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초고령화.핵가족화 시대의 간병 문제,
결국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 사회는 ‘초고령화’ ‘핵가족화’라는 새로운 시대 환경 앞에 서 있다. 이 말은 한국 사회가 과거와는 다른 관점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받아들이고 적절히 대응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고령화와 핵가족화가 가져올 사회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지점은 간병 부문이다. 간병과 관련한 여러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고 해결해야 할 사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는 간병 가족들의 암울한 현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이란 기획을 2018년 9월 3일부터 12일까지 총 8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다. 기사의 반향은 상상 이상이었고, 정부를 비롯해 여러 사회단체가 이 문제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만드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 책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은 연재에 미처 다 싣지 못한 이야기들을 추가하고, 기존 내용을 보완해 편집한 것이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이른바 ‘노-노 간병’의 실태를 조명했고, 2장에서는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다중간병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장에서는 폭언·폭행 같은 이상행동증상을 보이는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다루었고, 4장에서는 허울뿐인 정책 구호 앞에서 좌절하는 ‘장애인 간병 가족’들의 아픔을 담아냈다. 5장에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간병살인 가해자의 심리상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6장에서는 가족을 잃은 끔찍한 사건 속에서 고통받는 피해자 혹은 가해자 가족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7장에서는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간병의 고통을 감내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했고, 마지막 8장에서는 간병살인과 관련해 한국 사회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짚어봤다.
이 기획을 진행하면서 지은이들이 겪은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간병살인에 관한 마땅한 국가 통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에 지은이들은 가족 간병살인 실태를 전수조사했다. 2006년부터 10여 년간 간병살인 관련 판결문을 모두 확보하고, 보건복지부가 진행 중인 자살사망자 전수조사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분석한 자살사망자 289명의 심리부검 사례도 확인했다. 주소 하나만 달랑 들고 간병살인 가해자들을 찾아가 만나기도 하는데, 직접 만나지 못한 경우에는 주변 친인척과 지인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그렇게 꼬박 3개월에 걸쳐 목도한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간병살인 가해자 수는 154명, 희생자 수는 213명이었다. 지은이들은 나름의 기준을 정해 이 숫자가 나오게 된 배경을 ‘일러두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필자들은 환자를 돌보다 누군가를 살해하는 것을 ‘간병살인’으로 규정했다. (중략) 간병살인 희생자(213명)를 셀 때는 살인미수 피해자는 포함하지 않았다. 실제로 살해당하거나 동반자살하거나 환자를 두고 자살한 경우만 집계했다. 간병살인 가해자(154명) 역시 살인미수는 포함하지 않았다. 명백하게 환자를 살해한 경우만 고려했다. 자살도 포함했는데, 동반자살은 자살을 주도한 사람이 있을 것으로 보고 한 사건당 가해자를 한 명으로 보았다.”
그러나 여기서 ‘213’ ‘154’란 숫자는 간병살인 희생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가족의 고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지은이들은 기록으로 남지 않은 사례가 더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지은이들이 그 숫자를 강조한 것은 잊을 만하면 언론에 등장하는 ‘간병살인’ ‘간병자살’ 같은 비극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대중에게 알리고, 간병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 우리 사회에서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유영규 탐사기획부장은 그 바람을 ‘들어가는 말’에서 내비쳤다.
“기사가 나간 뒤에도 여전히 벼랑 끝에 선 간병 가족들의 극단적 선택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2018년 1월부터 이 기획이 나가기 직전인 8월까지만 해도 10여 명이 간병을 해주던 가족에게 목숨을 잃거나 자살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움직임은 무디기만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 기획은 미완입니다. 못 다한 이야기들을 묶어 후속 기획을 이어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 취재하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과학적으로 사건을 분석하면서 간병 문제가 우리 모두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임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이 기획은 ‘제50회 한국기자상’ ‘제36회 관훈언론상’ ‘제21회 국제앰네스티언론상’ 등 언론계의 굵직한 상들을 휩쓸었다. 달리 말해 이는 지은이들이 수면 위로 끌어올린 ‘간병 문제’ 이슈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가 더이상 이 문제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경고이기도 할 것이다.
수상 소감에서 지은이들은 “오늘도 누군가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자식이거나 부모여서, 선의로 때론 의무감으로 시작한 전쟁이지만 아군의 지원 따위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전쟁은 누군가가 죽어야만 끝납니다. 한국 사회가 우군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가족 간 살인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사회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해주기를 요청했다. 아울러 이 책이 실제적으로 간병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개발되는 데 좋은 자극제이자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책 속으로
“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그런 것 같아요….”
2016년 9월,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 중년 남성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신고했다. 출동한 형사들은 안방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이일자(86세) 씨를 발견했다. 이미 숨을 거둔 이씨 목에는 삭흔索痕(목 졸린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씨의 남편 정수천(89세) 씨는 다른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곁에는 텅 빈 수면제 통이 나뒹굴었다.
“평소처럼 아침에 인사를 드리러 부모님 방에 갔더니 어머니가 눈을 뜨지 않는 거예요. 급히 아버지한테 말했더니 ‘내가 그랬다’고 하셨어요.”
정씨와 함께 사는 아들 정이준(54세) 씨가 울먹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형사들이 정씨에게 이것저것 물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수면제 30알을 한꺼번에 삼켜 온전한 정신이 아닌 탓이다. 수갑을 채우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형사들이 양쪽에서 부축해 경찰서로 데려가는 동안 노인은 다짐하듯 나지막이 읊조렸다.
“임자, 잘됐어…. 이제 나도 죽어야겠어.”
_15-16쪽(1장 老-老 간병의 고통)
가족을 간호하는 건 대표적인 ‘그림자 노동’이다. 그림자처럼 돌아보면 허무하게 사라진다. 오랜 시간 아픈 가족을 돌보며 환자 못지않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지만 노동의 대가 따윈 없다. 하루하루 의료비 부담은 쌓여가지만 있던 직장도 그만둬야 할 판이니 경제적으로 현실을 감당할 능력은 점점 줄어든다. 경제적 부담은 가족 구성원의 삶을 조여 오고 종종 극단적 선택까지 부추긴다.
필자들이 2018년 7~8월 한국치매협회, 뇌질환환우모임과 함께 가족 간병인 3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3.9%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의료비 부담’(35.1%)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혔고, ‘사직’(26.3%)과 ‘근무시간 단축’(25.4%)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주관식으로 한 달에 감소한 수입 또는 지출 증가 규모를 물은 결과 평균 191만 원으로 집계됐다. 연간으로 따지면 2292만 원이다.
_58쪽(2장 끝없는 굴레, 다중간병)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의심과 망상, 그리고 폭력성은 치매 환자 간병의 또다른 고통이다. 이는 치매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에게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환자의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 때문에 늘 긴장하게 되고, 간병 기간이 길어지면 사회적 고립과 우울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간병인은 치매 환자의 폭언과 폭행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이 같은 폭력성은 간병인에게 우발적 살인이나 자살 충동을 부추긴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외 3명이 2016년 발표한 〈치매노인의 증상 정도가 부양자의 자살 생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증상이 심해질수록 가족 관계가 악화될 뿐 아니라 부양자의 자살 생각도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_90-91쪽(3장 폭언·폭행에 내몰리는 간병인)
그날 힘없이 무너져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세) 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키가 150센티미터에서 멈춰버린 불혹의 나이인 큰아들은 절뚝거리긴 했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그런데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린 채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허씨는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41세)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지나고 보니 사는 게 늘 그늘이었어. 안 해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2018년 7월 31일, 필자들은 허씨를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_117-118쪽(4장 장애인 간병)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스트레스로 인한 간병살인이나 간병자살 통계를 집계하고 있다. 한국 역시 가족 간병 고통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정부 차원의 사례 분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자살 예방 차원에서 중앙심리부검센터를 통해 2015~2017년 발생한 자살 사건 중 유족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온 289건에 대해 ‘심리부검’을 실시했다. 심리부검은 자살자의 유서나 유족, 동료와의 면담을 통해 자살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다.
필자들은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이 가운데 가족 간병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으로 유추되는 5건을 찾아냈고, 유족의 동의를 받아 간병자살의 흔적이 엿보이는 2건의 자료를 제공받았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실시한 심리부검을 통해 그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다가가볼 수 있는 기회다.
_162-163쪽(5장 죽음을 분석하다)
“지금 와서 그 이야기를 물어보는 이유가 뭔데? 우리 시동생, 억울하게 죽었어.”
경기도 연천에 사는 김순래(80세) 씨는 7년 전 일에 대해 어렵게 입을 열었다. 30년 넘게 같은 마을에 살던 동서 이연순(72세) 씨가 치매에 걸린 남편(76세)을 살해한 사건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 했다.
처음에 김씨는 “자기도 사람이면 후회 많이 했겠지. 그래서 감옥 갔잖아. 하지만 가족은 쉽게 용서가 안 돼”라며 이씨를 원망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한 시간가량 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서히 감정의 변화를 보였다.
“사실 힘들었어…. 남편 증세가 갑자기 나빠졌거든. 뜬금없이 벽을 보며 절을 하지 않나, 사람들이 독약을 뿌려 자기를 죽인다고도 하지 않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이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갈았지.”
이씨 남편은 원래 요양시설에 있었지만, 기저귀를 찢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여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이씨도 고령인 데다 당뇨와 우울증 같은 지병을 앓고 있었다. 사건 전날 밤 남편은 이상행동을 말리는 이씨에게 손찌검을 했고, 온몸에 이불을 감은 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다음 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술을 마시던 이씨는 자고 있던 남편을 둔기로 내리쳤다.
_176쪽(6장 가족이 말하는 ‘그’)
가족 간병인이 쓴 글은 총 7729개의 단어로 구성됐다. 일상(자기 영역)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직장·일’(169회), ‘학교’(155회)였다. 가족 간병으로 직장이나 학업 같은 사회활동에 제한을 받는다고 호소한 사람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여가활동’(134회)에 대한 언급도 높았다. 끝 모를 사막 속에 갇힌 듯한 간병 터널에서 오아시스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휴식’뿐이다. “몇 분이라도 저만의 자유시간을 느끼고 싶어요.” “저도 쉴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발 숨 돌릴 여유를 좀 주세요.” 보통 사람에게는 소박한 이야기지만 가족 간병인은 이런 생각조차 사치다.
‘몸 상태와 증상’(127회), ‘돈·재정적 이슈’(111회)와 관련한 단어도 많이 나왔다. 간병을 하다 본인 건강까지 해치고,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다고 호소한 것이다.
_189쪽(7장 그래도 살아야 한다)
“우리 가족의 일상은 모두 멈춰 섰습니다. 아이는 온갖 병원을 돌아다니며 ‘상태가 안 좋다’라는 말만 들었고, 온몸이 진물로 덮였습니다. 모든 관절이 굳어서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손을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지체 1급 장애와 호흡기 2급 장애입니다. 터치 펜에 의존해 휴대전화 유튜브로만 세상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 5년을 버텼던 건 건강보험 암 산정특례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산정특례는 의료비 부담이 큰 암이나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 중증화상, 결핵 환자의 본인 부담금을 일정 기간 0~10%로 낮춰주는 제도다. 하지만 이런 지원도 곧 끊길 위기에 처했다. 암 산정특례 기간(5년) 만기가 임박한 것이다. 암 대신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바꿔 산정특례를 신청하려 했지만, 아이가 앓는 병은 질병코드가 없어 힘들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_229쪽(8장 함께 풀어야 하는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