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이름 붙이고, 경계 짓고, 회피하는 다수로부터 나는 자유로운가?”
우리 안에 감춰진 시선에 관한 고백
『후아유』(이향규 지음)는 자신이 다수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할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담은 에세이다. 누군가의 이야기였다면 이렇게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삶이든 특별하지만 이향규의 삶은 더욱 그렇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영국 사람과 결혼하면서 영국에서 몇 년을 보냈던 결혼 이주 여성.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 이주 여성과 다문화 청소년, 북한 출신 청소년들을 도왔던 연구자. 학교에서 스스로를 ‘다문화’라고 배우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병을 앓고 있는 남편을 위해 영국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한 이주민. 이러한 그의 삶과 그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스토리에는 담담하지만 치열한 성찰이 배어 있다.
이향규는 영국으로 다시 이주하면서 사회가 시키는 것을 너무 성실히 따르는 바람에 정작 자아의 힘을 기르지 못한 자신이 낯선 사회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책에 쓰려다가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나를 다그치지 말고, 한국 사회를 야단치지 말고, 내 삶을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이주민들을 위해 했던 일들을 이주민으로서 다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이 아닌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 독특한 관점이나 강렬한 문체가 아니라 이야기가 품은 단단한 힘. 살짝 멈출 줄 아는 용기. 그의 글에서는 이런 힘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