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곤충’은 벌레가 아니다! 곤충은 건강한 생태계의 지표다!
곤충과 좀 놀아본 남자, 돈키호테 곤충학자의 곤충탐구생활
이 책은 흔히 볼 수 있는 곤충도감 류와 달리 곤충의 생태를 생태화와 생태시로 먼저 소개하고, 다양한 삽화 및 사진, 잘 알지 못했던 생태 설명을 기반으로 ‘곤충의 일생’을 서술한다. 또한 그들의 생태가 인간의 삶과 어떤 지점에서 비교되는지 기술함으로써 곤충이 잡아 죽여야 할 ‘징그러운 벌레’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길앞잡이’, ‘꼬마물방개’, ‘검은물잠자리’, ‘왕사마귀’, ‘모시나비’, ‘참매미’, ‘쌍꼬리부전나비’, ‘흰줄숲모기’이다. 곤충들은 자그마치 3억 5천만 년 동안 처절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왔다. 먹이생태계에서 대부분 1차 소비자로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해충이 아니라 중요한 생물자원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에 따른 곤충의 생태와 생리적 변화가 인간뿐만 아니라 범지구적인 생태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하는 배경이다. 저자는 이 책의 차별성과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서술 전략을 구사했다. 첫째, 통념적인 구성과 편제를 탈피하여 각 꼭지마다 곤충강(綱) 각 목(目)의 대표 종(種)을 선정하여 이야기를 전개했다. 이는 독자들이 과학서를 접하면서 갖게 되는 어려움과 거부감을 상쇄하기 위한 것으로 굳이 첫 페이지부터 읽지 않고 관심이 가는 항목을 무작위로 펼쳐보아도 이해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둘째, 각 꼭지의 첫 페이지엔 대표 곤충 종을 한국화로 그려 보여주고 그다음 페이지에 곤충의 생태시를 소개했다. 그림과 시를 연이어 감상함으로써 독서정신을 순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읽을 준비 시간을 제공하는 셈이다. 셋째, 일반 서적에서 다루지 않았던 실체 현미경을 활용하여 사진을 찍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곤충의 특수한 부분을 확대하여 미시세계의 신비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탐구적인 사고를 연습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넷째, 곤충의 생태와 생활사를 인간사와 접목하여 읽는 재미를 배가했다. 일반적인 도감에서 다루지 못했던 곤충들의 애환을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고 이에 접근했다. 다섯째, 등장하는 곤충의 서식 장소와 날짜, 학명, 현미경 배율, 인용문 등을 정확하게 명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사실(Fact)에 입각한 신빙성과 신뢰를 주어 중용의 학문적 소양을 키울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밖에도 생태시에서 아름다운 시어나 생태에 맞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한 점, 자연환경 보존의 이야기를 다룬 점, 곤충의 생태적 특이성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생태박스를 제공한 점 등은 이 책만의 특장점이다. 곤충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곤충학자의 글, 조각가인 아내가 동고동락하며 그린 곤충생태화, 교사인 아들이 정성스레 찍은 사진, 분란지역을 오가며 문화복구를 위해 애쓰는 딸이 캐리커처를 그림으로써 온 가족이 참여하여 탄생시킨 희귀한 ‘곤충탐구생활’ 책을 생태문제에 관심을 둔 모든 이에게 권한다. 이번 책에서 다루지 못한 메뚜기 목(目), 벌목(目) 등의 이야기는 다음 권에서 다룰 예정인데, 나머지 30여 가지 목(目)의 대표 종들을 선정하여 재매있는 이야기로 과학에 쉽게 빠져들 수 있도록 저변 확대의 길을 마련하고자 한다.
벌레냐 곤충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곤충’이라는 그다지 친근하지 않은 생명체를 통해 과학에 한걸음 더 가까이 접근해본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물 종의 3/4인 100만여 종이 곤충이다. 이들은 인간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곤충을 징그럽게 생각하고 잡아서 죽여야 할 ‘벌레’ 정도로만 인식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혐오하고 너무도 쉽게 그들의 생명을 짓밟는다. 이 같은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저자는 “곤충에 대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이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알게 되면서 가까워지고, 그러면 섣불리 곤충을 벌레라고 부르며 혐오하는 경우가 줄어들지 않을까? 내가 그들과 친해졌던 것처럼!”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마음에 따라 책을 기획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여기엔 어릴 때부터 곤충에 빠져 살았던 글쓴이의 곤충 사랑이 크게 한몫했다.
곤충과 좀 놀아본 남자
여름날 이른 새벽, 어둠이 채 걷히기 전에 꼬마소년은 살그머니 일어나 뒷동산에 올라가곤 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있었는데 생채기가 난 곳엔 어김없이 집게벌레가 나무진을 빨아먹고 있었다. 막대기로 건들면 ‘툭’하고 땅에 떨어져 죽은 척한다. 그러면 소년은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어머니 몰래 바구니로 덮어놓고 놀다 온다. 어머니는 “아니, 저놈은 커서 뭐가 되려고 만날 버러지만 가지고 논다냐?” 하셨다. 넓적사슴벌레나 톱사슴벌레의 모습은 경이롭고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소년에게 살아 있는 곤충은 지금의 모형 장난감과 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이처럼 유난히 곤충을 좋아했던 소년은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생물교사가 되어 곤충반 학생들과 들로 산으로 곤충여행을 함께하면서 곤충연구의 길을 갔고, 이제 시간이 흘러 흰머리가 더 많은 곤충박사가 되었다. 그리고 어릴 적 곤충과 놀았던 추억을 잊지 못해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라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이런 곤충 이야기는 처음이지?
하지만 곤충의 세계는 너무 방대하고, 그 수 또한 엄청나기에 모든 곤충의 이야기를 다룰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중에 각 목(目)별로 대표적인 종들을 골라 그들의 신비스러운 삶과 생태를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인간 삶의 현장과 비교하면서 바라보고자 했다. 다른 책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인트로 생태화와 생태시, 그리고 다양한 표본 사진을 곁들여서 말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에 따른 생태계의 지각변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건강한 생태계의 지표인 곤충의 생리적 변화가 인간뿐 아니라 범지구적인 생태계 자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터임을 인식한 탓이다. 곤충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소중한 생명체다. 이들의 삶은 과연 어떨까? 아무렇게나 죽여도 좋은 미물일까,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일까? 곤충에 빠져 일평생 곤충만 수집해온 곤충박사와 함께 들여다보는 이들의 사생활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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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곤충 수컷이 암컷에 접근하여 구애를 할 때에는 애교와 아양을 떠는 행동을 한다. 호랑나비는 날갯짓으로 아름다운 춤을 한껏 뽐낸다. 여치나 귀뚜라미, 방울벌레, 매미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사향제비나비는 향기로운 향수를 뿌리고 다닌다. 장수풍뎅이는 겨루기를 통해 힘자랑을 한다. 요즘 결혼식장에 가면 곤충들의 수컷이 하는 행동을 신랑이 똑같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하지만 길앞잡이 수컷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행동은 거칠고 무뚝뚝하며 애교가 없다. 한마디로 무조건 들이대고 본다. 서로의 교감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만 행동하는 에고이스트이다. 요즘에는 이런 남자들이 여성들에게 제일 매력 없는 부류다. 이들은 짝짓기를 할 때 사디스트sadist처럼 굉장히 폭력적이다. 사랑을 나누는 계절인 5월이 다가오면 사전에 교감이 없이 암컷만 보면 다짜고짜 덮쳐 입으로 물고 짝짓기를 한다. 교미를 하고 있는 다른 수컷에게 싸움을 걸어 사랑을 방해하는 폭군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여러 암컷을 건드리는 곤충계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다. 물론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려는 자손 번식 본능 때문이다. 암컷도 이런 난잡하고 난폭한 사랑을 싫어한다. 껴안고 있는 난봉꾼을 떼어내려고 뒷발로 차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날카로운 낫처럼 생긴 큰 턱이 가슴을 물고 진드기처럼 등에 바짝 붙어 있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눈에는 이쯤 되면 곤충계에도 미투운동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 순간이다._〈길앞잡이는 왜 길을 안내하나〉 중에서
물방개 수컷의 앞발은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각각 세 개씩 탁구라켓을 포개서 들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이다. 제법 복잡한 구조인데 크게 세 가지 기능을 한다.
첫 번째 가장 큰 기능은 수컷이 짝짓기를 할 때 암컷 등 쪽의 휘어 있는 매끄러운 표면에 잘 부착할 수 있도록 빨판 역할을 하는 것이다. 탁구를 칠 때 탁구공이 닿는 면에 고무를 붙여 마찰력을 높이는 것처럼 수컷의 앞발에도 짝짓기를 할 때 표면적을 넓혀 암컷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암컷이 움직여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물속에서 암수가 동행하며 짝짓기 할 때 이를 원활하게 해준다.
두 번째 기능은 앞에서 노를 저어 추진력을 높이는 것이다. 리어카에 무거운 짐을 싣고 비탈길을 갈 때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가면 한층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는 것과 같다. 자동차로 말하면 대부분의 승용차가 이에 해당한다. 엔진에서 앞바퀴에 동력이 전달되어 앞에서 끌고 가는 전륜 구동형 자동차와 같다고 할까?
마지막 기능은 방향을 조종하는 선박키와 같은 역할이다. 배에서의 키는 보통 뒤에 한 개 있지만, 물방개에겐 앞쪽 양쪽에 두 개의 키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방개의 한쪽 발의 라켓을 사용하면 빠른 좌우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왼쪽 발의 라켓을 진행 방향과 직각으로 향하면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오른쪽으로 돈다. 양쪽 발의 라켓을 모두 한쪽 방향으로 사용하면 연못에서 자주 보는 아주 빠른 회전이 가능하다. 즉, ‘방향 전환×2=회전 전환’ 능력이 된다. 또한 양쪽 발의 라켓을 좌우에 진행 방향과 직각으로 놓으면 순간정지능력이 탁월하다. 물속에서 생활하는 딱정벌레목 중에서 가장 큰 물방개가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것은 이 앞발 덕분이다._〈둥벙으로 간 꼬마물방개〉 중에서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나눌 때 특별한 생식구조를 형성하는 쪽으로 수억 년 동안 진화했다. 검은물잠자리의 배는 전체 몸길이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굉장히 길다. 이 배는 자손 번식을 위해 특화된 사랑을 위한 도구의 일부분이다. 사랑을 향한 도끼질의 기다란 도끼자루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든 잠자리의 수컷에겐 외부 생식기가 2개씩 있다. 검은물잠자리도 예외가 아니다. 제9배마디에 있는 제1생식기(제1성기, 정소)에서 만들어진 정자는 교미기에 제2~3배마디에 있는 제2생식기(제2성기, 부성기)로 옮겨지는데 이것을 이정행위移情行爲라고 한다.
대부분의 곤충이 짝짓기할 때 뒤에서 껴안을 수 있도록 중요하게 쓰이는 다리가 검은물잠자리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대신 검은물잠자리의 사랑 나누기는 다른 곤충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독특한 구조로 행해진다. 특허권을 소유한 셈이다. 수컷이 배 끝의 제10배마디에 2쌍의 교미부속기를 만들어 암컷 앞가슴의 뒤쪽을 단단히 움켜쥐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특허 기술은 짝짓기 상태에서 비행해도 암컷이 도망가지 못하고 동행할 수 있도록 특화되었다.
수컷의 제2생식기는 제2~3배마디에 있고 암컷의 생식기는 제8배마디에 있다. 암컷이 배를 활처럼 구부려야 수컷의 제2생식기에 암컷의 제8배마디 생식기가 교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하트 모양인 우아한 사랑의 고리를 만들게 된다. 이들의 짝짓기는 암컷이 자신의 생식기를 수컷의 생식기에 가져가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즉, 암컷이 배우자를 선택하고 도움을 주어야만 짝짓기가 가능한 것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서로 간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합의가 있어야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합리적인 성 평등을 실현하는 아름답고 성스러운 곤충이 바로 검은물잠자리다._〈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중에서
왕사마귀는 움직이는 물체를 만나면 상대방이 크건 작건 가운뎃다리와 뒷다리를 지면에 앙 버티고 일어선 자세를 취한다. 특히 덩치가 큰 생물에게는 몸을 좀 더 커다랗게 보이기 위하여 날개를 펼쳐서 사나운 기세로 달려든다. 막대기나 손으로 건드리면 도망치기보다는 오히려 톱니발을 쳐들고 위협하며 대든다. 사실 도망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망갈 수 없는 처지이다. 어차피 도망갈 수 없는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식이다. 앞다리의 톱니발을 권투선수처럼 앞으로 치켜들고 공격과 방어 모드로 접어든다. 촉각은 곤두서 있고 시선은 정면을 향하여 온 신경은 임전태세의 흐트러짐 없는 살충병기로 둔갑한다. 사마귀의 이런 자세를 보고 창안한 권법이 당랑권법螳螂拳法이다.
당랑권법은 중국 북쪽지방 산동성山東省에서 사마귀의 싸움 자세를 보고 개발 전수되어진 북파권법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귀처럼 좁은 공간에서 손과 발을 이용한 짧고 신속한 타법으로 근접전을 펼칠 때 겨루는 권법이다. 특히 당랑수螳螂手라는 사마귀 앞다리의 톱니발 형태를 모방한 빠르고 강한 손놀림이 특징이다. 중국의 『한시외전韓詩外傳』과 『회남자淮南子』, 『장자莊子』 등에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타고 가는 수레바퀴 앞에서 톱니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곤충이 있었다. 이것을 보고 장공이 마부에게 무슨 곤충이냐고 물었다. “사마귀라고 합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 모르는 놈입니다. 제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날뛰는데 어떻게 할까요” 장공이 말했다. “저 곤충이 사람이라면 천하의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수레를 옆으로 피해 돌아가도록 하라” 하고 사마귀가 비록 미물이지만 경의를 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마도 길가에는 임금이 지나가니 많은 신민들이 나와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경의를 표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임금이 일어서서 사마귀에게 경의를 표했다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사마귀가 왕사마귀였을지도 모른다. 당랑거철은 분수를 모르고 무모한 짓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꼴 때 쓰는 말이지만 자연에서는 사마귀의 강하고 용맹한 살신성인의 생존전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_〈왕사마귀는 댄스배틀을 좋아해〉 중에서
흰줄숲모기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비행 능력이다. 흰줄숲모기는 에어쇼의 진면목 보여준다. 드론에서 초보자가 가장 힘들어 하는 기술이 호버링hovering, 공중정지·정지 비행이다. 흰줄숲모기는 파리목 모기과에 속한다. 파리와 가까운 친척이다. 생물 중에 정지비행을 가장 잘하는 곤충이 파리목이다. 날개가 있는 곤충들은 모두 두 쌍의 날개로 날아다닌다. 하지만 파리목은 한 쌍의 앞날개로만 돌아다닌다. 나머지 뒷날개의 한 쌍은 평형곤平衡棍이라는 독특한 형태와 구조로 변형되어 있다. 이 평형곤은 뒷날개 위치에 달려 있는 리듬체조의 한 종목에서 사용하는 곤봉처럼 생겼다. 날아다닐 때는 뒷날개가 변형되기 때문에 나는 것처럼 날갯짓을 한다. 날개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날갯짓의 횟수도 똑같다. 놀이동산에서 자이로스코프나 시계추 같은 역할을 하는 평형기관이다. 거센 바람을 타고 날 때나 급격한 방향전환을 할 때 몸의 균형을 잡으며 비행하는 쪽으로 적응·진화해왔다.
흰줄숲모기도 역시 날개가 한 쌍이다. 날아가다 갑자기 정지비행을 하거나 방향을 ‘휙휙’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현란한 곡예비행은 평형곤이 있기에 가능한데, 이들은 기본 바탕이 잘 갖추어져 있어 호버링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정지비행의 명수이다. 두 쌍의 날개로는 빠르게 날 수는 있어도 정지비행엔 한계가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안전한 착륙이다. 비행기 사고의 대부분이 이착륙에서 일어나듯 흰줄숲모기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 착지이다. 사람이 느끼지 못하도록 피부에 사뿐히 내려앉아야 한다. ‘쿵’ 하고 거칠게 착지한다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인간의 손도 순간 속도가 대단하여 모기에게는 저승사자 격이니 말이다. 하지만 모기는 여간해서 이런 랜딩landing 실수를 하지 않는다._〈대숲의 요정 흰줄숲모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