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지 않을 권리
“우리는 누군가의 애인이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다음 카카오 브런치 100만 조회 수 화제작, ‘사랑 세뇌’ 전격 출간!
여성에게 연애를 강요하는 가정, 사회, 문화적 문제를 파헤치고 스스로의 행복을 선택하도록 권하는 에세이다. 카카오 브런치에서 100만 조회 수 이상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연재 글 ‘사랑 세뇌’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여자는 결혼 전 가장의 보호가 필요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 좋은 남자를 만나려면 외모와 마음을 아름답게 가꿔야 한다.” 한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이 흔한 문장에 사실 복잡한 메커니즘이 숨어있다. 바로 매스미디어와 뷰티 산업(쇼 비즈니스), 그리고 가부장제이다. 이 책은 여성들이 사회가 만든 짜여진 틀 안에서 사랑에 세뇌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또한 여성이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주체적으로 바꿀 것을 권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저자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가 남성 중심 사회를 이어왔기 때문에 여성들이 연애와 결혼을 해도 공허하고, 인생을 바꾸려 노력해도 우울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는다. 여성도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 권리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혼자서도 완전한 삶, 솔로여도 행복한 인생을 선택해야 한다. 각계각층에서 짜놓은 각본대로, 여성 개인의 행복을 무시하고 사랑을 만병통치약이라 주입해온 실체를 통해 삶을 바꾸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애인으로만 살기에는 우리의 꿈과 욕망이 너무 버라이어티하지 않은가?”
가부장제, 매스미디어와 뷰티 시장 비즈니스가 낳은 여성성에서 벗어나기
어린 시절부터 공주 동화 시리즈 및 마법소녀물을 학습하며 자란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TV 드라마, 영화 등 각종 매체 속 신데렐라 스토리를 답습한다. 대중문화와 미디어는 쉴 새 없이 여성의 행복과 불행의 경계는 연애 아니면 결혼에 있다고 말하고, 이것은 여성들에게 자연스럽게 세뇌된다.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는 가부장제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요소다. 과거에는 여성이 사회에서 보호받고 물질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남성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신붓감을 고를 수 있었다. 바로 남자 의견에 순종적이면서 자신을 대신해 부모님께 효도하고, 독박 육아에도 남성을 더 걱정하며, 외모도 빼어나 자신의 기를 세워줄 수 있는 여성이다.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쇼 비즈니스 사업 또한 여성을 틀에 가두는 예로 빠질 수 없다. 화장품 등 뷰티 산업이나 성형외과 광고가 대표적이다. 외모가 빼어난 여성을 모델로 내세워 ‘너도 조금만 투자하면 나처럼 될 수 있어’라며 여성들을 향해 주문을 외운다. 가꿀수록 아름다워져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수 있다고 헛된 희망을 주입하는 것이다.
일터에서도 여성들은 억압받는다. 여전히 대기업의 여성 임원 수는 남성의 비해 현저히 낮아 유리천장을 뚫기 어렵다. 또한 여자 사원은 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싹싹하고 다정하며 조신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 또한 “이토록 힘든 현실에서 좋은 남자야말로 회사를 그만두고 물질적으로 편하게 해줄 삶의 구원”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지금이라도 ‘남자 주인공’ 없이는 완성될 수 없도록 세팅되어 있는 여성들의 삶의 각본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의 허락과 동의, 감정적 지지 없이도 여성은 완전한 존재다.”
외모와 내면을 매일 채점당하는 현대사회에서 주체적인 삶을 위한 선택
저자는 친구들의 연애 고민을 잘 들어주는 프로 연애상담러였다. 이별 후, 엄연히 남자 쪽에서 잘못해 끝난 관계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박탈감에 빠지는 여성을 수없이 목격했다. 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책과 희생정신이 아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연애로부터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 여성들에게 애초에 자신에게 불리하게 짜여진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남 탓’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 카카오 브런치에 프로불편러의 시각을 연재해 100만 독자들의 지지를 얻은 것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직 모르거나 이미 알고 있음에도 앓고 있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시대가 요구하는 젠더적 구속을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To do list와 Not to do list를 만드는 것부터 실천하길 권한다. 우선 ‘나’를 살리기 위해 ‘(연애에 세뇌당한) 과거의 나’를 죽이는 일이 먼저다. 정상 체중임에도 마른 체형을 선호하는 한국 사회에서 ‘숫자 강박에서 벗어날 것’,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스러움, 젊고 예쁨으로 가득한 ‘SNS를 멀리할 것’과 같은 사소한 일상에서 출발한다. 남들의 평가와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 스스로를 우울과 공허 속에 가두는 일임을 인지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애인, 가족이라는 울타리 없이 혼자서 소확행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한다면 주체적 삶의 첫 걸음을 뗀 것이다.
물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여성에게만 강요하고 있는 미적 기준, 조신하고 착한 여성성을 그동안 강요받고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당신이 공허한 이유는 남자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대가 짜놓은 각본 속 마리오네트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생활 속에서 조금씩 스스로 바꾸어나가는 용기야말로 여성에게 코르셋 씌우는 사회의 삐라를 고이 접어 날려버리는 지름길이다. 이 책은 사랑해도 공허하지만 막상 혼자가 두려운 여성들에게 나침반을 든 조력자가 되어 줄 것이다.
* 책 속에서 *
연애 사업이 잘 진행되고 결혼에 골인하여 NO 처녀가 되지 않는 한 그녀의 인생은 해피엔딩일 수 없다. 고군분투 서사만 ‘네버엔딩’으로 이어질 뿐이다.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대중 매체에서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은 가정에 실패한 악마, 감정 노동을 못하는 사이코 패스처럼 그려질 뿐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그리고 「101마리 달마시안」의 크루엘라를 떠올려 보시라. 자신이 일하는 영역에서 나름 선방한 여성들은 한결같이 외로움에 치여 히스테릭해진 인물로 묘사된다. 남의 인생과 가정을 풍비박산 내고 싶어 온갖 심술이란 심술은 다 부리는 인물로 등장하지 않던가? (p. 35 제일 궁금한 연애 안부)
엄청난 비약처럼 들릴지도 모르는 얘기지만, 이 3S 사업 중 한 기둥을 차지하는 스크린에 걸렸던 영화들도 거의 사랑얘기가 아니었던가. 그들에게 사랑은 고결한 이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모르핀 주사 같은 통치도구?올더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소마라는 이름의 마약 같은 존재?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사랑에 빠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온 우주가 약속이나 한 듯 ‘자, 지금부터 아름다운 세상, 큐!’라고 외쳐가 아니라, ‘내가 사랑에 빠졌으니 이제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겠지’라는 알고리즘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덕분이다. 로맨스 모르핀은 여러 가지 매스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사랑 만물설’의 슈퍼 긍정 회로를 돌리도록 전파되어왔기 때문이다. (p. 41 멜랑꼴리한 인생에 멜로라는 특별함)
자기들 멋대로 정한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30대뿐만이 아니라, 20대임에도 본인 커리어 개발에 힘쓰느라 연애할 여유가 없는 이들 역시 열심히 두들겨 패기 바쁘다. ‘한창 좋을 나이에 연애 안 하면 나중에 괜찮은 놈, 좋은 놈 다 채가서 아무도 없다’라며 홈쇼핑 간판 호스트처럼 매진 임박을 외치는 것이 그들의 주 레퍼토리이다. 그들에게 ‘도대체 좋은 놈, 괜찮은 놈의 기준’은 무엇일까? 막상 객관적인 기준에서 괜찮아 보이는 상대가 있다 한들 세계관, 가정환경, 성격, 취향 등 교제 전 고려해야 할 세부 사항이 무궁무진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들었다가는 제대로 된 토론은커녕 ‘네가 그래서 연애를 못하는 거’라고 따귀 맞고 쫓겨날지도 모른다. 참나, 연애가 무슨 고스톱이냐고. 대충 짝 맞다 싶으면 GO 하고 보게. (p. 53 멜랑꼴리한 인생에 멜로라는 특별함)
다이어트를 하고, 피부과에 다니고, 저렴이 로드 숍 화장품부터 고가의 백화점 코스메틱 상품들을 사 모으고, 뷰튜버의 스트리밍을 보며 ‘헬스장 메이크업’이나 ‘남자친구가 갑자기 집 앞에 왔을 때 유용한 쌩얼 메이크업’등 TPO에 맞는 화장법을 공부한다. (중략) 이뿐인가? 각종 시술과 수술은 기본 옵션이다. 남녀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 격차가 30.7%로 OECD 국가 중 가장 큰 나라이다. 남자보다 적은 임금으로 돈?에너지?시간을 ‘뼈를 깎는 고통’에 쏟아 붓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p. 135 여성들의 공포로 등치를 키우는 어둑시니)
가부장이 ‘윤허하는 여성’의 바운더리 안에 바득바득 머리를 들이미는데 주체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은 어째서인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왜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은 가부장이 하사한 ‘허용 가능’이라는 인증마크를 수동적으로 받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퍼포먼스를 발휘하여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영역에서 스스로 성취하는 지위나 명예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그들이 주체적으로 행동하여 얻은 것이 적극적 주체도 아닌 고작 수동적 객체의 입장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하다. (p. 205 진짜 로맨스, 브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