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해
한용운 장편소설
어젯밤에 개인 적은 비는 다시금 가을빛을 새롭게 하였다.
나비의 꿈인 듯한 코스모스의 가볍고 깨끗한 모양이 아침 볕에 새로운 키스를 이기지 못하여, 온몸을 움직이고 있는 한편에 처음 핀 국화의 송이송이에 맺혀 있는 이슬 방울이, 바로 보면 은(銀)인 듯하다가 비껴 보면 금인 듯도 하였으 나, 맑은 바람이 지나간 뒤에 다시 보면 그것은 은도 아니 오 금도 아니오 이상한 수정이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마음도 없이 가을 향기를 맡으면서 문지 도리를 의지하고 고요히 서 있는 스무 살이 될락말락한 예 쁜 여자는 잊었던 일을 깨우친 듯이 빠르면서도 한가하게 몸을 돌리면서, 갓 마친 단장을 거울에 비춰서 가볍게 두어 번 손질한 뒤에, 삼층장 위에 놓여 있는 바느질 그릇을 내 려놓고 다시 장문을 열고 무엇인지 꺼내려 할 즈음이었다.
"경순(敬淳)씨, 오늘도 또 바느질이요?"
하면서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창수(昌洙)의 말소리는 명랑하 였다. 창수를 미처 보지 못하고 말소리만 들은 경순은 조금 놀라면서 둘러보더니 다시 웃는 입술로,
"여자가 바느질이나 하지 그럼 뭘 해요."
하고 장 안에서 하다 두었던 모시 진솔 두루마기를 꺼내어 놓는다.
"여보, 오늘 일기도 좋고 여러 날 바느질하노라고 갑갑도 할 터이니, 우리 밤이나 주워 먹으러 갑시다."
창수는 문지방에 두 손을 짚고 서서 경순을 바라보고 말한다. "밤을 주워 먹으러 가다니요?"
하고 경순은 무슨 말인지 의미를 모르는 듯이 돌려 물었다. "밤 주워 먹는 것 모르오? 나무에 열린 밤을 따서 주워 먹 는단 말이요."
"어디 가서요?"
"안양(安養)으로 간답니다."
"안양이 어디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