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사춘기
21세기 콘텐츠 시대의 주인공으로 자녀를 키우고 싶다면 언어사춘기에 주목하라! 섬세한 사유, 풍부한 감정 표현력, 논리적 사고와 판단력은 언어사춘기에 길러진다!
‘언어사춘기’란 ‘아이의 언어에서 어른의 언어로 넘어가는 중간 시기’ 혹은 ‘중간 시기의 언어’를 이르는 말로 ‘언어사춘기’라는 표현은 저자가 고안해낸 것이다. 몸의 사춘기에 대한 연구와 준비는 많은 데 비해 인생의 방향과 질(質)을 좌우하게 될 언어사춘기에 대한 연구 부재(不在)에 문제의식을 느낀 탓이다. 최근 뇌과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초등학교 4학년 이후부터 중학교에 이르는 연령 때가 ‘아이의 언어’에서 ‘어른의 언어’로 변환되는 시기이며 실제로 그 시기에 어른의 언어를 습득하는 효율성이 가장 높다고 한다. 여기서 ‘어른의 언어’란 개념어나 관념어 같은 어려운 낱말들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사고의 호흡이 길어짐에 따라 긴 문장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며, 다양한 수식어(형용사와 부사)의 사용 빈도가 높은 언어를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먼저 ‘언어사춘기’의 의미와 자각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한 다음, 구체적이며 활용 가능한 팁들을 소개한다. 즉 아이의 언어를 버리고 어른의 언어로 넘어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풍부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남보다 섬세하게 지각하고 사유하려면 어떤 언어 훈련을 쌓아야 하는지 그 방법들을 제안한다. 그리고 슬기로운 언어생활을 돕는 여러 대안과 언어사춘기를 효율적으로 넘어가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독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는데 각 장은 〈왜 언어가 중요한가?〉, 〈언어사춘기란 무엇인가?〉, 〈언어사춘기를 어떻게 건널까?〉, 〈어떻게 삶을 설계하고 실행할 것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각각의 토픽을 언어사춘기와 연계하여 다룬다. 갈수록 짧아지고 건조해지는 아이들의 언어생활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부모와 교사에게, 난감함과 절망 그 이상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는 어른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인문학의 언어는 뭐가 다른데?
언어는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삶의 질을 결정한다. 간단하고 짧은 입말과 감각어만 쓰는 사람, 그리고 깊은 사고가 담긴 글과 문장을 쓰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언어생활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길을 걷게 된다는 뜻인데, 저자는 ‘언어사춘기’가 바로 그 전환점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 시기를 놓치면 남은 평생 어른의 언어에서 멀리 떨어진 삶을 살게 된다고 강조하면서 일례로 미국의 얼 쇼리스 교수가 진행했던 ‘클레멘트코스’를 소개한다. 우리가 흔히 ‘경계 밖’ 사람으로 치부하는 노숙자나 죄수 등 사회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여 ‘인생반전’을 끌어낸 유명한 실례이다. 여기서 인문학이 상징하는 세계란 곧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고 아름다움과 서정을 느끼는 그런 삶이다. 사유와 감성의 언어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어른의 세계다. 그런데 구어만 사용하는 사람은 깊은 사유와 풍부한 표현력이 불가능한 삶, 나아가 관념어와 개념어를 거의 사용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언어사춘기를 놓치면 삶의 반경이 좁아진다
몸의 사춘기보다 먼저 오는 것이 바로 ‘언어사춘기’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저자 역시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최선의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라고 고백한다. 몸의 사춘기는 ‘저절로’ 겪게 되고 나름대로 대처할 수 있다. 주변에서 충고도 해주고 사춘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팁도 준다. 반면 언어의 사춘기는 의식하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다. 무심결에 훌쩍 넘어가기 쉽다. 하지만 대가는 짐작 이상으로 혹독하다. 언어가 짧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그런 말만 해도 되는 세계에서 살아감을 뜻하니까! 우리의 생각, 감각, 감정, 상상 등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것은 언어로 파악되며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를 놓치면 익숙하고 쉬운 짧은 말과 어휘만 사용하게 되어 좁은 세계에 길들여진다. 나아가 주체적인 사고가 어려워지면서 남의 명령에 자연스레 따르게 된다. 아이들이 ‘섬세한 사유, 다양한 감각, 풍부한 감정, 자유로운 상상’을 최대한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호흡이 긴 글, 사고언어와 친해지려면?
21세기는 콘텐츠의 시대다. 그것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삶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 주위에도 짧고 거친 입말과 영상으로 된 콘텐츠가 넘쳐난다. 유튜브의 세계를 두드려보라. 기발하고 재미난 것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섬세한 사유, 다양한 감각, 풍부한 감정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는 흔하지 않다. 이 같은 언어 사용을 폄하하는 분위기, 나아가 조롱하는 세태 탓도 있지만 실은 이를 생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탓이다. 무엇보다 말은 제공자의 속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반면 언어 외적인 요소들이 많아 이해하기는 쉽다. 글은 좀 다르다. 말보다 호흡이 길어서 한 템포 깊이 들어가야 한다. 요즘 세대에게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러나 장점은 거의 무한하다. 일단 읽는 사람 스스로 속도를 결정할 수 있다. 많은 것을 상상하고 그려낼 수 있으며, 더 깊은 뜻을 파악하기 위해 다른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즉 글은 매우 주체적일 뿐 아니라 풍부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글과 친해지려면, 사유가 담긴 호흡이 긴 글을 소비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생산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읽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길은 ‘독서’에 있다. 생존과 삶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적 활동인 독서에 있다!
본문 미리보기
‘꼰대 같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만, 『희망의 인문학Riches for the Poor』이라는 책을 읽어보시면 제가 왜 “한 사람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말이 그의 삶을 결정한다”는 점을 강조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책에는 저자인 얼 쇼리스Earl Shorris, 1936~2012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클레멘트 코스Clemente course’라는 인문학강좌를 개설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나오는데요. 그가 뉴욕 소재 교도소에서 만난 한 여성 죄수와의 대화가 이 모든 일의 발단입니다. 쇼리스는 교도소 출장 강의에서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8년째 복역 중인 비키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가 “사람들이 왜 가난하다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하자 20대 후반의 그 여죄수는 “정신적인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해요. ‘종교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고 여긴 쇼리스가 심드렁하게 다시 물어봅니다. “정신적인 삶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 같은 거죠.” 깜짝 놀란 얼 쇼리스가 “아, 그러니까 인문학을 말하는 거군요!”라고 대꾸하자 비키는 “그래요, 인문학이에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고는 쇼리스에게 의미심장한 부탁을 합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삶과 언어를 가르쳐주세요.” 여기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꼭 부유층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이른바 중산층이지요. 비키는, 자신이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후회에서 이런 부탁을 한 것입니다._〈인문학의 언어〉 중에서
아이들이 공부와 멀어지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또 있습니다. 책을 봐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고, 학교 수업은 어렵기만 하고, 학원에 가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챙겨주고…. 갈수록 공부와 멀어질 기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공부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어요. 결국 아이도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매진합니다. 중간고사를 대비해 열심히 공부해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대견하기만 합니다. 자, 이렇게 시험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던 아이가 씩씩거리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억울하고 분한 표정입니다. 시험을 무슨 ‘행사’쯤으로 여기던 지난날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셈입니다. 기특한 마음에 “시험 잘 봤니?” 하고 묻자 아이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선생님이 치사하게 내가 공부한 것만 빼고 문제를 냈어!” 왜 이런 경우들이 생기는 걸까요? 중학교에 올라가면 대다수 아이들이 당황합니다. 초등학교보다 공부 수준이 갑자기 높아진 것은 물론 만만해 보이던 교과서가 ‘세상 불친절한 책’으로 둔갑한 모습을 보게 되니까요. 풍부한 서술이나 설명은커녕 정서적 공감을 느낄 여지도 거의 없습니다. 핵심 내용은 죄다 개념어와 관념어뿐이고, 그마저 평소에 거의 써본 적이 없는 표현들입니다. 아이들 말로 ‘듣보잡’이에요. 평소에 쓰지 않았던 말들이 주종을 이루는 그런 딱딱한 교과서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수업에 몰입하기도 힘듭니다. 어디 교과서만 그런가요? ‘난해한’ 언어로 된 내용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설명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갈수록 교과 내용이 많아져요. 당연히 공부할 양도 점점 늘어납니다. 아이들에게 ‘공부가 그저 힘겹게만’ 느껴지는 배경입니다._〈언어사춘기를 놓치면 공부도 망가진다〉 중에서
예를 들어봅시다. 지금 어른인 세대는 주로 지식과 정보 습득을 배경으로 성장했습니다. 개념어나 관념어에 익숙하지요. 대신 표현에 서툽니다. 감각언어 활용이 대단히 빈약해요 아는 단어는 엄청 많은데 실제로 구사하거나 교환하는 건 의외로 단순합니다. 반면 아이들은 컬러풀한 영상으로 훈련된 뇌의 소유자들답게 감각언어 사용 능력이 매우 뛰어난데요. 기발하다는 점에서는 그렇지만 정작 사용하는 감각언어의 폭은 좁습니다. 그리고 사유와 개념의 언어 활용에 취약해요. 만일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두 세대가 힘을 합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아름다운 콜라보의 예가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입니다. 기획사의 대표는 어른이에요. 가수들은 청년들이죠(물론 아이 세대는 아니지만 두 세대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생각해볼 만합니다). 음악의 골격과 방향은 어른이 잡아주지만 내용은 청년들이 채웁니다. 그들은 자기 세대의 고민과 희망을 자신들의 음악과 언어로 표현합니다. 물론 그걸 위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는 흔적도 보여요. 노랫말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전 세계의 아미들이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환호하는 건 멋진 음악과 ‘칼군무’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자신들의 고민과 희망을 대변하는 내용에 감동하는 점이 더 크지요. 〈페르소나〉라는 노래의 내용에 도움을 준 책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영혼의 지도Map of Soul』입니다. 이 책은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해석의 권위자인 머레이 스타인Murray W. Stein 박사가 썼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청년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들의 언어와 음악으로 풀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노학자와 젊은 뮤지션의 콜라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어른과 젊은 세대 그리고 아이들이 협업해서 놀라운 결과를 이뤄내는 사례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두 영역의 언어’가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지요._〈빅뱅=감각언어+사고언어+타이밍〉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굳이 책을 보지 않아도 원하는 지식과 정보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속할 수 있으며 획득할 수 있다고요. 뭐 하러 귀찮고 어렵게, 그리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어서 얻으려 하냐고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놓치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은 맞지만, 그것들은 모두 단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반해 책은 하나의 문제를 아주 깊고 넓게, 그리고 길게 다룹니다. 핵심만 다루는 게 아니라 그 지식과 관련한 역사와 맥락도 짚어냅니다. 그것이 바로 책이 주는 매력이고 힘입니다. 솔직히 저는 억지로 책을 읽으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각자 자신이 선택하고 누리며 책임지고 살 뿐입니다. 다만 노예로 살 것인지, 주인으로 살 것인지 생각해보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책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얻어가는 채널이 아닙니다. 일정한 주제를 깊고 다양한 사유로 빚어낸 지적 결과물이에요. 서술은 논리적이고 실증적이며 체계적입니다. 전문 분야의 저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때로는 평생을 바쳐) 연구한 위대한 지성의 산물이죠. 그러므로 책 읽기는 어떤 문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사유를 구성하는 데 최상의 도움을 줍니다. 근대적 시스템 교육에서 빚어진 거의 모든 오류를 상쇄하는 가장 훌륭한 대안이지요. 책은 인류문화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책을 읽은 사람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다를 겁니다._〈책과 함께 가라〉
예를 들어 역사책을 읽는다고 쳐요. 책에 ‘조선시대에 관료가 되는 방법으로 과거科擧와 음서蔭敍가 있었다’는 문장이 나왔습니다. 과거를 통 한 방법은 자신의 시험성적에 따라 좌우되지만 추천제인 음서는 출신 과 관계가 깊어요. 비록 짧은 문장 하나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장면과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달달한 사극을 즐긴다면 이 문장 에서 공주와 장원급제자의 로맨스를 상상할 테고, 스릴러를 즐긴다면 각기 다른 방법으로 관리가 된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음모와 배신의 드라마를 상상할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암기만 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텍스트에 나온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사건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구성하 고 조망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독서의 가장 놀라운 기능입니다. 독서는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따라서 미래 독서는 시대의 변화를 전제합니다. 그런데 시대 변화에 적응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서 방법이 필요하지요. 사실 시대의 변화가 새로운 독서 방법을 요청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생존과 삶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그래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독서의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는 독서 방식, 저는 그것을 ‘미래 독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미래 독서는 사회가 변화한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21세기의 변화에 대비해야 하지요. 이 변화의 코드를 풀지 못하면 미래의 무한 경쟁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래 독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현대인의 눈을 열고 다가오는 변화를 준비하고 그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래 독서는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생존의 논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삶의 논리를 무시해도 좋다는 뜻 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존의 독서와 미래 독서의 균형입 니다. 논리력이나 창의력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는 의미지 요. 미래 사회는 우리 개개인에게 창의력과 논리적 사고 모두를 요구할 테니까요._〈‘미래 독서’가 답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