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 1
남장을 즐기고 무술과 시에 능한 재색겸비 그 낭자, 은성
학식, 외모, 가문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노는 그 한량, 한주
이들의 첫번째 이야기
여인의 사회진출이 막힌 조선시대에 남성 못잖은 재능을 타고난 한 여인의 이야기.
감나무골 박 진사 댁 무남독녀 외동딸, 동주 박 은성 낭자.
세간엔 뛰어난 시문으로 '동주 낭자'라 명성이 자자하고 미모 또한 뛰어나니 재색겸비란 바로 이런 이를 두고 한 말이라 모두들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자면, 시문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방안에 앉아 시를 쓰고 수를 놓는 것보다는 밖으로 나가 세상 구경을 하는 것이 더 좋고, 이름난 고수가 어딘가 있다하면 찾아가 겨뤄보고 싶은 무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철저한 관리로 모든 것은 최측근인 몸종 을녀와 호위 철용만이 아는 일이다.
일찌기 의원은 스무살을 넘기지 못하리라 했다. 해서 그 부모는 그저 건강하게만 살아달라 빌며 맘껏 자유를 누리고 무술을 익히고 남장을 하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마저 용인해주었다.
하지만 나이가 차고 보니 걱정이다. 과연 혼인을 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부모의 걱정을 뒤로 한 채 남장을 하고 장구경을 다니던 은성 앞에 웬 사내 하나가 나타난다.
그것도 은성이 바라지만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또 가질 수 있는 그런 사내가.
사대부의 자제이며, 기생이며 여염의 규수들이며 모두들 한 번 보면 눈을 떼지 못할 외모, 거기다 방바닥부터 천정까지 닿도록 쌓아올린 서책을 두루 읽어 학식도 높은, 그런 사내가.
그런데 이 사내가 주색잡기로 허송세월하니,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한 기회에 울분에 찬 은성의 울화가 끓어오른다. 결국 서로 엉덩이를 걷어차기에 이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