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먹는 페미니즘
디즈니 애니메이션부터 SF, 액션, 스릴러, 판타지까지 …다양한 영화 장르를 페미니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영화 속 여성캐릭터를 촘촘히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여성이 사회 일반에서 어떻게 다뤄져왔는지를 살피게 된다.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여성은 어떻게 위치되고 있는가? 문화 속에서 여성을 규정하는 무의식적 구조를 파악하고 나야만, 우리는 그 구조를 탈피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여성의 서사를 되살리는 동시에 가부장적 시선에서 탈피하려는 시점에 와 있다. 이 책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등 각종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여성이 다루어진 방식을 분석하면서도, [에일리언] [설국열차] [마녀] [겟 아웃] [모아나] 등의 흥행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성 서사의 가능성을 살핀다.
오랫동안 상처 받은 채 분열되었던 여성의 서사를 새롭게 복원하다
인류의 심리적 본능 가운데 하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상처 입은 삶이 회복되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었다. 이는 상처가 치유되어 삶의 균열이 메워지는 과정이 사람들에게 감동적으로 다가갔던 덕분이다. 이 책의 저자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바라본 영화 서사와 여성 캐릭터가 세상이 변화하는데 일조할 것이라 본다. 기존에 불렸던 이름과는 다르게 재구성되어 펼쳐지길 스스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야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동안 멸시받고 차별받았던 타자의 삶을 재구성한 영화 서사를 통해, 우리는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을 재발견할 수 있다.
‘탈코르셋’ ‘맘충’ ‘백래시’… 우리시대 문제를 영화와 함께 살펴보다
페미니즘이 중요한 것은 그동안 세상에서 배제되어왔던 약자에 관한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단지 학문적 문제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와 성차별문제 등과 맞닿아 있다. 마찬가지로 영화란 매체도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다. 영화는 인간의 삶이 담긴 서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영화일수록, 우리가 여태껏 보아오지 못했던 성차별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영화이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점증해서 살필 수 있는 것이다. 가부장적 시선에서 벗어나고자하는 탈코르셋 운동, ‘맘충’이라는 단어 담겨져 있는 여성혐오와 모성신화 등의 사회적 고민을 페미니즘이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투과해 설명하고자 한다.
책 속으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양심과 도덕의 편에 선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결국 그레이스를 배신하는 위선적인 지식인의 상징 톰. 내 안에 숨어있는 톰을 마주할 때, 그레이스의 저 질문을 던져본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함께 희망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무릅쓰고 여성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허무는 과정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 ‘여자가 기가 세면 팔자가 세다’ ‘계집아이처럼 울지 말아라’ 등, 피부처럼 들러붙은 오래된 편견을 허무는 혁명이 필요한 것이다.
_16쪽~17쪽
목욕을 마치고 일어서는 까미유에게 간호사가 입혀준, 그 어떤 얼룩도 묻지 않은 새하얀 옷이 가부장제 사회가 수혜해준 또 다른 여성혐오로 보였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성 조각가가 전무했던 시절,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조각가는 여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말을 귀에 못 박히게 들었던 까미유 끌로델은 여성이기 에 변변한 예술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세상은 그녀에게 또 다른 돌을 던진다.
_83쪽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코르셋을 입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자, “생선을 머리에 꽂고 다니는 유행이 돈다면 머리에 생선을 꽂을 거냐”며, “코르셋이 생선과 같다”고 말하는 것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요? 실제로 과거 코르셋은 고래 뼈로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고래의 살점이 부재한 코르셋의 살대는 억만년 전 죽은 고래의 화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살아 있었을 때 바다를 자유롭게 누볐을 고래는 온 데 간 데 없는, 해골처럼 남은 코르셋이야말로 여성들을 억압하는 가부장 제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_99쪽
모드가 에버렛의 집을 처음으로 갔을 때, 에버렛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답시고 기껏 한다는 말이, 여기로 이사하는 데 소가 몇 마리나 필요했을 것 같냐는 질문을 모드에게 던진 것은, 그래서 의미 하는 바가 크다. 그에게 세상은 측량하고 넘어서고 완수해야 할 숫자일 뿐, 사물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모드의 시선과는 완전히 다르다. 가부장제 문화가 중요히 생각하는 효율성에 기반을 둔 서열의식을 그는 삶으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_117쪽
에일리언은 자신의 생명체를 부화하기 위해 우주선 ‘노스트로모호’에 숨어들어 사람들을 죽입니다. 왜냐하면 에일리언이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사람의 몸을 뚫고 나오기 때문이지요. 사람의 몸에서 부화된 에일리언의 모습은 언뜻 남성의 성기와 닮았고, 에일리언이 돌아다니는 우주선이 자궁을 연상시키는 것은 섬뜩하지만 필연의 상징일 수밖에 없습니다.
_139~140쪽