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사회와 전환기의 기독교윤리
새로운 세계를 만난 선각자들이 본 조선이 아닌 다른 세상의 모습은?
16세기 선조와 광해군 시대를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한 조선의 자유인 교산蛟山 허균許筠, 18세기 숙종의 시대에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생을 마감한 지식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8세기 조선의 진경시대, 서학열에 빠진 젊은 유학자 광암廣唵 이벽李蘗, 북벌이 아닌 북학만이 조선의 살 길이다!라고 외친 기남자奇男子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등 4명의 선각자들이 본 조선이 아닌 다른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자신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한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갔을까? 그 흔적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조선이 만난 서학의 수용과 새로운 윤리사상의 모습은?
17·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윤리는 진리를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그들은 논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어떠한 진술도 그것이 올바른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기울여야 할 주의를 빗나가게 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회전교사들이 전하는 지식의 ‘존재’와 조선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행동의 ‘당위’를주장하는 것의 차이는 18세기 조선에서 일어난 유교와 천주교의 갈등의 근본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학이 전래된 이후 우리 사회 일부 계층에 새로운 윤리사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