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어른이라 외면해야 했던 감정들이 몰려오고
어른이라 내려놓아야 했던 ‘삶의 패’가 떠오르는 날이 있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단어의 배신》,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을 통해 번역가의 세상을 보여줬던 박산호 번역가의 에세이로 ‘번역가’라는 타이틀 뒤에 있던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어른’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풀어냈다.
통역가를 꿈꾸다 읽고 쓰는 게 좋아 번역가가 된 후 16년 넘게 번역을 하고 있는 저자는 어느덧 사회적으로 중견의 자리에 서고 누군가를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가까워졌다. 막연하게 이쯤 되면 인생이 더 선명해졌을 것 같지만 여전히 알 수 없고 아득한 일들이 많다. 하지만 불안과 모호함이 전부였던 20대를 지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니 좀 더 나아진 것들도 있다. 늘 불친절할 것만 같던 세상도 이제는 좀 더 다정해지고 그 나이에 걸맞은 ‘맛’도 조금씩 찾아가게 되었다. 저자는 인생의 중반을 넘어가는 시기에 서 있지만 자신이 진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지, 자각도 자격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생의 고비마다 자신을 이끌어줬던 마음들을 잊지 않고 책에 담아 ‘어쩌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다정한 응원으로 돌려주고 있다. 또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전한다.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아무나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부드럽지만 무르지 않게 느낌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법
저자는 현재 중견 번역가이자 작가 그리고 강연자로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녀의 청춘을 돌아보면 잿빛 같은 나날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든 게 모호했고 먹고사는 문제까지 겹치면서 극심한 자기혐오와 회의로 점철된 나날을 보냈다. 결혼과 출산 후에 찾아온 우울증 때문에 현실에 닿지 않는 발을 허공에 바둥거리며 그저 ‘생존’만 생각하며 지낸 기나긴 시간도 있었다. 아이와 함께 건너간 영국에서의 삶 역시 버티기의 연속이었고,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서도 프리랜서로 자리 잡기 위해 분투했다.
책에서 말하는 ‘어른’이란 물리적으로 나이가 많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때론 뒤통수 번쩍이게 깨달음을 주는 아이, 묵묵하게 늘 곁에 있는 책 등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함께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저자 역시 그들에게서 얻은 힘으로 다시 일어서고 또 일어서며 이제는 넘어질 때와 넘어지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요령도 생겼다. 이를 바탕으로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하는 꼰대질과 막말, 부탁을 가장한 강요 등 누구나 한 번쯤 비굴하게 참고 넘겨야 했던 상황에 대한 대처법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쏟아낸다. 또한 ‘나’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꼰대였던 적이 없는지, 돌아보게 하는 현실자각의 시간도 제공한다.
‘어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외로운 분투를 응원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어른의 기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하루치 일과를 무사히 끝내기도 버거운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용기로 가득하다. 사람에, 일에, 노력에 배신당해도 성실하게 자신의 시간을 쌓아가며 ‘어른’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몰래 촛불 한 자루를 켜주는 마음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사는 게 마음 같진 않지만 분명 인생이 다정해지는 시기가 온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