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저출생 위기 시대의 발칙한 상상력
“국가가 나의 결혼 상대를 결정해준다?”
저출생 대책으로 미혼 남녀에게 결혼 상대를 배정해주는 ‘추첨맞선결혼법’이 일본 의회에서 가결되었다. 25세에서 35세까지의 미혼 남녀는 국가가 주도하는 맞선에 응해야 한다. 맞선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2회까지는 거절할 수 있지만, 3회까지 모두 거절할 경우 테러대책 활동 후방지원대, 이른바 테러박멸대에서 2년간 복무해야 한다. 야당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인권침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혼 남녀들은 각자 고민에 빠진다. 이런 강제적인 맞선을 여성에게 인기 없는 오타쿠 청년은 내심 환영하고,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엄마와 단둘이 사는 간호사는 홀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현실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또 다급한 마음에 애인과의 결혼을 서두르려고 하나 정작 자신과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 사람도 있으며, 맞선 자리에서 이상적인 상대를 만나게 되는 사람도 있는데……. 각자의 맞선 상황이 유쾌하면서도 마냥 웃을 수 없게 그려진다.
《70세 사망법안, 가결》《노후자금이 없습니다》《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당신의 마음을 정리해드립니다》 등을 통해 꾸준히 일본 사회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해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추첨맞선결혼법이라는 극단적인 설정과 이에 대응하는 젊은 미혼 남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가 공유하는 문제를 당차게 제시하고 있으며, 작가 특유의 비판적이면서도 명쾌한 문장과 흥미로운 스토리를 통해 재기 넘치는 서사의 힘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2018년 일본 TV를 석권한 노무라 슈헤이·오타니 료헤이 주연의 드라마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의 원작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 작가 가키야 미우의 화제의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강국인 일본에서 2005년 추리소설 신인상을 통해 화려하게 등단하고 15년여 동안 십수 권의 단행본을 꾸준히 발표하며 일본 대중 문학의 든든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한 작가 가키야 미우의 소설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가 출간되었다. 2018년 일본 TV 드라마로도 제작된 동명의 소설은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한 ‘추첨맞선결혼법’이 시행된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저출생 고령화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미야베 미유키에 버금가는 대중성과 문학성을 인정받으며 사회소설의 새로운 지형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가키야 미우는 재기발랄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필체로 우리 사회의 병폐를 예민하게 포착해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위기와 불안의 단면을 일상의 차원에서 세밀하게 해부한다.
한 인터뷰를 통해 “사회문제에 대해 늘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며 소설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러이러한 법률이 제정된다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가혹한 현실을 극복해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라고 밝힌 것처럼 작가는 십수 년 동안 한 계절도 쉬지 않고 꾸준히 소설을 발표하며 평범한 일상을 뒤흔드는 시대의 질병들에 ‘현실보다 리얼한 소설’로써 응답했다. 그렇게 삶과 사회의 위기를 극사실적으로 담아낸 결과물이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이다. 소재는 가상이지만 생애미혼율(50세까지 결혼한 적이 없는 남녀의 비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일본의 위기와 이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 문제로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 시대,
정부가 결혼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내놓는다면?
이 작품에서 일본 정부는 저출생 대책으로 미혼 남녀에게 추첨 방식을 통해 결혼 상대를 배정해주는 파격적인 법안을 내놓는다. 대상은 25세에서 35세까지 이혼 전적과 자녀와 전과가 없는 미혼 남녀로, 본인의 나이에서 플러스마이너스 5세 범위에서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맞선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2회까지는 거절할 수 있고, 3회까지 모두 거절할 경우 테러박멸대에서 2년간 복무해야 한다.
생산 인구 저하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고령 인구에 대한 의료와 복지로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인구 유출로 소멸 위기이며, 외국인 유입으로 인해 치안이 악화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만혼화에 따른 저출생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런 사회적 악순환을 끊기 위한 대책으로 가결된 것이 ‘추첨맞선결혼법’이다.
이 법안의 가결로 온 사회가 들썩들썩하다. 야당은 결혼이라는 사적인 일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인권침해이자 국가적 수치라며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혼 남녀들의 태도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로, 누군가에게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로, 또 누군가에게는 삶을 절벽으로 몰아넣는 처사로 다가온다.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맞선 상대가 정해지고, 상대에 대해서는 나이, 학력, 직업, 가족관계, 취미, 특기밖에 정보가 없다 보니 단 3번뿐인 맞선 과정이 순탄할 리 없고, 무엇보다 출신, 성장 배경, 성격, 가치관, 성 정체성, 다문화가정 등에 따른 다양한 갈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이렇게까지 개인의 삶에 강제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일본에나 통할 수 있는 발상일 수도 있겠다. 물론 소설은 이러한 상황까지 풍자하고 있는데, 애초에 정부가 이 법안을 시행한 데에는 세계 평화에 공헌한다는 명목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야심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의도대로 국민의 관심은 추첨결혼에 쏠리게 된다. 이처럼 가키야 미우 특유의 사회적 시선이 돋보이는 대목들이 소설 곳곳에서 그려지면서 독자로 하여금 작가의 저력을 다시 한번 신뢰하게 만든다.
결혼과 출산이 선택인 시대
오늘, 우리 사회를 기록하는 가키야 미우가 던지는 또 하나의 문제작
저출생 만혼화 추세가 고착화되고 있다. 인구 절벽을 중대한 문제로 여기는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는 진단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 및 지방의 지자체들이 온갖 출산장려지원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가속화되는 저출생 문제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초반에 저출생 현상의 원인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여야 국회의원과 전문가 들이 대립각을 세우며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는 장면을 보면 지금까지의 논의가 출생률의 문제를 국가의 발전 정도에 따라 통치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마치 우리의 현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독자들의 실소를 불러오기 충분한 대목이다.
저출생 문제 연구가이자 사카미여자대학 교수인 시라카와 도코白河桃子는 이 책의 ‘해설’에서 저출생 현상은 삶의 질을 반영하는 문제임을 강조한다. 여기에 일본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적 시각으로 성찰하면서 중요한 것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아니라 개인이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임을 주장한다. 즉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직장을 잃거나 부모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육아만큼은 국가가 책임져주는 시스템이 저출생 고령화 정책에 집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가 풀어내는 일본 사회의 모습은 섬뜩하게도 우리의 현실과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기발한 소설적 상상력이 빗어낸 가상의 현실이지만, 오늘날의 저출생 비혼화라는 서늘한 현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책 속으로]
?정부는 저출생대책으로 내년 4월 1일부터 ‘추첨맞선결혼법’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대상은 25세에서 35세까지 이혼 전적과 자녀와 전과가 없는 미혼 남녀로, 본인의 나이에서 플러스마이너스 5세 범위에서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저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혼화를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일환으로 법을 제정했다고 발표했다. (6쪽)
?“도시라면 몰라도 시골에서는 혼기를 놓친 노처녀 취급을 받으면서 결혼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기회를 주신다니 무슨 수를 써서든 이 기회를 살리고 싶다.” (16쪽)
?“아무튼 결혼이라는 사적인 일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아도 전대미문이에요. 국가의 수치입니다. 그건 아니라고요!” “전대미문이라고요?… 역사적으로 보아 국가가 인구 조절에 개입하는 것은 절대 드물지 않습니다.” (21쪽)
?“출산은 경제를 활성화합니다. 출산은 여성뿐만 아니라 유아 시장, 아동 시장, 교육 시장, 손주를 사랑하는 조부모 시장까지 만들어냅니다.” (41쪽)
?“묻지마 범죄 같은 무차별 살인의 가해자는 주로 젊은 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예외 없이 여자 친구가 없는 남성 청년입니다…. 그러나 추첨맞선 덕분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면 큰 안도감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묻지마 범죄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저걸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그런 남자를 떠맡은 여자 입장이 되어 보라고.” (42쪽)
?만혼화 세상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만혼이라는 단어에는 언젠가 결혼한다는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혼 상태로 생애를 마치는 인간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자신도 그 안에 포함……되겠지. (82쪽)
?한 번 더 거절했다가는 테러박멸대로 가야만 하는 상황을 알게 된 상대방이 그 약점을 이용해 결혼을 종용하거나 거의 협박 수준으로 결혼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고, 심한 경우 형사사건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136쪽)
?“그러니까. 어떤 여자도 상대해주지 않는 남자를 왜 내가 받아줘야 하느냐 이거지. 하필이면 왜 내가 추첨에서 꽝을 뽑아야 하는데?” (153쪽)
?아무리 모녀 사이라도 해도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지금 엄마의 말이 너처럼 매력 없는 여자를 좋아할 남자는 세상에 없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너무하다. 아니면 상대가 누구든 결혼을 반대할 꿍꿍이였나? 당신 혼자 남겨지지 않으려고? (217쪽)
?여성을 보는 관점도 변한 것 같다.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예쁜 사람이 좋으니까. 그런 주제에 남성을 외모로만 판단하는 여자는 용서할 수 없다고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점도 역시……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떤 여성이든지 씩씩하게 산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 죽을힘을 다해 살고 있다. 쇼핑이니 패션이니 요가니 디톡스니…… 이런 것에만 정신이 팔린 여자는 알고 보니 없었다. 매스컴에서 우스꽝스럽게 다루는 경박한 사람을 현실에서는 본 적이 없다. 각자 정서적인 안정을 찾으려고, 또 사회의 풍파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매일 열심히 살았다. 이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266~267쪽)
?“너는 엄마랑 거리를 두는 게 좋아. 나나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네 엄마를 위한 길이기도 해…. 네가 번 돈으로만 살아보렴.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 가능한 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하려무나. 그리고 독립생활에 익숙해지면 그때 다시 보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렴.” (283~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