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
한순간 직장도 남자친구도 집도 잃어버린 도시 여자의 리얼 농촌 적응기
마음이 병들어 집이 엉망인 사람들을 고쳐주는 정리 전문가 도마리의 활약을 실감 나게 다룬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의 작가, 가키야 미우가 돌아왔다. 청년 실업, 저출산율, 고령화, 주택 마련 대출과 같은 동시대의 사회문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고 생생한 인물 묘사를 통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작가답게 이번에도 여성들의 독립과 결혼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신작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에는 파견 회사에서 잘린 날, 동거하던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하루아침에 살 집마저 잃어버린 미즈사와 구미코가 등장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찾을 수 없고, 보증인이 없는 독신 여성에게 집을 빌려주겠다는 부동산도 나타나지 않아서 절망에 빠진 어느 날, TV에서 ‘농업 여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귀농을 결심하게 된다. 그녀는 과연 죽고 싶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소설은 미혼 여성에게 더 혹독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귀농에 대한 환상도 깨뜨리며 나아가 다양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돕는다. 균형 잡힌 현실 감각을 바탕으로 혼자가 편한 사람은 싱글로 살고, 둘이 좋은 사람은 결혼을 통해 자기 발전을 할 수도 있다는 열린 결말을 보여준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혹여나 농사라도 시작해볼까?’ 막연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을 충실히 임하게 만드는 리얼 서바이벌 소설이다.
방황하고 고민하는 이 시대 여성들에게 보내는 리얼 서바이벌 소설
누드 사진과 AV가 범람하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은 언제나 성적 상품화가 되고, 스스로 ‘남성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어릴 때부터 세뇌를 당하기 쉽다. 그런 보수적인 일본에서 한국의 페미니즘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이어서 일본에서도 여성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동안 남성 중심 사회에서 약자 혹은 서브 캐릭터로 살아온 여성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스터리 소설로 데뷔하여 여러 장르를 오가며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탄탄한 스토리 전개에 녹여내는 작가, 가키야 미우의 장편소설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는 페미니즘이라는 트렌드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여성의 당당한 독립과 안정적인 결혼에 대한 균형 잡힌 시선을 솜씨 좋게 담아낸다. 마치 시나리오를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생생한 대사는 여전히 흥미롭고, 실질적인 농사 지식과 보수적인 농가의 현실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강점이 있는 소설로 평가받았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든데 농사라도 시작해볼까?”, “퇴직한 후에 농업에 뛰어들면 어떨까?”라고 막연하게 귀농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혹독한 현실을 알려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을 성실히 해나가야겠다.”라는 삶의 의지와 용기를 얻었다는 독자도 있었다.
“결혼하려는 여자가 생겼으니까 이 집에서 나가 줘.”
막다른 길에서 만난 신규 취농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의 주인공 미즈사와 구미코는 평범한 외모에 특별할 것 없는 파견 회사에 다니는 서른두 살 싱글 여성이다. 물론 몇 년째 동거하는 남자친구가 있기는 한데 이미 가족처럼 공기처럼 항상 옆에 있어서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의 청혼을 한번 거절한 적이 있는 그녀는 관계에 있어 그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기대했던 파견 계약이 만료된 날, 그녀는 그에게 갑작스런 이별 통보를 받는다. 하루아침에 직장도, 남자친구도, 집도 잃어버린 구미코는 그제서야 자신의 안일했던 현실 감각을 깨닫게 된다. 다음 날부터 새 일자리와 살 곳을 찾기 시작하지만, 이미 정규직 코스에서 한참 벗어난 그녀에게 안정적인 일자리가 쉽게 구해질 리가 없고, 보증인이 없는 독신 여성에게 집을 빌려주겠다는 부동산도 없다. 막다른 길에 놓인 그녀는 한 줄기 빛처럼 ‘농업 여자’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된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할 수 있고 기계를 쓰면 힘이나 체력도 필요 없다며 곱게 화장한 얼굴로 웃고 있는 여성 농부의 당찬 사연을 보고 그녀는 당장 귀농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녀는 과연 나라의 식생활 미래에도 도움이 되고, 일과 주거가 동시에 해결되는 농촌에 성공적으로 입성할 수 있을까?
“어라? 나 아직 웃을 수 있네. 그래, 앞으로도 잔뜩 웃으면서 살아야지.”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야 오래 멀리 갈 수 있다
본가가 농가가 아닌 독신 여성이 농업대학교에 입학하고 살 집을 마련하는 것까진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농촌 지역 주민들이 신규 취농자에게 협력적이고 논과 밭을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 있다는 방송 프로그램 속 여성의 인터뷰와 달리 모든 것이 쉽지 않다. 아무리 농사를 짓고 싶어도 땅을 빌려주겠다는 사람이 없고, 판매 경로는 한정적이며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서 소규모 유기농업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다는 난관에 부닥치게 된다. 소설은 르포 문학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혹독한 현장감을 그대로 담으면서도 각각의 캐릭터에 개성을 입혀 다양한 여성의 삶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구미코에게 살 집을 제공해준 대학교 선배 게이코의 엄마이자 가장 매력적인 중년 여성 캐릭터인 야마후지 아야노는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돕는다. 아야노는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딸보다 앞선 시대 감각을 여러 대사를 통해 드러낸다.
“집안일은 시간 낭비야. (…) 김밥은 가게에서 사 오면 되잖니. 일부러 시간을 들여 직접 만든다고 뭐가 되는데? 물론 일하면서 취미로 만든다면 괜찮아. 그런데 미즈키는 그게 아니잖아. 싸구려 성취감에 취했을 뿐이야. 서툴게 각색한 촌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하나하나 다 연기 같더구나. 그 애, 사실은 불행할 거야.” (아야노)
아야노와 반대되는 캐릭터로 구미코의 농업 파트너이자 멘토인 이쿠라 후지에가 등장한다. 후지에는 구미코에게 경작지를 구하는 일부터 밭 고르기와 씨 뿌리기, 뿌리 내리기까지 하나하나 다 가르쳐주고, 이런 후지에 덕분에 구미코는 탐스러운 채소를 수확할 수 있게 된다. 혼자 사는 여성인 후지에는 지나치게 수다스럽고, 서른이 넘은 여성은 유통기한이 끝난 것과 마찬가지이니 적극적으로 결혼을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등 다소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야노와 마찬가지로 혈혈단신인 구미코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엄마와 같은 존재가 된다. 구미코의 독립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아야노와 후지에. 이 두 여성과 구미코의 우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드는 요소이다.
“이런 삶, 저런 삶이 있어도 괜찮다.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으면 일단은 다 ‘정답’이다.”
결혼을 해도, 다른 나라에 살아도, 이직을 해도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는 바로 옆에서 살고 있는 인물의 이야기를 훔쳐 읽고 있는 것처럼 묘사가 현실적이지만 곳곳에 극적인 반전이 숨어 있어서 끝까지 문학을 읽는 재미를 제공하는 소설이다.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채소를 직접 키우는 삶이 마음에 묘한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을 알게 된 도시 여자의 농촌 적응기는 읽는 것만으로 현재의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작가는 인기 블로거이자 행복한 가정주부의 표상이었던 대학 선배 미즈키의 사연을 통해 안정적인 결혼에 대한 환상과 육아의 양면성도 놓치지 않고 다룬다. 또한 미즈키의 블로그 마케팅 전략은 실제 인플루엔서 성공 사례로 가져다 써도 무방할 정도 탁월하다. 독자들은 외부인이 농사를 짓고 싶으면 농가에 시집을 가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한 방을 날리는 스토리 전개에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른두 살 구미코는, 아직 혼자 살만하다고 말한다. 야무진 그녀와 달리 결혼으로 도망치거나 가정에 안주해버린 인물들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이런 삶이 있으면 저런 삶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녀도 온전히 혼자 힘으로는 행복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랑스러운 소설은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잊기 쉬운, 사람과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일깨워준다.
[책 속으로]
“이제 기업에 고용되려고 아등바등하지 말자. 나 자신의 힘을 시험해보자. IT 업계에는 젊은 사람이 세운 회사가 많다고 들었다. 취농자도 한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에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업가다. 그 누구에게도 고용되지 않는다……아아, 그야말로 자유의 극치다.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먹을 음식을 스스로 재배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인생이 아닐까?” _‘2월 하순 ’중에서
“식물을 만지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다. 채소와 꽃이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기뻤다. 씨앗 한 알갱이에서 싹이 나올 때의 기대감, 시간이 지나면 가련한 꽃이 피고 거기에 열매가 맺힌다.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또 연구하고 노력하기에 따라 열매의 품질이 정해지니까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싶다.”_‘4월’ 중에서
“매일 밤 블로그를 보던 시기도 있었는데 농지를 빌리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한 후로는 보지 않았다. 미즈키와 너무도 차이나는 자신의 생활을 비교할 때마다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타인의 행복한 생활은 자신을 우울한 세계로 쉽게 끌어간다. (…) “다시는 기업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 남자 밑에서 일하는 거 이제 딱 질색이야. 이 세상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남성 중심 사회야. 특히 일본은 더 심해. 아이가 있는 엄마에게 일본 기업은 비참한 곳이다.” _ ‘12월’ 중에서
“자신이라면 절대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손에 넣지 못했기에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간단히 손에 넣은 사람은 의외로 그 정도의 가치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텔레비전에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따라오는 곤란한 일과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이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놓아 버리는 것이다.”_‘1월’ 중에서
“후지에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상미’란 ‘맛있게 먹는다’는 의미다. 자신은 그저 상품이고 심지어 유통기한도 얼마 안 남았나 보다. ‘끄트머리’라는 말은 분명 배려해서 한 것이리라. (…) 분하지만 여자로 살면서 이미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일본은 누드 사진이 범람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서점이든 편의점이든 인터넷이든 보고 싶지 않아도, 또 여자나 아이들 눈에도 들어온다. 그래서 일본에 사는 소녀들은 남자가 어떤 여자를 맛있다고 여기는지 남자의 취향을 끔찍할 정도로 체득하면서 어른이 된다.”_‘3월’ 중에서
“남녀평등이라는 관념이 없는 편이 오히려 편했다. 그러면 본가가 농가인 남성에게 질투와 열등감이 섞인 감정을 느끼지 않을 텐데. 결혼이 목적이니까 살 집이 있고 농지가 있는 집안에 시집을 갈 수 있으면 원래 기뻐해야 한다. 자신처럼 남성에게도 동등한 경쟁심을 불태우는 여자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 살기 어려웠다.”_‘8월’ 중에서
“강하기 때문에 인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쉽게 결혼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가 궁지에 몰렸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지금은 그녀가 그다지 부럽지 않았다. 아마 자신의 힘으로 생활을 개척하는 편이 성격적으로 잘 맞는 것 같다. 힘들지만 재미있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_‘5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