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틀렸다
1924년, 미국 시카고에서 어린이가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레오폴드와 로앱, 둘 다 시카고 대학의 뛰어난 엘리트 학생들이었다. 레오폴드는 ‘니체’에 매료되어 자신과 로앱을 ‘슈퍼맨(초인)’으로 생각하고 평범한 인간을 뛰어넘기 위해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이 사건을 뮤지컬화한 〈쓰릴 미〉에서 주인공들은 니체적 초인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짖는다. 레오폴드는 니체의 초인사상을 오도한 것일까? 아니면 초인사상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저자는 니체의 초인사상에 비윤리적인 논리들이 스며 있다고 말한다. 초인사상은 단순히 ‘주체적 인간’을 옹호하는 사상이 아니라, 지배자와 권위주의자를 위해 만들어진 사상이다. 초인사상의 기저에는 인종주의, 반민주주의, 여성혐오, 귀족주의 등 모든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상이 담겨 있다. 그렇다. 니체의 슈퍼맨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온정적인 슈퍼맨이 아니라, 종국에 모든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이코패스 슈퍼맨’이다. 니체의 삶과 사상, 니체에게 영향을 준 사상적 선배들(쇼펜하우어, 바그너, 칸트, 피히테), 니체를 둘러싸고 있었던 당대 독일사회에 대해 낱낱이 파고든다. 저자는 니체의 저작을 일일이 분석하며 니체 사상에 녹아 있는 반민주주의적 요소들을 발견한다. 『비극의 탄생』에서부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유고』에 이르기까지 니체의 반민주주의적 요소는 형태와 모습만 바꾸어 계속 주장된다. 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이 변호하는 니체에도 맹점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니체는 관점주의를 설파하며 일의적 진리가 아닌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니체는 관점주의를 핑계로 최소한의 도덕과 진리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니체를 무조건 신봉해야하는 걸까?
니체주의자들은 흔히 많은 사람들이 니체를 오해한다고 변호한다. 그러나 니체의 글 안에는 부당한 논리들을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종종 니체를 근거로 폭력과 부당함을 정당화하는 괴인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히틀러가 그랬다. 나치시절 전쟁에 동원된 청년들이 배낭에 니체의 책을 한 권씩 집어넣고 다닌 것은 유명한 일화다. 물론 당시의 책은 여동생 엘리자베트 니체에 의해 편집된 책이었다. 그러나 니체 자신의 글에도 반민주주의적, 여성혐오적, 인종주의적, 반유대주의적 편견으로 넘쳐 났다. 니체는 언제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라고 외쳤고,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을 ‘노예’라 지칭했다. 그는 ‘노예’가 아닌 ‘지배자’ 혹은 ‘귀족’이 되라고 말한다. 결국 니체의 슈퍼맨은 평등에 반대하고 오로지 자신의 권력과 힘만을 추구하는 ‘사이코패스 슈퍼맨’인 셈이다. 이 책은 “우리는 초인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저자의 신념 아래 유독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키는 니체의 면면을 해부한 것으로서 니체 신봉자들에게는 생경함을, 니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니체를 접근할 때 가져야할 비판적 관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니체의 삶과 사상을 낱낱이 해부하다!
저자는 일방적으로 니체를 매도하지 않는다. 저자가 보기에 니체의 선배들도 니체만큼이나 베일에 싸여 있고, 그들의 사상에서 좋은 점만 비춰졌다. 대표적으로 칸트가 그렇다. 니체는 칸트를 싫어하고 그의 윤리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나, 영향력이 상당했던 칸트가 당대 독일의 반유대적인 분위기에 일조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칸트 역시 반대유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힌 글을 썼다. 칸트의 진정한 후배라고 자처한 피히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군사주의자였던 피히테는 독일 청년들을 전쟁으로 인도하기 위해 당당히 연설대에 섰다.
대표적으로 니체의 그리스·로마 찬양은 반민주주의적인 측면을 가장 잘 드러낸다. 그리스는 여성과 노예를 시민취급하지 않는 사회였다. 심지어 니체는 민주주의를 앞세운 아테네보다 남성적 훈육과 전사 양성을 강요한 스파르타를 선호한다. 그의 로마찬양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로마의 공화정적 정치요소를 높이 사는 게 아니라 로마의 귀족주의와 제국주의를 높이 산다. 이처럼 『비극의 탄생』에서부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유고』에 이르기까지 니체의 반민주주의적 요소는 형태와 모습만 바꾸어 계속 주장된다.
니체는 위험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나 니체주의자들은 니체를 변호할 때 그가 ‘관점주의자’라고 말한다. 세상은 일의적인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인 관점들로 구성된다고 니체는 설파한 탓이다. 하지만 분명 니체는 ‘귀족’, ‘초인’ 등의 기준을 내세워 어떤 인간형과 정치형태를 따라야하는지를 강조했다. 게다가 니체는 관점주의라는 핑계로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할 도덕마저 파괴시키는 철학을 전개한다. 이 같은 사상을 견지하는 니체는 무조건 변호해야할까? 충분히 비판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니체의 사상은 그의 사상이 또 다른 반민주주의자, 엘리트주의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살인자 레오폴드를 제외하더라도, 니체의 악마적인 후예들은 많았다. 여동생 엘리자베트 니체부터 시작해서 나치 시대의 유명 법학자 칼 슈미트, 존재론으로 철학계에 영향을 끼친 마르틴 하이데거, 인간학의 대가로 알려진 막스 셸러가 그렇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군사주의와 독일 정신, 나치를 찬양한다. 나치의 우두머리였던 히틀러도 니체에 매료되었다. 저자는 니체의 주장과 이들의 주장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유사하고, 어떤 방식으로 니체사상이 변형되어 또 다른 반민주주의적 사상으로 변모했는지를 자세히 짚어나간다.
대한민국 니체 열풍에 고한다!
저자는 대한민국 독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니체에 열광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독일에서보다도 높은 니체 열기에 휩싸여 있다. 독일에서는 아직까지도 히틀러 트라우마 때문에 니체를 조심스레 다루는 반면, 한국에서 니체의 권위는 무지막지하다. 니체의 모든 원고가 발간된 『니체전집』만 보더라도 니체가 얼마나 한국에서 사랑받는지 알 수 있다. 외국 철학자의 전집이 제대로 소개된 건 니체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니체전집에서는 니체의 반민주주의적 발언들에 대해 비판하는 해제를 찾아볼 수 없다.
나아가 니체의 반민주주의적 사상은 한국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엘리트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한국은 학벌주의, 성차별, 노동자차별로 얼룩져 있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니체가 초인이 되라고, 귀족이 되고 주인이 되라고 하는 말은 차별만 더욱 고취시킬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천재나 초인이 아니어도 충분히 인간답게, 인간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초인이기커녕, 대학을 나오지 않는 사람도 열심히 일하면 대학 나온 사람과 같이 인간 대접을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니체는 항상 노예와 평등을 멸시하는 ‘초인’을 목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초인이 아니라 ‘인간’이 목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