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에로스의 유혹
“원래 키스는 세 번째부터 맛을 알게 되는 거야. 가슴도 쿵덕거리고 말이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제가 지금 궁지에 몰렸거든요. 응급실로 내쳐지든지, 사직서를 써야 해요. 그러니까…….”
“막아 줄게. 응급실은 내가 안 보내.”
“네. 그러자면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제게 키스를 해서 뺨을 맞은 거라고요.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반사적으로 손을 뻗은 거라고요. 그러니까 차효경을 응급실로 보내는 건 고려해 달라고 말이에요.”
비장미가 흐르는 목소리로 제 결백을 증명해 달라는 효경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휘문이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식탁에 두 팔을 올리고 깍지를 꼈다.
“그럼 내가 하나만 물어도 돼?”
“물어보세요.”
“센터장님께 왜 미움을 산 거야?”
“왜냐고 물으신다면……."
효경이 턱을 당기자, 휘문의 입에 침이 가득 고였다. 드디어 궁금증이 풀린다는 생각에 생기가 돈 눈빛만큼이나 혈색이 밝아졌지만 효경이 의미심장하게 웃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모르겠는데요.”
“모른다?”
“제 어떤 면이 마음에 안 드시는지 모르겠어요.”
“이유라도 알아야지, 내가 널 옆에 둘 수 있어.”
“이유 몰라도 지켜주세요.”
승규가 지켜주겠다고 했을 땐 솔직한 말로 무척 부담스러웠었지만 이상하게 휘문에게는 마음 편히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건 한국대학병원 출신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유형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외과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또 거침없고 두려움이 없다는 듯이 만날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다니는 여유가 그 이유일 수도 있었다.
“난 거칠어.”
“압니다.”
“방법도 저돌적이야. 차효경에게 내가 키스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주절주절 떠벌리는 성격도 아니야.”
“그것도 압니다.”
효경은 제 결백만 증명할 수 있다면 그가 어떤 방법을 선택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내 방법대로 하는 거야. 알았어?”
휘문은 효경의 안색을 뜯어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방식대로 하겠다고 했어.”
“예, 하세요. 대신 더 심한 오해를 받지만 않게 해 주세요. 전, 김태진 교수님의 수술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아니, 교수님 드림팀의 일원으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해요. 그리고 교수님이 최고가 되는 걸 보고 싶어요.”
휘문의 기분을 살리는 걸로 마무리를 지어 버린 효경의 포부는 고무적이었다. 최고가 되는 걸 보고 싶다? 그는 이제야 완전한 합일점을 찾은 것처럼 입매 끝을 올렸다.
기분 좋게 올라간 입술을 혀로 쓸던 휘문은 5시, 저녁 시간이 되어 의사들이 몰려들어 구내식당이 떠들썩해지길 기다린 듯 주변을 휘둘러봤다. 그러다 까불거리는 건호를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보는 승규가 눈에 들어오자, 음흉할 정도로 기분 좋게 웃었다.
승규에게서 시선을 뗀 휘문은 엄지손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의 단맛이 남아 있는 입술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효경을 불렀다.
“차효경.”
그의 음성은 입술에 남아 있는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했고 고혹적이었다.
건호의 목소리에 시선을 입구 쪽으로 돌리던 효경은 자신을 부르는 휘문에게 대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다디단 냄새를 풍기는 입술이 효경의 입술을 왁 물었다.
이번에는 앉아서 당한 효경은 식탁을 아예 올라타 키스를 한 휘문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바람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비집고 들이닥치는 뜨거운 덩어리에 입 안이 가득 채워졌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지만 효경은 진공관에 갇힌 것 같았다. 그저 자신의 가슴에서 나는 두근거리는 소리만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어쩜 경기를 일으키는 심장 박동 때문에 가려졌는지 몰랐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키스가 다르다는 말처럼 세 번째 키스는 심장을 터트릴 기세로 거칠었다.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달짝지근하게 들렸다. 쩝쩝 소리가 쉽게 그치지 않을 것처럼 구내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얼려 버렸다.
휘문은 이미 넋이 나가 버린 효경이 눈을 질끈 감고 있어, 피식 웃으며 곁눈으로 승규를 찾았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승규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하긴 5년 동안 공들인 여자를 제 눈앞에서 빼앗겼으니 충격이 상당했으리라. 그렇기 때문이라도 효경을 놓을 수 없었던 휘문은 농구공을 쥐듯이 그녀의 뒤통수를 손바닥에 붙인 채 키스를 퍼부었다.
차효경은 이제 유휘문의 여자라고 수백 명의 동료 의사 앞에서 신고식을 해 버렸다. 그리고 효경이 숨가빠할 때에 맞춰 입술을 떼며 속삭였다.
“……이로써 차효경의 결백이 증명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