출연했고, 나는 첫 생리를 했다. 사회적으로는 워터게이트사건이 터졌는데, 모두들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사건이 동시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일기장을 다시 읽고 나서야 겨우 알아차린 거다. 이 모든 일이 두 달 남짓 사이에 벌어졌다. 이상한 동시성synchronicity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BK ‘이상한 동시성’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나도 내 인생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다리가 붕괴되고, 북한의 지도자가 죽었고, 내가 중학생으로 보낸 마지막 해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 어쨌든, 나에게도 1994년은 무척 ‘영화적인’ 해였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위대하고도 이상한 동시성’을 발견해 내야 하는 것 같다.

_김보라, 앨리슨 벡델, 여성, 서사, 창작에 대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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