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172일 동안을 자고 일어난 토포러(toporer)들, 잃어버린 손가락 대신 만들어넣은 나무손가락에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육질화(肉質化)되어가는 피노키오 아저씨, 남성성(기)과 여성성(기)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 자신의 정액을 자신의 질 속에 집어넣어 스스로 임신을 하기까지 하는 네오헤르마프로디토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낡은 캐비닛 안에는 온갖 기이하고 특이한, 눈이 휘둥그레지고 잠시 역겨움을 느끼고, 분노케 하고, 또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하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정작 이 이야기를 전하는 ‘평범한’ 화자 역시 백칠십팔일 동안 캔맥주를 마셔대고 하릴없이 캐비닛 속 파일들을 정리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삼십대 직장인이며 그의 동료 손정은씨는 초밥을 너무 좋아해 한 번에 백 개가 넘는 “특대” 초밥을 먹어치우며 월급을 모두 밥값으로 날려버리는 아가씨다.
작가가 심토머라 부르는 변화된 종의 징후를 보여주는 사람들.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캐비닛』은 이 심토머들의 기록과 이를 정리하는 화자의 이야기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은 어느새 믿지 못할 일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이 소설에서 ‘캐비닛’은 이 세상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담아두는 하나의 용기이다. 작가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캐비닛 안에 넣은 다음 탄탄한 필력과 구성진 입심을 이용, 적정 온도와 습기를 유지해 이들이 상하지 않도록 한다. 부패되지 않은 싱싱한 ‘진짜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우리는 가만히 이 캐비닛만 열어보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