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사유의 전선들
한나 아렌트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해저에 묻힌 진주와 산호를 캐어 오는 잠수부처럼
망각에 빠질 행위 및 사건들을 우리에게 드러내는 이야기꾼처럼
‘정상인’으로서가 아니라 의식적 파리아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한나 아렌트의 진면목을 만나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커져 가던 2016~17년 촛불집회 이후, 사회 변화와 함께 한나 아렌트의 사상은 민주주의와 악의 평범성에 관한 탁월한 통찰로 많은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는 이제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덕목을 이야기하는 안온한 철학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 사상이 가지는 함의가 그것뿐일까? 오히려 한나 아렌트의 사유에, 주류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치를 꿈꾸게 하는 가능성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기억과 이야기, 다소 낯설 수 있는 파리아Pariah의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며, 한나 아렌트 텍스트와 현실의 접점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세계에서 사람들이 다원성/복수성plurarity을 발현하는 한 방식인 이야기는 한나 아렌트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기억과 이야기, 의식적 파리아로서의 위치성 또한 아렌트 철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한나 아렌트 사상의 핵심을 구성하는 이러한 점들은 국내에서 아직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이제는 그 의미만큼 진부해져 버린 악의 평범성에 관한 논의만이 대중들에게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친숙한 강의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도식화된 이해에서 벗어나 한나 아렌트 사유를 바탕으로 우리 시대 정치를 좀 더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데 많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한나 아렌트 사유의 전선들-기억과 이야기, 의식적 파리아의 정치》에서 저자는 한나 아렌트가 소위 민주시민의 덕목을 이야기하는 철학자일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이야기를 매개로 그 전통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 투쟁 공간들 및 ‘소수자로서의 행위자들’의 정치 공간과 전적으로 무관하지 않은 철학자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철학이 억압받는 정체성을 가진 자들이 ‘이야기’를 통하여 자기 자신과 타자들, 자신이 처한 세계적 조건을 이해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행위의 전통을 구성하는 데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기본 이해를 바탕으로 독자들은 사회에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기 어려운 사람들, 장애인, 성소수자, 해고 노동자, 철거민, 빈민 등 주변부에 밀려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해서 이야기하는 ‘이야기꾼’들이 이들의 이야기로 건저 올린 망각되어 가는 이야기들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 이야기로 드러나는 다원성/복수성이 어떻게 정치의 조건이 되는지도 함께 탐색하며, 한나 아렌트 사상의 폭넓은 가능성을 함께 발굴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역사의 연속적 흐름을 깨고 출현한 사건들의 진귀한 의미를 캐 올리는 잠수부처럼, 이야기의 힘에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과 타자들, 자신이 처한 세계적 조건을 이해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행위들을 배우며 스스로 살아가는 현장에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 철학 강연록을 새롭게 정리한 것이다. 1~7강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나 아렌트의 삶을 함께 나누는 것에서 시작해, 그가 앞서 말한 사상들을 펼칠 수 있었던 맥락을 살펴보고, 기억과 이야기와 파리아론을 거쳐 인권의 역설, 권리들을 가질 권리, 악의 평범성, 전체주의 이해, 노동관, 세계 소외와 지구 소외 등 한나 아렌트의 핵심 문제들을 빠뜨리지 않고 다루게 된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텍스트를 충실하게 읽음과 동시에 우리 삶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이러한 통찰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만날 수 있는지 탐색한다. 저자와 함께 독자들은 지루한 해설이 아닌 살아 있는 인문 강좌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6강은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활동적 삶Vita Activa’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다루며, 한나 아렌트 사상에 비판적인 여러 입장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한나 아렌트는 활동적 삶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하며, 근대 사회가 이것 중 노동의 활동에만 지나치게 주목하여 다른 활동들의 본 의미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아렌트의 설명은 애초부터 마르크스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구성된 것이기에 아렌트의 인간론은 여러 반대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설명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었다. 저자는 아렌트의 인간론이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의 노동 및 실천 개념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며, 또 그것을 나름대로 넘어서기 위한 치열한 사유의 결과물이라 말한다. 이에 대한 논의를 통해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