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책을 읽다
전국시대 책사들의 말과 지략에서 현대의 난세를 살아갈 지혜를 얻다
『전국책』은 중국 한나라의 학자 유향이 황실 서고에서 발견한 여러 권의 책을 나라별로 묶고 연대순으로 정리해 엮어 낸 책이다. 기원전 403년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이어졌던 전국시대에 종횡가 책사들이 제후에게 논한 책략이 기록되어 있다. 전국시대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이에게 정치적 기회가 주어진 시기고, 이 시기에는 언어와 표현 방식이 놀랄 만큼 변화하고 발전했다. 당시 군주들은 한 순간에 나라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며 고도의 긴장 속에서, 국경을 넘나들며 부국강병의 계책을 설파하던 책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로 인해 지식인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시사를 논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광범위하고 활기 넘치는 언론 시장이 형성되었고, 격렬한 언론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국정 운영에 관한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누구나 군주를 만날 기회는 얻었지만 군주에게 또렷한 인상을 남길 기회는 경쟁 속에서 희귀해져 버렸다. 그래서 말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가 의견 자체와 마찬가지로 중요해졌고 심지어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가 되기도 했다.
2천 년도 더 전이지만 전국시대의 이런 모습은 어느 면에서 지금 우리 사회와 유사하다. 정세도 수시로 바뀌고 언론도 격렬하게 경쟁하며 저마다의 관점으로 정치를 이야기한다. 여전히 과거 위정자들과 유사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지만 남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새로운 정치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능력보다는 대중에게 보이는 태도와 언변으로 권력을 얻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전국책』이 기록하는 2천 년 전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현재의 모습을 발견하고 눈앞의 위기를 헤쳐나갈 지략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책략과 언변으로 위기를 피하고 출세의 기회도 잡으면서 학문의 중흥기를 이룬 종횡가 책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난세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고전의 관점에서 고전 읽기
타이완 인문학자 양자오 선생이 그토록 고전 읽기에 천착해 온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고전은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이치를 가지고 있어 2천 년이 흐른 지금의 시공간과도 여전히 관련 있는 지혜를 품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고전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선생은 줄곧 주장해 왔습니다. 고전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를 그 시대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선생은 현재의 시각으로 고전을 분석해 지금 필요한 맞춤형 지혜만을 ‘착취’하는 것을 지양합니다. 반대로 지금과는 상이한 고전의 시각에 순수하게 몰입해 그 안에 깃든 ‘고귀한 인격’을 발견함으로써 지금 나의 가치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성찰하고 새로이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전국책』은 전국시대의 전모를 보여 주거나 과거의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닙니다. 『사기』처럼 역사의 이해를 돕는 ‘사서’가 아니라 종횡가 책사들이 주인공인 ‘자서’이지요. 이에 양자오 선생은 독자가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텍스트를 읽어 나갈 수 있게 돕습니다. 책에 쓰인 단어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된 말인지 설명하고, 사건들이 일어난 때의 상황을 세세하게 풀어 책사들이 당시에 왜 그런 책략을 낼 수밖에 없었는지 해석합니다. 각각의 이야기가 왜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고, 어째서 『전국책』 내 해당 위치에 소개되었는지까지 거론하며 우리가 전국책에 수록된 각각의 사건을 그 시기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게 이끕니다.
역사상 가장 길고 혼란스러웠던 난세에 기재와 언변으로 국경과 계급을 초월한 권세를 누렸던 종횡가 책사들의 이야기 『전국책』을 양자오 선생의 탁월한 해설로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흐릿했던 시야가 또렷하게 보이는 독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