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약속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것들은 그저 용도에 맞춰 거기에 있는 단순한 물건들이 아니다. 오래된 가구, 옷, 여행지의 기념품, 가전제품 등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하고 오래 지속되는 관계가 바로 이런 사물과의 관계다. 나의 소유물들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일까? 나는 어떤 것은 쉽게 버리고 왜 어떤 것들은 오래되었음에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사회학자이며 작가인 저자는 우리가 취하려 하거나, 계속 소유하거나, 버리거나 남에게 주려고 하는 물건들의 면면을 개인사와 명사들의 에피소드 하나씩에 담아 사회적 현상, 역사적 의미, 심리학적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마티스는 말년에, 이미 많은 멋진 의자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왜 또 새로운 안락의자를 사들였을까? 시몬 드 보바르는 왜 나치 점령하의 파리 시내를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돌아다녔을까? 남편 건강을 위해 들여놨지만 목적에는 부합하지 못한 이케아의 포엥 의자는 어떻게 전세계적인 인기 제품이 된 것일까? 죽음 바로 앞까지 갔던 사람에게, 한낱 기념품에 불과했던 이타카섬의 돌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저자의 빈티지 벨벳 재킷같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이들의 토끼 인형을 만들 때 밤새 돌리던 싱어 재봉틀은, 이십 년간 이사를 함께 다녔던 클래식한 옷장, 서랍 속에 고이 간직돼 있는,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연결고리인 부츠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 책은 총 8개의 에피소드와 그와 관련된 사회학적, 인문학적, 역사적 측면 등 다각도의 깊이 있는 성찰로 구성되어 있다.
"마티스의 안락의자"에서는 우리의 물질주의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킨다. 보통 새로운 물건을 사들이는 행위는 새롭거나 아름다움에서 오는 행복이나 기쁨, 희귀하거나 고급스러운 것을 갖는 데서 오는 자신감, 사회적 지위 등에 대한 약속이다. 그런데 마티스 작품의 원천이 되었던 안락의자는 "사물을 발견하고 깊은 애착을 느끼는 것, 그것을 돌보고 진가를 알아보는 일"이라는 또다른 유형의 물질주의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시몬 드 보바르의 자전거"에서는 제약 있는 환경 속에서도 소유자의 의지표현, 행동의 이행, 자유를 표현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보여준 그녀의 물건(자전거)에 대한 탐구가 이어진다. "에드워디안 스타일 옷장"에서는 저자가 이십 년간 함께했던 오래된 옷장에서, 사물의 가치가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인 기준에서 '쓸모있고 아름다운' 면에서 의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또 중고 가게에서 발견한 "벨벳 재킷"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에 '벨벳 재킷을 입은 사람'과 같이 '그 물건의 주인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제거해주겠다는 약속'을 발견한다.
이외에도 사실은 우리와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무생물의 무심함으로 우리에게 묵직한 위로를 전하는 "이타카섬의 돌", ''손으로 만든 물건은 시장을 초월한 가치가 있으며 우리 자신도 그러하다는 약속'을 보여주는 "싱어 재봉틀", 주인의 일부가 되어버린 물건들이 어떻게 후손이나 지인에게 전달되고 기억되는지에 대한 고찰인 "빈 서랍" 등 저자의 사물에 대한 참신한 시각은 물건들의 풍요 속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물질주의, 미니멀리즘, 소유의 의미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