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흘러가는 거야
-8년 만에 낸 세 번째 박규현 소설집-
소설집 ‘우리는 이렇게 흘러가는 거야’는 박규현 소설가가 10여 년 동안 갈고 닦아서 내는 신작 소설집으로 중편 1편과 단편 1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이렇게 흘러가는 거야’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삶의 다양한 편린들을 포착하여 형상화한 흔적이 뚜렷하다. ‘멍’ ‘삼촌의 선물’ ‘고모의 저녁’에서는 흘러간 역사의 아픔을 그렸고, ‘밤의 끈’ ‘오블라디 오블라다’ ‘꿈의 나라’에서는 사랑과 배신 그리고 삶의 끈끈한 정서를 형상화했다. 그런가 하면 ‘꿈의 회로’와 ‘돛단배’에서는 인간의 절대 고독과 방황을, ‘세렌게티 국립공원’ ‘진테제를 위하여’ ‘길 잃은 양’에서는 삶과 생명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쏟아져 나오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양질의 책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과작 작가들 윤동주, 카프카, 김소월, 기형도, 랭보, 보르헤스 등이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렸고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작품세계를 구축했음을 감안할 때 박규현 소설가의 이번 작품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재 작가의 실험정신은 차치한다 해도 작가가 오랜 시간 공들여 쓴 작품이니 만큼 독자에게 줄 감동지수는 클 것이기 때문이다.
- 작가의 말
푸른 강물이 유유히 흘러간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물 표면을 간질인다. 물오리 한 쌍이 출렁거리는 물결 위에 내려앉는다. 물결이 둥글게 파문을 일으키며 멀리 번진다. 빗줄기처럼 물 속으로 꽂히던 햇살이 너울거린다.
그러나 그러한 평화로운 풍경은 오래가지 못한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강물 위엔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사위가 어둑해지면서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몰려온다. 강물이 거칠게 출렁거린다. 누런 흙탕물이 굽이치며 흘러내려온다. 양동이가 둥둥 떠내려온다. 돼지가 허푸거리며 둥둥 떠내려온다. 판자 조각도 보인다. 홍수는 분노의 손짓을 해대며 성깔이다.
그래왔다. 강물은 언제나 변덕이 심했다. 그러면서 어김없이 흘러갔다. 야속하게 때로는 평화롭게. 강가의 단층면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이 숨어 있다. 나는 거기에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내가 찾은 단서에는 그들의 아픔과 상처가 있고 나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다. 내가 찾은 단서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어떤 단서를 찾아야 한다. 나는 그것밖에 할 줄 모르므로. 살아 있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내가 만든 나의 소명이므로.
강물이 오순도순 속삭이며 흘러간다. 나는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간다. 강가 단층면의 어떤 편린을 낚기 위하여. 바람이 분다. 눈을 크게 떠야겠다. 노를 힘 있게 움켜잡고 앞으로 당긴다. 나룻배가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물살을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