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
사랑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는 모두 사랑노래다.
삶이 참혹할수록 노래는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난다고 했다. 750년 전, 그들의 노래 또한 그러했다. 많은 것들이 시간의 무자비한 파괴력 앞에서 잊히고 묻히고 흩어졌지만, 그때 그들이 부르던 노래 몇몇은 살아남아 우리 곁에 닿았다. 학창시절, 우리는 ‘높고 고운 노래[高麗歌謠]’라는 이름으로 그 별곡들의 가사를 읊조리고 외웠다.
선유 장편소설 《가시리》는 바로 그 노래, 우리가 흔히 ‘고려가요’라 부르는 별곡의 주인들을 새롭게 호출해 목소리와 숨결과 생각과 눈빛을 불어넣은 사랑노래다. 작가 선유는 자료와 상상을 질료 삼아 결코 간단치 않았을 그들의 이야기를 손에 잡힐 듯 서늘하고 아릿한 풍경으로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1270년 4월 마지막 날 아비 고음(考音)의 장례를 치른 아청(鴉靑)은 보름 동안 말문을 닫았다. 당대 최고 거문고 연주자이자 별곡 작곡자인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서재에 들어설 때만 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루 동안 서재를 정리한 후 방상(고려시대 악사들이 소속되어 있던 기관) 연습실로 가서 별곡 몇 자락에 슬픔을 털어내면 될 거라 믿었다. 팔방상의 으뜸 가인(歌人) 아청을 아끼는 사람들은 그녀의 침묵을 슬픔의 밀도와 연결시켰다. 그 낡은 틀에 갇히지 않고 아청을 찾아온 이는 두 사내뿐이었다. 좌(左)와 우(右). 삼별초에 속한 무인이자 아청의 오랜 벗이었다. 셋은 강화경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고향은 서경이지만, 왕국(고려)이 북쪽 제국(몽골)에 맞서 강화로 도읍을 옮긴 이후 부모도 그 자식들도 노래(〈서경별곡〉)로만 고향 땅을 그리워했다. 그 시간이 무려 38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