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몽상과 꿈결에 사로잡힌 카프카가 아닌, 권력과 지배에 저항하는 카프카를 파헤치다!
카프카는 권력을 해부하고 전시한 저항 작가였다!
프란츠 카프카는 현대문학의 방향성을 새롭게 제시한 소설가로 불리며, 20세기 이후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만큼 카프카에 대한 다양한 해설과 비평이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카프카를 그저 불안과 고독에 가득 차, 절망만을 부르짖는 소설가로 평가한다. 아니, 그렇지 않은 해설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카프카를 대체로 ‘불안’과 ‘고독’을 키워드 삼아 설명한다. 그런 비평은 카프카를 ‘실존주의’ 작가로만 평가하고, 그의 문학적 고뇌를 내면에서부터 비롯된 불안에만 의한 것으로 한계 짓는다. 그러나 카프카는 자기 스스로의 고독에 심취해 내면적 독백만을 되풀이한 작가가 아니다. 그는 근대 관료주의 체제의 위계권력, 근대법의 비인간성과 꿰뚫어보고, 근대 산업주의사회의 권력을 세세하게 해부하려 했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기업과 가족에 의해 기능적인 측면으로만 평가당하고, 『소송』에는 거대한 법체계에 의해 종용당하기만 할 뿐 법적 체제에 직접 발 담그지 못하는 약자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처럼 카프카의 소설에 나타나는 환상적인 요소들은 그저 몽상이나 망상이 아니라, 부당한 정치사회적 권력을 가시화한 것이다.
카프카는 새롭게 사유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카프카의 일대기로 돌아가 그의 반권위주의적 행보를 되짚어보고, 그의 작품을 정치사회적 연관선상에서 재발견해내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 이 책은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 실존주의가 카프카 작품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기존 비평을 살펴본 뒤, 그 해석들이 과연 ‘진짜 카프카’의 모습을 규명하고 있는가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실재하는 권력을 비판한 카프카의 모습을 독자 앞에 드러낸다.
20세기 격동기 한가운데 선 카프카
이 책은 카프카 개인의 행보만을 살피고 있지 않다. 정치사회적 권력을 겨냥한 카프카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카프카 개인이 위치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을 충실히 기술하고 있다. 무엇보다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이면서 독일어권 작가라는 복합적인 정체성이, 카프카의 인생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선상에서 살펴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따라 카프카에 대한 시대적인 평가도 달라졌다. 동유럽이 스탈린 치하에 있던 시절, 카프카는 그저 ‘퇴폐적인 허무주의자’로 알려졌지만, 스탈린주의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카프카를 ‘자본주의가 낳는 소외에 대한 혁명적 비판자’로 불렸다. 동유럽이 공산주의로부터 해방되고 자본주의가 들어서자, 카프카는 체코의 관광 상품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예술가나 예술작품은 이데올로기 면밀하게 연관 맺는다. 그렇다면 카프카 인생 또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연관성상에서 살펴야함이 옳다.
카프카가 살았던 19세기 말, 그리고 20세기 초 체코 프라하에서는 독일인과 체코인, 유태인들이 여러 형태의 갈등양상을 빚어냈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 아래 존재했던 체코는 군국주의적 의무교육을 실시했으며, 오스트리아 정부는 제국주의적 팽창을 꿈꿨다. 심지어 체코에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감정이 지배하고 있어, 사회주의자/노동자들끼리도 독일인과 체코인으로 분열되는 형국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유럽 전반은 반유태주의의 열풍에 휩싸여 죄 없는 유태인들이 종종 희생당했다. 카프카는 시대의 격동기 속에서 성장한 것이다. 카프카는 수직적으로 체계화된 관료사회를 경험했고, 세계 1차 대전이라는 제국주의적 참상을 목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격동의 시대 속에서 카프카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온갖 권력이 충돌하고 시민들이 억압당하는 현실에 어떻게 분노했는지를 이 책에서 탐색한다.
카프카는 ‘아나키스트’였다
카프카의 작품은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되고 비평된다. 신학, 정신분석학,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 등 여러 분야로 포진되어 있는 비평가들이 카프카에 대한 자기들만의 해석을 내놓는다. 카프카의 짧은 단편소설 「법 앞에서」를 해석하는 시선만 해도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신학적 해석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법’을 낙원, ‘문지기’를 권력으로 보고, 작품의 주제를 ‘신과 인간의 괴리’로 파악한다. 한편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법을 성적 대상으로서의 어머니, 문지기를 어머니에 대한 접근을 거부하는 아버지로 본다. 그러나 카프카가 말하는 법이란 그저 ‘법’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에 가까이 갈 수 없다.”(『변신』 554쪽). 사람들은 그 소수의 지배자가 지정한 법체계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종용하게 내버려둔다. 따라서 「법 앞에서」는 국가권력에 대한 신봉과 정치적 미숙에 대한 풍자이자, 자신들의 지배를 합법화시킬 수 없는 권력을 공격하는 글이다.
이 책에서 카프카는 꾸준히 정치적 권력, 세상을 위계서열화 하는 권력 시스템을 공격하는 사회적인 소설가로 바라본다. 물론 관점의 차이에 따라 작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카프카 자신이 의도한 것인지, 비평가들이 확장해서 사유한 것인지는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카프카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카프카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바쿠닌과 프루동을 비롯한 아나키즘 사상에 지대한 관심을 쏟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카프카가 일생 동안 ‘권력’에 맞서려 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사람들은 몽상과 절망에 빠진 카프카가 아닌, 권력에 주체적으로 대항하려 했던 카프카, 권력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 카프카의 모습을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카프카, ‘변신’을 꿈꾸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왜 ‘벌레’가 되었을까? 이에 대해 많은 해석가들이 ‘흉측한 벌레’로 변하는 모습으로 인간의 타고난 고독을 설명하려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잠자가 ‘벌레’가 되는 이유를 아예 다른 관점으로 설명한다. 그레고르 잠자는 타의에 의해 강제로 벌레가 된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벌레로 ‘변신’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앞선 단편 「시골의 결혼」에서 결혼식에 가기 싫은 주인공이 스스로 벌레가 되어 일상에서 숨고자 하는 묘사를 통해 단서를 잡을 수 있다.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을 돈 벌어오는 대상으로만 보는 가족들에게서나, 일하는 기계로 전락시킨 직장에 맞선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흉측한 벌레’는 구역질나는 관습을 벗어나 새롭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고자하는 주체가 된다. 하지만 그가 다른 존재로 변신하든 말든 사람을 기능적인 존재로 전락시키는 사회적 권력을 그대로 남아 있다. 결국 ‘변신’해야 하는 것은 정치사회적 현안이라고, 카프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진정으로 변화된 사회가 도래하길 바라는 사람, 사회가 ‘변신’하길 꿈꾸는 사람을 위한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