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임금
최고임금, 곧 ‘소득 상한선’은
거대한 ‘부의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건드릴까?
‘부의 양극화’ 문제, 정확히 말해 부의 불평등한 분배로 인한 양극화 문제는 현대사회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수많은 정치인과 경제?사회 학자가 그 해결 방안을 모색했지만 그 누구도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세계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회 극빈층의 소득은 이전보다 나아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최상위층의 소득은 그보다 더욱 빠르게 치솟아 이제는 세계 상위 1퍼센트 부자가 전 세계 부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극빈층의 사정이 나아졌으니 상위 1퍼센트의 소득과 재산이 과도하게 많아져도 상관할 필요가 없는 걸까? 수많은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소득이 최상위층에 심하게 집중된 주에서는 인당 탄소 배출량이 더 많았으며 시민들이 환경보호에 소극적이었다. 또한 그런 주에서는 증오 범죄가 훨씬 많이 일어났고, 시민들의 삶 만족감 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비도덕적 행위에 가담하려는 경향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다른 연구에서는 불평등한 국가의 국민이 평등한 국가의 국민보다 비만이 되거나 살해당할 확률, 타인을 불신하거나 10대 딸이 임신할 확률, 약물중독 신세가 되거나 감옥에 갇힐 확률이 2배에서 10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그뿐이 아니다. 불평등이 심한 국가일수록 건강과 관련한 아이들의 사회적 보장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으며, 정치 영역에서는 민주적인 통치 방식이 약화되었다. 한때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했던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가 뜬다”라는 격언은 이제 무색해지고 말았다. 불평등이 용인될 때 세계가 치르는 대가가 혹독한 탓이다.
그렇다면 기존 방식과는 차별화된 부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안은 있는 걸까? 샘 피지개티는 이 책 《최고임금》에서 우리에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첫째는 최하위층의 소득을 상향 평준화하는 것, 둘째는 최상위층의 소득을 하향 평준화하는 것, 셋째는 둘 다 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경제체제의 맨 꼭대기에 앉아 있는 이들은 그동안 첫째 방안을 고집했다고 말한다. 한동안 그 논리가 전 세계를 지배했지만, 그 결과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불평등해졌다. 나머지 모든 사람의 희생으로 부자들이 혜택을 받는 경제가 되어서다. 결국 그 어느 나라도 부의 양극화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주장하는 방안은 셋째 방안, 곧 ‘최고임금’을 도입해 ‘최저임금’과 연동시키자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이론상으로는 모든 노동자가 빈곤을 면하고 약간의 경제적 안정과 존엄을 누릴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을 보장하는 임금이다. 하지만 오늘날 최저임금은 거의 모든 곳에서 그 숭고한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최저임금을 주는 직장에 종사하며 풀타임으로,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지만 여전히 빈곤에 허덕인다. 지은이 샘 피지개티는 이처럼 엄청나게 불평등한 경제체제에 ‘최고임금’을 도입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최고임금을 최저임금과 연동시킨다면 가장 취약한 사회계층을 착취하려는 특권층의 강한 동기가 약화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만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최저임금을 낮고 부적절하게 유지하려는 권력자들의 압박이 끊이지 않겠지만,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이 연동된 사회에서는 극빈층의 소득이 먼저 증가해야만 최고 부유층도 자신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결국 그런 사회에서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증진시킨 뒤에야 개인의 기득권을 누릴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최고임금’은 과연
태평한 정치적 몽상 이상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지은이는 최고임금에 대한 다양한 회의적인 질문에 답한다. 이를테면 ‘최고임금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소득이 과하다는 것의 기준은 어디서부터일까?’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몇 배수로 정할 것인가’ ‘가파른 누진 소득세나 피케티의 글로벌부유세 같은 방안으로는 부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걸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슈퍼리치 없이 경제가 굴러갈까?’ ‘결국 최고임금이라는 개념은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 아닌가?’ ‘기득권층의 만만찮은 정치적 방해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이다.
지은이 샘 피지개티는 ‘최고임금’의 도입은 결코 몽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그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한다. 아울러 정치?경제적으로 이 제도를 실현해나가고 있는 여러 움직임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2010년 제정된 도드?프랭크월가개혁및소비자보호법에 CEO와 직원 간 급여비율을 공개하는 조항을 넣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2014년 로드아일랜드 주에서는 CEO와 직원 간 급여비율 차이가 작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정부 사업 계약 입찰에서 특혜를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스페인의 몬드라곤 같은 기업은 CEO와 직원 간 급여 차이를 6배 이내로 제한함으로써 직원들의 열정과 참여를 끌어올렸다. 이런 도전은 스위스, 이집트, 프랑스, 영국 등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책을 마치며 지은이는 더 공평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갈구하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된 최저임금 투쟁이 몇 세대를 거쳐 왔음에도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는 최고임금, 곧 사회 최저 소득의 배수로 정한 의미 있는 최고 소득에 관한 법 제정을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다양한 전선에서 그 목표를 향해 지혜롭게 성큼성큼 걸어가야 한다. 우리 앞에는 나아갈 길이 있고, 우리는 그 길을 택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