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좁은 방에 혼자 있으면 내 뇌 속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교토의 천재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첫 에세이
“읽다 졸리면 그냥 주무세요”
자기 전에 엿보는 모리미 도미히코 판타지 월드의 시작
자기 전엔 어떤 책을 읽는 게 좋을까? 너무 어려워서 읽다 보면 하품이 절로 나와 금방 잠들 수 있는 책? 아니면 너무 흥미진진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동이 터오는 책? 그 어떤 책도 침대맡에 두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재미와 수면, 하나만 선택하기에 우리의 밤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재미와 수면 모두를 잡는 책,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책,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망상을 늘어놓으면서도 어느새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보게끔 만드는 책. 그런 책을, 기상천외한 세계를 만들어 온 모리미 도미히코가 선사한다. 읽다 졸리면 그냥 자라는 겸허한 권유와 함께. 짧고, 웃기고, 엉뚱하면서도 한편으론 묵직해 잠시 멈칫하게 만드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글은 이 책과 함께하는 밤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머리맡에 이 책을 두고 저자를 만난다면, 잠에 들기까지 시간을 가득 채워 알차게 보낼 수 있다. 그렇게 잠들어 꾸는 꿈에선 흑발을 찰랑이는 소녀를 만날 수도, 말하는 너구리를 볼 수도, 집 앞 마당을 쏘다니는 펭귄을 마주할 수도 있다.
일상의 모든 조각은 소설이 된다!
모리미 도미히코가 선사하는 마법 같은 세계의 뒷이야기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법 같은 세계로 많은 이들을 황홀하게 했던 ‘교토의 천재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가 첫 번째 에세이로 독자들을 만난다. 많은 사랑을 받아온 저자의 작품이 시작된 일상의 조각들과 함께 영화, 책, 음식, 여행 이야기 등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와 일기까지 모두 담았다. 그중엔 우리에게 익숙한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카레, 수수경단, 몰스킨 노트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평범한 풍경과 일상적인 물건이 모리미 도미히코의 시선을 통해 흥미롭고 낯선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카레 하나를 먹어도 힘차게 가지를 뻗어내는 상상의 힘. 모리미 도미히코만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을 들여다보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설 속에서 거짓말을 계속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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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이런 인간이 돼버린 걸까? 혹시나 유년기에 겪은 시련이 지금에 와서 진가를 보이는 걸까? 그 뜨겁던 여름 날,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중에 책가방에 들어 있던 요구르트가 폭발한 그 무서운 사건이 내 성격을 뒤틀리게 하고, 거짓말만 하는 놈으로 만들어버린 게 분명하다. 어찌 이리 애처로울 수가!
그러나 이렇게 짧은 문장 안에서 또 거짓말을 한 데에 머리 숙여 사과를 드리고 싶다. 또 이런 진정성 없는 사과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를 드리고 싶다.
(p.114, 사과하고 싶다)
작가란, 전 세계를 여행한 사람이 아니라
머릿속 세계를 구현해내는 사람일지도
‘모리미 도미히코인데, 어련하겠어!’ 저자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공감할 평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콘셉트와 아이디어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꾸준히 자신만의 독보적 세계를 펼쳐, 독자들의 단단한 신뢰를 확보했다. 동시에 ‘이 사람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기에 이런 생각을 하나’, ‘이 사람은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 또한 달고 다닌다. 저자가 어떤 부분에서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구체화하는지 알기 어려워서다. 『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에서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다다미 넉장반짜리 좁은 방에 앉아 있노라면 뇌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고 저자는 말했다. 어디에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든 볼 수 있었던 저자는 소설 안에서만큼은 한없이 자유롭다.
‘교토의 천재 소설가’ 의 집필 과정을 엿보는 것도 또 하나의 묘미다. 저자 모리미 도미히코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털어놓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터무니없는 망상이 어떻게 작품의 콘셉트가 되고 스토리가 되는지 세세하게 설명한다. 허황된 망상이 소설이 되기까지 소설가의 분투를 엿볼 수 있다.
언제나 한 발 물러서서, 함께 놓인 적 없는 것들을 모아보고 엮어보는 참신한 고민을 반복하는 저자는 딱 ‘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다시 말해 ‘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정도로 떨어져 엉뚱한 생각을 펼치고, 또 그 생각을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가져다줄 궁리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망상을 독자에게 전달하려 안간힘을 쓰는 과정을 엿보면, 저자의 설명하기 힘든 인간적 매력에 어느새 폭 빠질 것이다. 이 과정을 즐기는 저자의 모습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놀 때도 진지하게 놀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진지하게’란 거추장스러운 단어를 입에 올리자마자 놀이는 곧 사라져버린다. 참 재밌지 않은가? 일부러 진지하게 노는 게 아니라, 놀다 보니 진지해지는 것뿐이다.
(p.310, 이상한 시스템을 즐기는 사람들)
◎ 책 속에서
독이 되는 것도, 약이 되는 것도 아닌 책. 중간부터 읽어도 되며, 읽고 싶은 부분만 읽어도 되는 책. 긴 것, 짧은 것, 농후한 것, 얄팍한 것, 능청스러운 것, 나름대로 성실함을 갖춘 것 등 다양한 글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 몽롱한 분위기가 태평양에 떠 있는 이름 모를 섬의 모래사장에 왔다가 물러가길 반복하는 파도처럼, 책을 읽는 독자들을 평안한 꿈의 나라로 유혹할 것이다. 당신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p.5, 프롤로그)
그리고 나는 소설 속에서 거짓말을 계속 해댄다.
나는 어쩌다 이런 인간이 돼버린 걸까? 혹시나 유년기에 겪은 시련이 지금에 와서 진가를 보이는 걸까? 그 뜨겁던 여름 날,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중에 책가방에 들어 있던 요구르트가 폭발한 그 무서운 사건이 내 성격을 뒤틀리게 하고, 거짓말만 하는 놈으로 만들어버린 게 분명하다. 어찌 이리 애처로울 수가! 그러나 이렇게 짧은 문장 안에서 또 거짓말을 한 데에 머리 숙여 사과를 드리고 싶다. 또 이런 진정성 없는 사과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를 드리고 싶다.
(p.114, 사과하고 싶다)
소설을 쓸 때,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방침은 ‘어쨌든 쓴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인데, 이것 말고 여러분께 보일 다른 방법이 없다. 세상에는 마감이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반사적으로 쓰게 된다. 물론 아무 바탕도 없이 ‘어쨌든 쓰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일정한 부분은 메모에 의존한다. 떠오른 조각들을 대충 적어서 팔짱을 끼고 노려보다가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한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 비슷하다.
(p.116, 어쨌든 쓴다)
소설이건 연재건 끝이 난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독자분들께서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소설이었는데, 그래도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매일매일 재미있었던 것 같아’ 하시며 검은 망토의 폼포코 가면을 떠올려주신다면,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p.131, 폼포코 가면에게 쫓기는 나)
생각해보면 ‘여행’은 비일상으로 떠나는 일이다. 그리고 ‘밤’은 일상과 비일상이 혼탁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여행지에서 보내는 밤’에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자칫 비일상 속에 기묘한 모습으로 일상이 나타나지는 않을지? 여행지에서 보내는 밤, 평소에는 감추고 있던 또 다른 자신이 현실 속의 자신을 앞질러간다면?
(p.149, 여행지에 숨어드는 일상)
기차에서 탈선은 금기사항이지만, 여행의 묘미는 탈선에 있다. 오히려 계획과 탈선의 사이에 나타나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것이야말로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을 쓸 때도, 기차를 탈 때도. 그러니 사전에 예정한 대로 따라간다면 결코 여행의 묘미를 맛볼 수가 없다.
(p.212, 여행의 묘미는 탈선)
“저는 가지거든요.”
평소엔 몸 둘 바를 몰랐던 당황스러운 장소를 어슬렁대며 편하게 이야기하고, 편하게 춤추고, 편하게 서서 보냈다. 그러니 낯을 가려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가지가 되어보라. 잘 풀리면, 가지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장애물을 간단히 뛰어넘어 마음에 담아둔 사람에게 말을 걸 기회까지 얻을지도 모른다. 만일 가지가 된 이유로 연애에 성공한다면 만만세다. 남은 문제는 상대가 반한 게 가지인지, 당신인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던가.
(p.268, 가지가 준 깨달음)
호기심과 공포, 이것은 내가 소설 집필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연료다.
터널 저편에 보이는 숲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새벽에는 그 터널 저편이 저승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마저 감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언젠가 나는 이 터널에서 시작되는 소설을 쓰게 될 것 같다.
(p. 347, 제3화 이야기의 배경에 대하여)
퇴근길에는 문방구를 돌며 미친 듯이 문구류를 사 모았다. 전에 산 것이 아직 남아 있는데도 다음 것을 또 샀다. 볼펜, 다이어리, 정보카드에도 집착했다. 마지막에는 그냥 하얀 종이 묶음만 봐도 가슴이 설렜을 정도다. 왜 그렇게 깊이 빠져 있었느냐면, 새 문구를 쓰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p.354, 제6화 문방구에 대하여)
‘첫날은 어디어디에 가서 명소 A와 명소 B를 보고, 다음 날에는 다른 도시로 이동해 명소 C를……’ 하고 일정을 짜서 여행을 떠나지만, 실제로 여행을 다녀와서 기억에 남는 것은 예정대로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예를 들어 폭설로 기차가 멈춰 섰다거나, 동행한 친구가 열이 나서 하루 종일 숙소에 있었다거나, 현지에서 친구와 다투고 헤어졌다거나 하는 일들. 계획을 벗어난 평범하지 않은 일이야말로 여행을 여행답게 해준다. 그런 귀찮고 짜증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은 여행은 감히 여행이라 부를 수도 없다.
(p.360, 제8화 여행에 대하여)
나는 초고를 반복해서 읽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반복한다. 무수한 문제점이 보인다. 스토리가 부자연스럽고, 문장도 엉망이다.
“대체 누가 썼습니까? 책임자 나오라고 해!” 안타깝게도 그 책임자가 바로 나다.
(p. 374, 제12화 고쳐 쓰기에 대하여)
모험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모험에 대한 글을 쓰고, 귀신이 보이지 않아서 괴담을 쓰며, 하늘을 날지 못하니 소설을 통해 하늘을 날아본다. 모두 마찬가지다.
(p.386, 제16화 아름다운 술에 대하여)
책상 앞에 앉아 끼적이고 있는 동안, 지하에 숨어 있던 바위의 모습이 시나브로 그 형태를 드러낸다. 그렇게 조금씩 파헤쳐서 모습을 드러내는 바위는 평소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세계‘다.
(p.398, 제20화 료안지의 석정에 대하여)
낭떠러지 끝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슬아슬 계산해서 계획한 대로 걸어가야 하지만, 낭떠러지에 도착하면 이제 계산을 포기하고 몸을 던져야 한다.
(p.406, 제23화 계획적 무계획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