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호러 단편 100선
문학의 거장들이 내뿜는 호러의 숨결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작가들의 면면이다. 오 헨리, 체호프, 발자크, 디킨스, 조지 고든 바이런, 토머스 하디, 너대니얼 호손, 잭 런던, 기 드 모파상,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의 이름에서 호러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의 작품에는 선혈이 낭자한 충격적 공포와 뱀파이어, 유령 등 호러의 전형적 창조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음울한 분위기와 일상에 숨겨진 낯설음과 의외성이 초래하는 공포, 평온한 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일상을 전복하는 반전이 수준 높은 문학적 수사로 묘사되어 있다.
현실과 환상, 일상과 비일상의 공존하는 호러의 세계
근대 단편 소설의 거장인 안톤 체호프의〈잠꾸러기〉에는 호러의 전형적 코드인 기괴함이나 환상성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로도 인간의 순간적인 어두운 충동과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리얼리즘적 분위기를 일거에 뒤집는 섬뜩한 반전을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 너대니얼 호손의〈세 언덕 사이의 분지〉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암시적으로 들려준다. 이 작품은 자연스레 호손의 대표작《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와 오버랩된다.
사회주의적 공상소설《강철군화The Iron Heel》로 유명한 잭 런던은〈문페이스〉에서 타인에 대한 이유 없는 증오심으로 인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살인까지 저지르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다가 마지막에는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데, 증오심과 범죄에 빠져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묘한 공감과 동일시를 불러일으킨다. 특유의 유머와 모험담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유령 이야기〉에서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작품 중반부까지 으스스하고 섬뜩한 분위기가 유지되다가, 뜻밖에도 갈 곳 없는 딱한 유령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처량 맞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유령의 모습에 우리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고전 호러에서 현대 호러까지
흔히 고딕 소설은 고전 호러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기묘한 공간을 배회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는 고딕 소설의 이미지는 초자연성을 부인하는 18세기 계몽과 이성의 시대에 반(反)하는 자유로운 상상과 억압된 잠재의식의 표출로 해석된다. 또한 고딕 소설의 공포는 질서와 안정에 가치를 둔 중산층 부르주아 계급의 잠재적인 불안을 자극하기도 했다.
E.T.A. 호프만은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고딕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자동인형〉에는 당시 그가 문학주의자들로부터 공격받은 빌미가 된 초자연적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천착한 그의 문학적 세계가 그대로 펼쳐져 있다. 유령 소설의 대가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학교 이야기〉는 유령과 유령에 의한 복수라는 호러의 전형적인 서사구조와 종반으로 갈수록 실마리가 서서히 풀리는 치밀한 이야기 전개방식으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와 같은 고전 호러는 19세기 말 이후《드라큘라Dracula》로 유명한 브램 스토커와 공포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러브크래프트를 거치면서 한층 발전한다. 브램 스토커의〈스쿼〉는 그야말로 몸서리쳐지는 전율과 선혈이 낭자한 잊을 수 없는 장면을 각인시킨다. 우리에게는《지킬 박사와 하이드씨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로 더 유명한, 2차 대전 이후 현대적 호러의 전범적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악령이 든 재닛〉은 악령에 사로잡힌 한 여인, 그로 인해 공포에 떠는 마을 주민의 모습을 모호한 분위기와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다양하게 변주되는 공포, 호러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호러 문학은 끊임없이 변주되고 재생산되며 그 힘을 증폭시켜왔다. 호러 문학에서 종종 페미니즘과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한 비판의 단초를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근거이다. 미국 여성운동의 주요 이론가인 샬럿 퍼킨스 길먼의〈커다란 등나무〉는 억압적인 가치 체계에 희생당한 여성의 영혼이 유령으로 나타난 이야기를 통해 페미니즘 문학으로서의 호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러브크래프트의〈아웃사이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로부터 차단된 한 인간의 모습을 치밀한 묘사를 통해 그리고 있는데, 이는 우리 시대 많은 소수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익숙하던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보이지 않는 더 큰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순간, 평온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예감하는 순간 우리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인간의 진보된 지적 능력으로 인해 더 이상 미지의 예측 불가능한 것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대에도 호러 문학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에 심화되는 개인의 소외와 불안은 호러의 비정상성과 대치되면서도 맞물리는데, 호러의 비정상성은 기존 질서로부터의 일탈과 자유를 형상화하며, 이는 현대인의 소외와 단절을 표현하고 그 이전의 근원적인 통합에 대한 희망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