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과학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여행은 정말 가능한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 앞에 쉽게 대답을 내놓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시간은 너무도 익숙해서 잘 알고 있는 듯 착각하게 되지만, 사실 시간이라는 개념만큼 알쏭달쏭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강한 호기심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정말로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우리는 〈터미네이터〉를 보며 시간여행의 짜릿한 긴박감을 느꼈다면, 〈인터스텔라〉를 통해서는 시간여행이 인간 상상력의 소산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최근 천체물리학의 놀라운 발견과 연구를 접하며, 시간여행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결론을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 개념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비롯한 물리학 이론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인류가 생성된 이래, 형이상학, 인식론, 언어철학, 물리철학, 논리학 등 제반 학문에서 시간은 늘 첨예한 쟁점을 이루는 핵심 논제였다. 이 책은 시간을 둘러싸고 이루어져온 인류 지성사의 맥락을 정리, 소개하면서 그 대표적인 주장들의 논지와 허점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해설해간다.
시간이론을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로 구분하여 논증한다
시간이론은 크게 ‘시간이 흐른다’는 3차원주의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4차원주의로 구분된다.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는 최근 영미권을 중심으로 철학과 과학 분야에서 흥미로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론이지만, 정작 국내에는 아직 제대로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과학적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4차원주의를 주장하는 대중 물리학 책은 많이 나와 있고, 4차원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인터스텔라〉 등과 같은 SF영화는 많이 만들어졌지만, 정작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를 제대로 소개하는 책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어설픈 4차원주의자가 되었고, 3차원주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 책의 목적은 철학과 과학의 관점에서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오래된 쟁점으로부터 시간여행에 관한 최근의 쟁점에 이르기까지,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 사이에 벌어진 흥미로운 논쟁을 소개한다. 그리고 근대 시간이론과 3차원주의를 결합하여 새로운 3차원주의를 제시한다.
난해한 시간이론을 쉬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의 4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터미네이터는 1984년으로 갈 수 있는가?
시간여행은 정말로 가능한가? 시간여행은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시간여행은 과거나 미래로 가는 여행인데,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쟁점에 대한 3차원주의자(도위와 다니엘스)와 4차원주의자(그레이와 밀러)의 입장을 살펴본다.
팀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는가?
시간여행자는 이미 벌어진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예컨대 만약에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가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이면, 시간여행자는 태어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 쟁점에 대한 3차원주의자(비벨린)와 4차원주의자(루이스, 브라나스, 사이더)의 입장을 살펴본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과거의 자신을 만날 수 있는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과거로 가서 젊은 시절 자신을 만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엘비스는 날씬하면서 동시에 뚱뚱하다”는 문장을 참이라고 해야 한다. 이 쟁점에 대한 3차원주의자(마코시안, 밀러, 캐롤)와 4차원주의자(사이더)의 입장을 살펴본다.
존 코너는 오로라 공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현재의 행위를 바꾸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특수상대성이론의 상대적 동시성 개념을 받아들이면, 과거/현재/미래는 결정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어떤 행위를 하든 간에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벌어질 일은 어쨌든 벌어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쟁점에 대한 3차원주의자(스타인)와 4차원주의자(퍼트남)의 입장을 살펴본다.
책 속으로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는 최근 영미권을 중심으로 철학과 과학 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고도 흥미로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국내에 아직 본격적으로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과학적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4차원주의를 주장하는 물리학 책은 수없이 나와 있지만,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를 철학과 과학의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조망한 책은 아마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현대 물리학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영화들이 개봉되었다. 특히 2014년에 개봉한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4차원주의의 핵심 이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SF 영화에 열광하면서 알게 모르게 어설픈 4차원주의자가 되었다. 하지만 3차원주의가 어떤 철학적 입장인지,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 사이에 어떤 철학적 논란이 있는지, 하는 점 등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재미있는 철학적?과학적 주제가 유독 국내에서만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16-17쪽)
시간이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형이상학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시간이라는 놈은, 자신의 정체에 대한 조그마한 단서 하나도 그 누구에게 내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에는 질문을 단답식으로 바꾸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은 흐르는가? 이러면 대답하기 한결 쉬워진다. 그에 대한 대답은 둘 중에 하나다. “시간은 흐른다”는 대답과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는 대답. 전자를 3차원주의(Three-Dimensionalism), 후자를 4차원주의(Four-Dimensionalism)라고 한다. (26쪽)
그런데 왜 갑자기 시간여행 이야기지?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엔 사실 재미있는 이유가 있다. 시간여행의 가능성에 대해서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 사이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3차원주의자들은 시간여행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과거와 미래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4차원주의자들은 시간여행이 (적어도) 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미래가 거기에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3차원주의자들은 시간여행이 여러 가지 논리적 모순을 일으킨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4차원주의자들은 지적된 모순이 진짜가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한다. (44-45쪽)
시간여행이란 무엇인가? 시간여행은 간단히 말해서 과거나 미래로 가는 여행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우리는 모두 시간여행자다. 우리는 매일매일 내일로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모두 시간여행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여행에 대한 정의를 달리 내릴 필요가 있다.
시간여행의 정의를 처음으로 내린 사람은 미국의 대표적인 분석철학자 루이스(David Lewis, 1941~2001)다. 그는 시간여행을, 시간여행자의 개별시간과 외부시간이 일치하지 않는 여행으로 정의했다.
개별시간(personal time)이라는 용어 때문에, 그것이 주관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관적인 시간은 감정 상태에 따라 뒤죽박죽 흐른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있는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전역을 며칠 앞둔 말년 병장의 시간은 (거꾸로 매달리지 않아도) 한없이 더디게 흐른다. 여기에서 개별시간은 개별자의 객관적인 시간을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개별시간이 객관적일 수 있는가?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45-46쪽)
시간여행자가 과거를 바꾸려는 이야기는 SF 영화나 소설의 단골 소재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터미네이터는 과거로 가서 미래의 인류 지도자 존 코너의 어머니를 죽이려 한다. 존 코너의 출생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12몽키스〉에서 주인공 콜은 과거로 가서 미래에 인류를 멸망시킨 바이러스 샘플을 구하려 한다. 인류의 멸망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벌어진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그것은 신(God)조차도 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이 점에서는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도 동의했다. 그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면 과거가 뒤죽박죽될 것이기 때문에, 시간여행을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어떤 물리법칙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79-80쪽)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 구체적으로 형성된 이론이다. 그렇다고 해서 20세기 이전에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와 같은 사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알고 보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두 이론으로 분류될 수 있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었다. 그 많은 이론들이 형이상학, 인식론, 언어철학, 물리철학, 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을 가진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는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세계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쟁점을 사이에 두고 논란을 벌였다. 변화와 운동에 대하여, 시간과 공간의 본질에 대하여, 개별자의 존재방식에 대하여, 특수상대성이론의 해석에 대하여 등. 그래서 두 이론이 차지하고 있는 지형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두 이론을 관통하는 중심 사상은 비교적 일관적이기 때문이다. (151쪽)
우리는 지금까지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를 다루면서 철학과 과학 사이에 난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왔다. 이 길을 오는 동안 우리는 시간여행에 관한 여러 쟁점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사의 맥락에서 두 이론을 조망해보기도 했다. 언어의 관점으로도 접근해보았고, 각각의 이론이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지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상대성이론에 대한 해석의 관점으로도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3차원주의와 4차원 주의를 다양한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조망하려 하였다. 나는 3차원 주의와 4차원주의 사이에서 대체로 균형을 잡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4장에서 나는 3차원주의를 변호하는 입장에 섰다. 뉴턴, 라이프니츠, 칸트와 같은 근대 철학자의 시간이론과 3차원주의를 연결한 관계적 3차원주의를 제안하였고, 이를 우주선 사고실험과 쌍둥이 사고실험을 통해서 설명하였다. 물론 시간을 다시 되찾으려는 나의 이러한 시도가 충분한 설득력을 갖춘 것은 아닐 것이다. 논증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상대성이론을 잘못 이해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다고 내가 3차원주의가 옳다고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4차원주의를 받아들여야만 설명이 되는 더 많은 현상이나 사고실험이 있다. 몇몇 사고실험을 근거로 제시하였다고 해서 갑자기 3차원주의가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그 점을 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3차원주의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입장에 선 이유는, 상대성이론과 관련된 몇몇 현상들 때문에 3차원주의가 과소평가를 받고 있고, 믿기 어려운 이론일수록 더 믿는 요즘 사람들의 경향 때문에 4차원주의가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31-3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