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대신 욕망
누구든 삶에서 자격 없는 인간은 없으며,
누구든 당당히 욕망해도 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변호사의 첫 책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2019 개정판
나는 이제야 장애도 욕망도 제대로 주목하는 방법을 배웠다 -요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으로 2018년 주요 언론 매체와 출판인이 뽑은 ‘올해의 저자’로 여러 차례 이름을 올린 김원영 변호사가 20대에 쓴 책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가 《희망 대신 욕망》이란 제목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세상이 ‘잘못’ 태어났다고 취급하는 존재들의 존엄함을 ‘변론’한 김원영은 《희망 대신 욕망》에서 장애를 가진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자유와 연대의 힘을 ‘증언’한다. 개정판에는 서문과 후기를 추가하고 장애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부록 ‘장애 문제 깊이 읽기’ 내용을 보완했다.
수시로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을 안고 태어난 김원영은 방 안에서 할머니가 사다준 아이스크림을 먹고, 마당의 강아지를 바라보며 무료한 오후를 보내고, 누나의 사회과부도에 점을 찍으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검정고시를 보고, 재활학교에 들어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나간 그는 단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입학 원서도 팔지 않았던 일반 고등학교의 높은 장벽을 겨우 넘어 ‘일반’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뒤 노력 끝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장애인 인권운동에 뛰어들고, 로스쿨에 진학한다. 《희망 대신 욕망》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한 유약한 소년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등장하기까지를 다룬 한 편의 성장기다. 하지만 이 책은 ‘인간 승리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오히려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서사를 거부한다.
김원영은 이 책에서 장애인을 ‘미물(微物)’ 취급하는 사회의 동정 어린 시선과 차가운 편견 앞에서 장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쿨한’ 태도를 유지하는 대신, 뛰고 싶다고 말하고,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며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뜨거운 존재가 되자고 말한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2010년,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는 그의 선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많은 지지를 얻었다. 그는 치밀할 정도로 솔직하고 촘촘하게 써내려간 개인적 서사와 풍부한 사례를 통해 ‘장애인은 순수하다’, ‘장애인은 불쌍하다’ 등 장애인 개개인의 개성을 무시하거나, 장애인은 욕망이 없는 존재라고 여겨왔던 편견에 당당하게 마주한다. 2019년, 그의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쿨한 게 아니라 ‘핫한’ 장애인, ‘야한’ 장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몸이 가진 욕망과 내 몸에 부여된 운명, 그 모든 것을 쿨하게 받아칠 줄 아는 유쾌한 인간 또는 고상한 척, 성숙한 척하는 인간이 아니라 좀 구차하고 미성숙하더라도 뛰고 싶다면 뛰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남은 생을 뜨겁게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 -262쪽
몸은 바꿀 수 없지만 사회는 바꿀 수 있다
20대의 김원영이 온몸으로 탐구한 자유와 연대
《희망 대신 욕망》은 김원영을 ‘뜨겁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변화시킨 사람들, 즉 자유를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들을 위한 증언이기도 하다.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던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휠체어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계단과 높은 언덕 앞에서 좌절한다. 당당한 20대의 에너지와 벚꽃이 캠퍼스에 만개한 그곳은 진정 그가 원하던 세상의 중심이었지만, 그가 있을 곳은 없었다. 강의실 이동이 어려워 수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기숙사에서 컵라면조차 사먹을 수 없던 그는 현실의 어려움 따위는 훌쩍 뛰어넘는 ‘슈퍼 장애인’ 되기를 포기하고,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 참여해 장애학생이 학교의 ‘손님’이 아닌 학교의 주인으로서 이동하고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슈퍼 장애인’이 되어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를 비롯한 많은 장애학생들은 생물학적 손상은 결코 ‘극복’할 수 없으며, 장애를 극복한다는 것은 손상된 몸에 부여된 사회적 차별을 극복한다는 의미임을 깨닫는다. 저자는 자신이 ‘그때야 비로소 장애인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다. 지체 1급 장애인으로서 서울대를 졸업하고 보란 듯이 성공하는 것. 삶을 극복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과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동안 타야 할 대중교통이 필요하고, 기적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이 필요하며, 기적을 만들어내는 동안 먹어야 할 컵라면도 필요하다. 결국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는 꿈과 희망보다 당장 앞에 놓인 계단과 턱을 제거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에 뛰쳐나온 그 시점의 중증 장애인들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59
그가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커밍아웃하도록 용기를 준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싶다”고 외치며 선로 위에 스스로 몸을 묶어 전동차를 멈춘, 중증 장애인들이었다. 그들은 2001년 오이도역에서 일어난 장애인 추락 사고를 계기로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며 선로로 내려갔다. ‘대중’ 교통수단인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었던 장애인들의 오랜 욕망이 지하철을 멈춘 것이다. 저자는 당시 폭발적으로 전개된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배경이 된 ‘장애의 사회적 모델’과 그에 관한 여러 사회과학적 연구를 소개한다. 청각장애인 비율이 높아 수화를 일상적 언어로 쓰는 ‘마서즈 비니어드 섬’, 조선시대에는 시각장애인의 사회적 지위나 삶의 질이 훨씬 높았다는 연구 등 흥미로운 사례를 따라 읽으면 “개인이 생물학적 ‘손상’을 입었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장애’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장애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
칸트를 읽는, 구걸하는 장애인
정상 세계와 비정상 세계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갑자기 인파를 헤치고 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내 앞에 선 그는 천천히 주머니를 뒤지더니(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꼬깃꼬깃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를 한 장 꺼냈다. 내 불길한 예감이 서서히 들어맞는 듯싶더니 할아버지는 이내 내 손에 그 지폐를 꼭 쥐어주었다. 내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구겨진 지폐에 그려진 퇴계 선생의 기다란 눈동자가 세상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흉내 내는 것만 같았다. 아마 지금의 나라면 퇴계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이왕이면 만 원짜리로 좀……” 이라며 능청을 떨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지하철에 올랐던 어린 날의 나는 지폐를 받은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며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나는 좌절했다. -32쪽
한 손에는 법전을, 다른 한 손에는 행인이 쥐어주고 간 천 원짜리 지폐를 들고 서 있는 저자는 그 두 세계가 어지러이 뒤섞인 채 살아온 자기 몸의 역사를 돌아보며, 장애인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과 장애인이 실제로 처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서만 살았던 것처럼,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평생을 수용 시설이나 작은 방 안에서 지낸다. 최소한의 교육만 받고, 동료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 이외에는 어떤 의미 있는 인간관계도 맺지 못한 채, 남성이나 여성으로서의 욕구도 무시당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추하고 손상된 외모를 가진 인간은 착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개인적인 욕망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다. 그러한 욕망은 드러나는 순간 “병신 육갑한다”라는 저 오래된 언명 앞에 철퇴를 맞았다. -247쪽
저자는 재활학교에 다니던 시절 자신에게 학비를 후원해주던 ‘저명인사들’ 옆에 어머니와 함께 앉아 말없이 전시되는 경험,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 예배 시간에 희귀병에 걸려 꼼짝도 못 하는 남자가 침대에 누운 채 전시된 경험을 들려준다. 지하철역에서 리프트를 타기 위해서 〈즐거운 나의 집〉을 배경음악으로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민망함, 혜택을 받는 대신 “꽃동네 같은 곳에 가서 봉사활동 좀 하고 오세요. 그럼 내 삶에 대해 진짜 감사하게 된답니다”라며 자신을 영혼 정화의 방편으로 삼는 이들에게 무감각해져야 하는 경험은 어떤가. 그는 정상 세계의 거주민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비정상 세계의 거주민을 통해 자기 존재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그 끔찍한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구경하는 자들, 즉 정상 세계의 거주민들은 끊임없이 전시되는 비정상 시계의 거주민들을 필요로 한다. 꽃동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와야지만 비로소 자신의 ‘정상성’에 안도할 수 있듯이, 정상성은 ‘비정상’을 규정하면서 성립되기 때문이다. -213쪽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모욕은 기본적으로 장애인을 의식주만 해결해주면 되는 존재, 욕망 없는 존재, 깊은 사고나 격렬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치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애인 화장실을 남녀 공용으로 만들고, 첫 생리를 한 장애인 여성에게 “주제에 여자라고”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저자를 비롯해 그가 소개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세우고 다섯 시간 동안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너는 중증 장애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장애인 역시 인간적인 욕망을 가진 존재이며, ‘자아’와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노하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김원영에게는 “괜히 나서지 마, 나서면 더 추해”라고 말하는 대신 “무대에 올라가, 그게 더 섹시해”, “글을 써, 네 이야기를 글로 쓰면 자유로워질 거야”라며 그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준 가족, 동료, 친구가 있었다. 정상 세계와 비정상 세계, 분리된 두 세계 가운데 서 있는 그는 두 세계가 동정과 시혜 또는 부정이 아니라 진지한 연대, 즉 ‘함께 비를 맞는 연대’로 하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소확행’ 시대에 ‘욕망’을 꿈꿔야 하는 이유,
우리는 우리의 꽃을 피우기 위해 욕망을 가져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20대의 김원영은 ‘88만원 세대’이기도 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나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20대의 삶은 무력했고, 그가 대학 생활을 할 때 서울대에서는 2년간 10명이 자살했다. 그는 당시 이 책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 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과감히 드러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야한’ 장애인, ‘뜨거운’ 장애인을 선언하며 같은 나이의 친구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민 20대 청년은 30대 변호사가 되었다. 기초생활수급자 지위에서 벗어났으며, 한 권의 책을 포함해 많은 글을 썼다. 저자는 지난 몇 년간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의 삶에 과거에 비해 훨씬 비중 있게 다뤄지고, 소수자들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연대하는 등 사회가 변하고 있지만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 대립은 2010년보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말한다. 또한 덧없는 욕망보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고, 욕망이든 희망이든 대다수 사람들이 무언가를 꿈꾸기 어려운 사정에 처해 있는 이 시대에 그는 《희망 대신 욕망》이 던진 주장이 여전히 유효한지 스스로 질문한다.
그는 장애인, 노동자, 대학생, 여성, 남성, 청소년, 난민, 성소수자, 노인 등이 각자의 차이를 직시하고, 그에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에 솔직하게 맞서고, 각자의 욕망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연대’가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욕망이란 ‘내가 가장 숨기고 싶고, 피하고 싶었던, 그러나 동시에 그 자체로 공동체 내에서 진심으로 수용되고 포용받기를 원했던 특정한 상황과 조건을 그대로 인정받고, 한 사람의 개인으로 꿈꾸고 사랑하고 일하고 여행하다 죽는 삶에 대한 열망’이다.
이 책은 우리가 ‘욕망’마저 차별해온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욕망’을 갖기를 주저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각자가 가진 욕망을 인정하고, 누구든 당당히 욕망해도 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 사회는 한 발짝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원영 개인의 성장기이자 사회적 연대에 대한 증언이기도 한 이 책이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앞서 다시 주목받아야 할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내가 말하고자 한 바는, “네 주제에 남들 하는 대로 다 하고 살려고 욕심내면 안 된다”라는 말을 직간접적으로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 세속적이고 덧없는 욕망을 품어보는 일이야말로 전복적이고 저항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바로 그 “모든 것을 다 해본 후에 삶이 덧없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고르게 배분되어야 할 귀중한 삶의 기회가 아닌가? -13쪽
추천사
김원영은 장애인에게 눈물 어린 동정을 보내거나 한낱 ‘미물’로 취급하는 사회에 맞서 사춘기와 대학 시절을 ‘슈퍼 장애인’으로 분투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현재 갖게 된 자유가 여러 사람에게 빚지고 있음을 직시한다. 나아가 여전히 자신 속에 내재하는 욕망, 모순, 갈등, 분노를 직시한다. 그리고 ‘착하게 살기’보다는 더욱 솔직히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자유를 얻고 사랑과 연대를 추구하려고 한다. 사회가 규정한 ‘비정상’의 세계에 갇혀 있는 장애인,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가진 비장애인은 물론 장애 여부를 떠나 ‘뜨거운 존재’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원영의 ‘뜨거움’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_2010, 조국(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애라는 것은 한 개인의 개성을 너무 간단하게 장악해버린다. 그걸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통해 본다. 장애인을 만나게 될 때마다 본의 아니게 무례하게 굴까 봐 전전긍긍했고, 그러다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주목하는 것은 늘 놓치는 더한 무례를 범해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우리는 모두 욕망하는 존재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제야 장애도 욕망도 제대로 주목하는 방법을 배웠다. 너무 과분하게 배웠다. 김원영이 이 책을 쓴 20대를 살고 있을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면, 그의 ‘욕망‘에 내가 이 책에서 받은 어마어마한 감동을 다 바치고 싶다. _2019, 요조(뮤지션, 작가, 책방무사 운영자)
본문 발췌
9년의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개인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지위를 벗어났고,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며, 한 권의 책을 포함해 많은 글을 썼고, 연극팀을 창단했다 실패했고, 새로운 우정과 사랑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 책을 낼 당시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 즉 장애를 부끄러워하기보다 내 일부로 받아들이고, 장애를 가진 내 몸으로 움츠리지 않고 당당하게, 아름다운 존재로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은 미완으로 남아 있다. -6쪽
사실 욕망은 덧없는 것이다. 우리는 큰 욕망을 가질수록 더 많은 고통과 좌절이 따라온다는 점을 역사 속 현자들의 조언을 통해 알며, 법륜이나 혜민 스님의 직설로 듣고, 부모님들의 경험담에서 배운다. 전쟁과 가난으로 짓밟힌 나라에서 우주개발을 꿈꾸거나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마을에서 아이 둘과 큰개를 기르며 무병장수할 희망을 품는다면 이는 더 큰 좌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흙수저’인 당신이 청담동 주택에서 아름다운 파트너와 함께 삼성역으로 출근하는 꿈(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꿈)을 꾸어도, 그 가능성이 실현될 여지는 매우적다. 무엇보다 어떤 욕망이 타인의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것인지를 알기도 어렵다. 반면 희망은 우리를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더 고상한 꿈을 말하는 것 같다. 사회도 희망의 이름으로 거론되는 꿈을 쉽게 승인한다. 10~11쪽
나의 몸, 우리의 몸, 가난과 질병과 추함에 빠져들까 불안해하는 몸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는가? 나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이 질문에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내가 분명히 알게 된 것 한 가지는 장애인은 장애를 결코 극복할 수 없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 이미 장애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 나에게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나는 모순된 존재가 될 것이다. 장애를 극복했다면서 왜 나는 여전히 장애인인가. -19쪽
극복만이 우리가 그런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리의 조건들을 세상의 중심에 오게 하는 도전과 연대, 상상력에 우리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대다수는 아무런 도움 없이 장애와 가난을 극복하고 철저한 자기 관리와 다이어트로 미인의 대열에 끼어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며, 사실 그럴 이유도 없다. -19~20쪽
열두 살 무렵 사춘기가 찾아왔다. 목소리는 굵어지고, 랫도리는 거뭇거뭇해졌다. 오랜 병원 생활 덕분에 골절횟수는 줄었지만 나의 현실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방문을 열고 학교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마당의개들이 봄볕에 조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할머니가 사다 주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춘기의 소중한 열정을 소비하고 있었다. -45쪽
내가 앉은 책상에는 아이들의 낙서가 가득했다. 누구랑 누구랑 사귄다더라, 연예인 아무개가 제일 멋지다 따위의 글이 혼란스럽게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내용을 찬찬히 읽었다. 정돈되지 않고 정신없는 세계, 그렇지만 무엇인가 다양한 자극으로 가득한 세계, 아이들의 상상력과 욕망, 질투, 자유와 억압이 뒤얽힌 세계. 그것이 바로 병원과 고향 마을을 제외한 ‘진짜’ 거대한 세계와 나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49쪽
내가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딛게 된 이 순간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해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 의미를 왜곡시킬 생각은 없다. 만약 어떤 중학생이 자기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가는 데 이처럼 많은 사람의 도움과 남들보다 우수한 성적이 필요하다면, 그 자체가 교육을 기본권으로 규정한 대한민국에서 우스운 일이지 않은가. 어떤 중학생도 ‘후원회’의 도움을 받고, 교장선생님과 ‘협상’ 아닌 ‘협상’을 하며, 남들보다 우수한 성적까지 받으면서 입학하지 못할까 걱정하지는 않는다. 15등이 아니라 150등이라도 입학 기준을 충족했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입학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115~116쪽
어떻게 해야 우리가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주연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등장’은 하고 싶다. 이른바 ‘슈퍼 장애인’이 되는 것.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슈퍼장애인은 우선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들에 도전하고, 쾌활하고 과감한 성격으로 여러 장벽을 돌파해낸다. 언제나자신감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채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내가 잘생겨서 쳐다본다”라고 할 만한 능청스러움도 있다. 공부는 당연히 잘해야 하고 운동 능력에 연애 능력까지 갖추어야한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용기를 내는 ‘깡’은 기본이다. -121~122쪽
명륜이와 나는 많은 일을 함께했다.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와 라면을 사먹고, 수백 미터나 되는 긴 언덕길을 걸어올랐다. 남들 눈에는 명륜이가 나를 일방적으로 돕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놀랍게도 명륜이의 어머니는 내게 가끔씩 전화를 걸어 명륜이와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고 했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둔 아이의 부모는 보통 자기 아이가 친구를 돕다가 오히려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그 친구와 함께 다니다가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법이다. 그러나 명륜이의 어머니는 오히려 내가 명륜이에게 좋은 형이 되어주고 있다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129쪽
그렇다. 나는 장애인이 맞다. 그러나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장애인 중 50퍼센트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었다. 나의 자부심과 나의 꿈 앞에서 또다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추락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장애와 아무런 관련 없이 살 수 없을까. 그냥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내가 장애인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의 능력, 직업, 학식, 유머, 경쾌함 같은 것을 갖출 수는 없을까. -143쪽
그밖에도 현대 사회에 이르러 장애인의 권리가 향상되었을 거라는 통념과 달리 몇몇 장애의 경우는 오히려 조선시대에 사회적 지위나 삶의 질이 훨씬 높았다는 연구들도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은 당시 중인 이상의 신분이었으며, 약사나 점복 등의 직업을 갖고 적극적으로 공동체에 참여했다. 장애인인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올리버는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로 접어들면서 공장 노동이 일반화되는 가운데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공동체로부터 소외되었는지를 밝히기도 했다. -157쪽
학교의 시설 몇 가지를 바꾼 건 우리가 얻은 것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서울대에 들어왔다는 사실 그 자체, 그리고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장애를 극복했다""라며 보내는 찬사에 취해 있던 장애 학생들이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연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극복할 수 있기나 한 것인가. - 161쪽
나는 지금도 걷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건강을 얻기 위한 투병의 역사에서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투병의 성공이나 실패는 내가 장애를 극복하거나 내 몸에서 골형성부전증의 병인을 제거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 상태로 안정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성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므로 생물학적인 질병 치료와 몸의 치유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나는 치료되지 못했지만, 치유되었다. -171쪽
나는 직립보행에 에로틱한 매력을 느낀다. 어깨의 움직임 그리고 팔과 다리의 교차. 나는 휠체어를 1.8초당 한 번씩 미는 것이 가장 섹시하다고 주장하고는 하지만 사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170센티미터가 넘는 세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데이트,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손에는 책을 들고 거니는 캠퍼스. 나는 어느 순간 걷고 싶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의 팀장이었다. 장애는 하나의 정체성이며, 손상된 몸은 곧 우리 자신이 정체성이라고 말해야만 했다. 그런 내가 “사실 난 걷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는 것은 구차하고 비굴한 고백처럼 느껴졌다. -227쪽
나는 누군가에게 들려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도 ‘쿨함’은 필수다. 나를 돕는 사람들에게 불쾌함을 표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계단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을 때에도 쿨하게 한마디 던지는 건 필수다.
“야, 이거 완전 왕이 된 기분인데?” -234쪽
나쁜 몸은 자신에게 찍힌 낙인이나 자신이 받아온 차별이 사실은 ‘사회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세계는 변화했다. 천사이기를 거부하고 ‘자유’를 택한 루시퍼처럼 나쁜 몸, 특히 그 대표적 존재인 장애인이 이제 정치적인 주체가 되었다. -248쪽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하늘이 준 불운과 사회가 만든 불운을 구분한다. 하늘이 준 불운에는 지진이나 태풍, 현대 의학 기술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질병 등이 해당된다. 반면 사회가 만든 불운에는 사회경제적 구조나 정책으로 인한 불평등,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해 피해가 더 심각해진 재해, 완치가 가능한 질병인데도 의료비가 없어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 그런데 ‘하늘이 준 불운’과 ‘사회가 만든 불운’의 기준 자체가 모호한 영역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장애인의 몸’이다. -255쪽
장애인 운동은 실제 ‘하늘이 준 불운’의 영역에 속하던 많은 것들을 ‘사회적 불운’으로 이동시켰고, 그 과정은 성공적이었다. 사회적 불운으로 이동한 우리의 문제들은 이제 해결 가능한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도 결코 사회적 불운의 영역으로 이동하지 못할 것 같은, 즉 영영 ‘하늘이 준 불운’으로만 여겨질 듯한 몸의 상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중증의 질병을 가진 몸, 손상의 정도가 너무 심해 사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결국 죽음을 대비해야 하거나 그저 생존 자체에만 의미를 두어야 하는 몸이다. 또 사회적 노력을 아무리 해도 도저히 어찌하지 못하는 욕망과 고통을 품은 몸도 이에 해당한다. 걷지 못하는 나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는 있겠지만, 뛰고 싶은 내 욕망까지 실현할 수는 없다. -256쪽
그러나 이런 나에게도, 잘난 척은 다 하면서도 결국은 내 안으로 도피하기만 했던 나에게도 누군가는 “사랑해, 사랑하는 게 더 멋있어”라고 말해주었고, “무대에 올라가, 그게 더 섹시해”라고 말했으며, “글을 써. 네 이야기를 글로 쓰면 자유로워질 거야”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주었다. -305쪽
내 삶은 이 자유를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들 가운데서 완전히 변화했으며 내 자유가, 내 몸이, 내 사랑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자유와 연대의 힘을 증언하기 위해 썼다. 실천의 주체가 되기에 나는 아직 경험이 일천하고 능력도 용기도 부족하다. 그러나 앞으로 내게 다시 무엇인가를 쓸 기회가 온다면 나는 증언을 넘어 변론을 하고자 한다. 그 변론이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나의 몸, 당신의 몸, 내 친구들의 몸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몸이 가진 자유가 될 것이다. -3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