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터
젊은 몸을 조종하며 욕망을 채우는 노인과, 자신을 지키려는 청년의 사투가 펼쳐진다
한국 사회의 묵시록적인 조종과 감시를 은유하는 스릴러 걸작
김호연의 네 번째 장편소설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묵시록적인 조종과 감시, 젊음과 노욕이 충돌하는 현실을 은유하며 숨 가쁘게 펼쳐지는 스릴러다. 노인들이 거액의 돈을 지불하면 각자가 원하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선택해 그들의 인생을 조종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회. 이들의 관계는 파우스터와 메피스토 시스템이라는 지하시장에서 거래된다. 누군가를 감시하고 조종하는 것을 즐기는 늙은 권력자의 욕망은 끝까지 활활 타오르고, 이에 맞서는 청년의 저항 또한 필사적으로 펼쳐진다. 인간의 자율의지와 개인의 의미를 깊숙하게 파고들면서, 마지막까지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의 매력을 지닌 소설이다.
“모두가 공모해 당신의 인생과 젊음을 빼먹고 있어요!”
“어서 가서 마운드에 서요. 당신 인생과 당신 자신을 찾으라고요!”
표지를 여는 순간부터 멈출 수 없이 빠져드는 몰입도 100%의 페이지터너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왼손 파이어볼러 박준석은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다. 내년이면 메이저리그 진출이 확실한 그는 오늘도 완벽한 컨트롤로 승리를 챙긴다. 게임도 자신의 인생도 스스로 컨트롤한다고 믿는 준석은, 귀갓길에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의식을 잃는다. 병원에서 눈을 뜨니 준석의 앞에 서 있는 정체불명의 여자 경이 “당신 머릿속에 거머리가 있어요”라는 말을 건넨다. 그녀는 그것이 준석의 시청각 후각 정보를 전달하는 특별한 연결체고, 진짜 흡혈귀는 그것을 통해 준석의 인생을 송두리째 공유하고 조종하는 어떤 노인이라고 말한다. 믿기 힘들어하는 준석에게, 경은 구형 대포폰을 건네며 연결체가 켜지기 전에 연락하라며 사라진다.
태근은 독재정권의 편에서 여러 악법과 행정을 담당했고, 국회의장까지 거친 후 은퇴하여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10년 동안 태근은 한국에 ‘메피스토 코리아’가 설립되는 걸 은밀히 도왔고 초대 회원인 ‘파우스트 체’로 참여해 메피스토의 시스템 하에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메피스토는 특수한 연결체를 젊은이의 뇌에 삽입해 그 젊은이의 삶을 자기 것인 양 만끽하는 시스템으로, 회원이 된 파우스트는 자신이 선택한 젊은이의 미래를 여러 가지 메피스토 시스템을 이용해 조종할 수 있고, 이를 가지고 경쟁하고 베팅할 수 있다. 65세 이상의, 권력을 지닌 노인만이 가입비 100억을 내고 들어오는 이 시스템은 철저한 비밀과 경호 속에 이뤄지는 그들만의 게임인 것이다.
경의 아버지는 지난해 죽은 선진그룹 회장 최형식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유품인 책 한 권에서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고, 아버지의 죽음에 메피스토와 준석의 파우스트가 개입된 사실을 알게 됐다. 놈들을 찾아 복수하기로 한 경은 아버지의 기록이 담긴 그 책에서 알아낸 유일한 파우스터인 준석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 준석은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파우스트를 찾아야 한다. 경 역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준석과 힘을 합쳐야 한다. 두 사람은 이제 메피스토와 파우스트에 맞서 싸우기 위해 고통스런 싸움을 펼쳐나간다. 파우스터 준석은 메피스토와 파우스트로부터 빼앗긴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경은 복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준석에게 당신의 머릿속에 거머리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될 또 다른 파우스터 은민은? 늙은이들의 욕망이 만든 끔찍한 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젊은이들의 자유를 향한 투쟁이 계속된다.
“당신은 이 세계를 어디까지, 어느 지점까지 의심하고 살아왔는가?”
설정부터 반전까지 치밀하게 설계한 야심만만한 스릴러의 탄생
‘파우스터’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김호연 작가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이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 괴테가 죽기 1년 전 82세에 발표한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대신 젊은 육체와 쾌락을 선사받은 늙은 학자 파우스트의 번뇌와 구원을 담은 작품이다. 몇 년 전 카이스트 예술가 레지던시에서 머물던 김호연 작가는 우연히 『파우스트』를 다시 읽으며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캠퍼스 안의 젊음과 순수한 열정 속에서 마주한 『파우스트』는 당시 한국 사회의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묵시록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어느 시대나 세대의 갈등은 있었지만, 21세기는 유독 세대전쟁의 증상을 심하게 앓고 있다. 경제는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힘들며,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철저히 개인을 소외시킨다. 흩어지고 다원화하는 세계에서 기성세대는 더욱 권력의 고삐를 조인다. 지옥에 가서도 자신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젊음을 착취하고 조종한다. 고시원에서 편의점에서 게임 속에서 청춘은 저들이 조종하는 헤게모니의 인형처럼 소비되고 식어간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은 과연 자기의 의지대로 삶을, 세상을 컨트롤하며 살고 있을까?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소비되는 또 다른 인형은 아닐까? 김호연 작가는 전작 『고스트라이터즈』부터 권력의 자장 안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존재감을 잠식당하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작이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되었다면, 이번 작품은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최상위 권력층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도무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적. 심지어 그 적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다. 청춘들은 여전히 주인공 준석처럼 하루하루 야구장의 마운드에 서서 공을 뿌리며 승률을 조금씩 쌓아나갈 뿐이다. 그렇게 공을 던지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해나가는 삶. 아무리 공을 던져도 난공불락의 상대는 계속 뒤에 남아 있겠지만, 그래도 투구를 하는 과정 자체가 삶의 목표이고 이유일 것이다. 설정부터 반전까지 치밀하게 설계한 스릴러의 틀 안에서도 김호연 작가 특유의 휴머니즘은 깊고 진하게 묻어나서 마지막 순간까지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한 번 펼치면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 한국형 페이지터너의 탄생이 한국 소설 독자들에게 큰 만족과 기대를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