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음, 그리고 마음
이 책은 한겨레, 경향신문, 미디어오늘, 서프라이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개인 홈페이지 등에 실린 글들 가운데 고인과 관련된 내용을 추려 모은 것으로, 고인의 옛 지지자가 보내는 화해의 책이다. 애증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다시 노무현의 가치를 마음속에 새기는 책이다.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누구보다 헌신했으면서도 참여정부 시절에도 여전히 비판적 지지의 입장으로 떄로는 누구보다 아프게 참여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던 시민사회 인사들의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시민기자들을 포함한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때문에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일방적인 노무현 대통령의 찬가가 아니다. 오히려 참여정부의 한계를 통해서 계승해야 할 것은 마땅히 계승하고, 극복해야 할 것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고인이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가치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박노해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 환경이라는 최악의 한계 상황을 기어서, 낮은 포복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노동자 시인이다. 본명은 박기평이며, 세례명은 가스발이다.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라났다. 고흥의 동강국민학교를 거쳐 벌교중학교를 마친 뒤 16세 때 상경하여 낮에는 노동자로 학비를 벌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을 다녔다. 시인은 15세에 처음으로 서울에 상경했고, 상업 고등 학교 야간부를 졸업한 뒤 삼원철강에 취직하는 한편 향린교회 청년부와 야학 모임에서 활동했다.
군사독재정권의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생을 두고 결단한 이번생의 이름이었다.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노동의 새벽』은 당시 ‘잊혀진 계급’이던 천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고, 젊은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한국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그의 시는 87년 ‘6월민주항쟁’의 승리를 지펴낸 하나의 불꽃이 되어, ‘시의 힘’이 무엇인지를 역사 속에 보여준 생생한 사례가 되었다. 1989년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을결성했다.
1982년께 군대에 다녀온 그는 야학 일을 하다가 만난 김진주와 결혼하고, 안남운수에 취직한 뒤 버스회사에 입사하여 운수 노동 운동을 하다 해고당하고, 85년에 결성된 서노련 (서울노동운동연맹)에서 활동했다. 1983년 그는 황지우, 김정환, 김사인 등이 꾸리고 있던 동인지 『시와 경제』2집에 「시다의 꿈」,「하늘」, 「얼마짜리지」, 「바겐세일」 ,「그리움」, 「봄」 등 여섯편의 시를 발표하며 '얼굴없는 시인'으로 문단에 나온다. 시인의 신원은 오랫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가린 채 그에 대한 갖가지 유언 비어성 풍문만 떠돈다. 가난한 집안과 전라도 태생, 게다가 '빨갱이'의 자식으로 철저하게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는 최저 빈민 계급 출신인 그의 눈에 '서울'은 가난한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죽음의 도시'로 비친다.
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내 한 시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민주화와 노동 해방을 향한 80년대 혁명 운동에 앞장섰다. 『노동의 새벽』이 나오기까지 시인은 군자동 섬유 공장, 청량리 공사판, 성수동 영세 공장, 안양의 버스회사 등에서 노동자로 전전하며 '노동자 시인'이기에 앞서 '철저한 조직 운동가'가 되기 위한 단련의 시기를 거친다. 이렇게 7년의 세월을 보낸 뒤 비로소 내놓은 것이 『노동의 새벽』이다. 시인 자신은 『노동의 새벽』의 출간 의미를 "뼈저린 자기 부정과 해체이자 불철저한 나 자신과의 투쟁"으로 규정짓는다.
군부독재 하에서 7년 여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 참혹한 고문 후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6년여의 수배 생활과 8년여의 감옥 생활을 보냈다.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1999년 에세이집 『오늘은 다르게』를 펴냈다. 1998년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광복절 특별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2000년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를 설립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을 모아, 2010년 첫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국내외 현장에서 쓴 304편의 시를 엮어 12년 만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오늘도 국경 너머 인류의 고통과 슬픔을 끌어 안고, 세계 곳곳에서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농부마을’ 을 준비하며 새로운 사상과 실천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내건 사회단체 ‘나눔문화(nanum.com)’를 통해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대안 삶의 비전 제시와 ‘평화나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목차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안도현 시인
그대 잘 가라 손문상 프레시안 화백
화보
책을 펴내며 백시나 퍼플레인 기획부
1. 아이콘, 노무현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백무산 시인
행동하는 양심이 되십시오! 김대중 전 대통령
그들은 ‘제2의 노무현’ 탄생이 싫었다 이종필 기자
당신의 국민이어서 행복했습니다 김갑수 문화평론가
운명으로서의 죽음 장은주 영산대 교수
정치적 자살과 정치적 부활 조동섭 시민기자
내가 반했던 남자, 노무현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군대 가서 총 들지 않을 자유, 당신은 알아줬다 임재성 시민기자
내가 만난 대통령 노무현 이용섭 국회의원
노무현 죽음, 반통일세력의 정치적 타살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선루프 열고 나온 노무현, 경호원도 당황 김동이 시민기자
바보 노무현의 탄생 이준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
죽은 동영상의 사회 오순정 공인회계사
2. 땡큐, 노무현
추모시 당신의 아름다운 사랑은 왜 이렇게 말해질 수밖에 없었는가? 김진경 시인
질 줄 알면서 싸웠고, 결국은 이겼습니다. 정재형 변호사
부치지 못한 편지… 봉하마을 노무현 드림 이준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
1981년, 서른다섯 노무현과 만나고 싶다 고재열 시사IN 기자
‘노무현의 질문’ 기억하기 도정일 문학평론가
고향 사람들을 탓하지 마라 임종인 전 국회의원
나는 그분에게 빚 진 사람입니다 홍행소 시민기자
노동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노무현 김철관 배제대 겸임교수
어수룩한 수행비서 - ‘비겁한 응원자’였지만 이 ‘노무현 드라마’가 해피엔딩이길 바랐다
전대원 전 수행비서
3. 굿바이, 노무현
추모시 우리들 자신이기도 하는 노무현 대통령 김준태 시인
부엉이바위에 노무현 대통령이 삽니다 김명신 교육운동가
오늘에서야 눈물이 났습니다. 정범구 전 국회의원
‘상록수’를 들으며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저는 죄인입니다. 백원우 국회의원
언론책임론 방향 잘못 됐다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책임추궁에 앞서 나부터 반성합니다 조기숙 참여정부 홍보수석
MB 국민으로 살면서 내가 좀 삐딱해졌다 이상미 시민기자
아직도 우리들과 함께 살아계시는 노무현 대통령님께 변선희 소설가
영가 축원 명진 봉은사 주지스님
4. 노무현, 당신의 말
추모시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박노해 시인
노무현 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