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입술에 묻은 이름

입술에 묻은 이름

저자
권혁웅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일
2014-02-03
등록일
2019-08-06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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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에는 타자의 흔적이 묻고(be stained with),

시는 타자의 존재론을 묻고(ask),

그리고 시는 삶의 형식을 기록하고 고정해 묻는다(bury)

─시가 일깨우는 우리 ‘입술에 묻은 이름’, 권혁웅 두번째 평론집




권혁웅, 그 앞에 어떤 수식어를 먼저 붙이는 것이 좋을까. 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이자 기존의 문단이 주목하지 않았던 작가와 작품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옹호하며 한국 문단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온 문학평론가, 네 권의 시집을 출간하고 2012년 제12회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신화와 괴물 이야기를 사랑이라는 코드로 풀어내거나 신체 각 부위를 매개로 삶과 사랑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작업 등 심미안이 돋보이는 저술 작업을 이어가는 낭만적인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미래파』 이후 7년 만에 두번째 평론집을 발표한다. 『입술에 묻은 이름』. 언뜻 평론집 제목 같지 않지만, 그 뜻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권혁웅답다’.



‘입술’을 제목에 올린 것은 대체로 시의 언어가 육체성과 분리되지 않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시는 시적 언어가 태어나는 발화의 순간을 제 입술에 아로새긴다. (……) ‘이름’은 시의 언어가 궁극적으로 되살리고자 하는 타자의 존재론이다. (……) ‘묻다’라는 것. 내 입술과 당신의 이름을 연계하는 관계의 형식은 셋이다. 곧 ‘묻다’는 흔적이요 질문이며 장례 절차다. 흔적은 과거, 질문은 미래, 장례는 현재의 절차에 해당한다. (……) 시는 당신과의 접촉면에 관해 말하고(흔적은 당신과의 만남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기록한다. 수동적인 건 당신이 아니라 나다) 당신의 자리를 열어놓고(질문은 당신이 움직일 자리를 마련한다. 자유의지를 가진 건 당신이다) 당신 자신에 관해 말한다(장례는 한 사람의 평가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_「책머리에」 중에서



이 책에서 저자는 “내 입술과 당신의 이름을 연계하는 관계의 형식” 즉 ‘묻다’의 세 가지 형식을 토대로 한다. 요컨대 시가 타자를 회상하고 되살리는 길을 따라가고(“흔적이 묻다[be stained with]”), 시가 타자의 존재론을 일깨우는 질문의 형식을 고찰하고(“질문으로 묻다[ask]”), 시가 어떻게 삶의 형식을 고정하고 현재화하는지 담았다(“장례 절차에 따라 묻다[bury]”).



1부에서는 시에 관해서 몇 가지를 묻는다. ‘시에 있어 소통은 무엇을 전제로 성립되는가, 소통은 어떤 지평에 놓여 있는가’ 하는 물음은, 현대시가 어떻게 난해성의 문제를 극복하고 시적 감동을 보존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시가 어떻게 타자를 사유할 수 있는가, 시는 어떻게 공동체와 연계되는가’ 하는 물음은 시가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더 강력하고 집요하게 공동체의 문제를 사유해왔”음을 환기한다. 시학의 “이미지론, 어조론, 비유론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주체가 아니라 타자다. 이미지는 처음부터 타자의 능동성을 전제할 때에만 생겨난다.” ‘시인=자아=화자’라는 원환에서 벗어나 “시의 내부와 외부를 통합하고, 주체와 상황의 판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의미론적 요소를 시에 도입”하여 “생산의 역량”을 갖게 하는 시의 ‘실재’에 대한 고찰은 이후의 평론을 입체적으로 읽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미래파 2」는 2000년대 중반 문단의 가장 큰 논쟁이었던 ‘미래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그가 당시 받았던 비판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띠는 글이다. “최근 시들에서 보이는 결여나 과잉을 포착함으로써 그 시들이 기반하고 있는 특별한 자리를 드러내고”자 했던 저자의 의지를 재확인할 수 있는 이 글은 지금 시점에 읽어도 유효하다.



2부에서는 한국시가 가지 않은 길, 갈 수 있었던 길을 짐작해본다. 백석이 북한에서도 생산성 가진 시를 썼다면, 박인환이 조금 더 살아서 김수영만한 발전을 보였다면, 하는 가정으로 쓴 일종의 ‘가상문학’으로 그들 문학 세계를 새롭게 조망한다. 「기형도는 두 사람이었다」는 기형도의 시적 언술에 어떤 비일관성이 있으며, 이 비일관성을 인정해야 기형도의 시에 대한 새로운 독법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쓰여진 글이다. 김춘수의 무의미시와 오규원의 날이미지시가 가진 원래의 문맥은 어떤 것일까에 관한 고찰도 만날 수 있다.



3부에서는 서효인, 조인호, 정한아, 이혜미, 이이체, 김안, 유희경, 김승일, 김상혁 등 현재 활발히 활동중인 젊은 시인들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김경주, 조연호, 이민하, 강정의 시를 유물론에 입각해서 읽어본다. 김민정, 홍성희, 여태천, 강기원 시집에 대한 평론도 실렸다.



4부와 5부의 타이틀은 ‘비림(碑林)에서’이다. 중국 시안에 있는 비림에는 당송 시대부터 전해내려오는 비석들이 5백여 개 모여 있다. “비석은 장례의 완성이면서 한편으로는 당대의 서법과 양식을 증언하는 곳이다. 시가 발화의 순간을 보존한다면 비석은 가획(加劃)의 운동성을 보존한다.” 김혜순, 남진우, 황병승의 시 세계를 조망하였다. ‘외롭고 예민한 방외인’들을 만날 수 있는 최승자와 장석주의 시 세계도 담았다. 「죽음과 형식」이라는 주제하에 송재학 시집 『내간체를 얻다』를, 「부사들의 존재론」으로 정끝별의 『와락』을 분석했다. 이 밖에도 문인수, 장석주, 하종오, 진은영, 하재연, 이제니, 박순원, 장만호, 김산의 최근 시집들을 살펴본다. 우리 시의 정점과 새로운 가능성을 두루 살필 수 있다.



6부는 권혁웅 시와 비평에 큰 그늘을 드리운 스승들에 대한 고백이다. “사랑하는 중심에 가까이 갈 수도 없고 중심을 영원히 이탈할 수도 없는 어떤 원환의 자리에서 씌어진”, 한결같은 테마를 한결같은 간절함으로 노래해온 마종기 시인의 시 세계와「천진의 시학」이라 이름붙인 오탁번의 시 세계, 누구보다 언어에 대한 섬세한 분석력을 바탕으로 정교하고 정통하며 여러 차원의 비평을 수행하는 황현산의 비평 세계, ‘정신주의의 완성’ ‘정신주의에 바쳐진 경전’이라 할 만한 최동호의 시집 『불꽃 비단벌레』에 대한 평론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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